엄창록
사진, 지역 감정 논란, 킹메이커 실존인물 사망 이유
'마타도어'란 뜻은 흑색선전 등으로 상대를 흔드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최고의 마타도어로 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킹메이커 엄창록입니다.
지역 감정의 시작으로 지목되는 엄창록의 인생과 사망 이유 등을 정리했습니다. 진보당과 보수당을 오가며 한국 정치를 주물렀던 현대사의 단면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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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타도어 엄창록 - 킹메이커 실존인물 사망 이유, 사진, 지역 감정 논란
김대중과 엄창록의 만남
현대 정치사 최고의 책사, 선거판의 여우 '엄창록'은 함경북도 출신입니다. 6.25 한국전쟁 때 심리전 담당 하사관으로 복무했는데, 그 후로도 강원도 인제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그동안 나치 정권 괴벨스의 심리전술을 공부하며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는데...
그때 강원도 인제에서는 '김대중'이 출마한 상태였습니다. 계속된 도전에서 실패하던 그가 재보궐 선거에 다시 도전한 것입니다. 이때 김대중과 엄창록의 첫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그는 선거 전략의 문제점을 짚어주며 김대중에게 첫 번째 국회의원 배지를 안겼습니다.
그러나 몇 개월 후, 적군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라는 군대를 빼돌려서 정권을 빼앗는 쿠데타가 일어납니다. '5·16 군사정변'으로 '박정희'가 집권하자 헌법기관은 모두 해산되었습니다. 결국 다시 선거가 치러진 것은 1963년이었습니다. 여기서도 엄창록은 큰 활약을 했고, 김대중이 다시 당선되었습니다.
킹 메이커란 뜻과 선거 전술
'킹메이커'란 뜻은 말 그대로 대통령을 만드는 사람이란 의미입니다. 정책이나 선거 전략을 기획합니다. 실존인물 엄창록은 킹메이커로서 그전에 없던 전략을 구사했다는 점이 달랐습니다. 공화당처럼 무식하게 돈으로 매수하고 사람을 협박해서 표를 긁어모으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는 오히려 공화당의 부정선거를 역이용했습니다. 공화당원인 척하며 일부러 거만하게 굴고 욕까지 내뱉으며 비호감을 가지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공화당이 준 선물을 역이용하고, 가짜로 초대해 놓고는 행사를 취소하는 등으로 반감을 사도록 만드는 전략입니다.
현대 선거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것 역시 불법이고 약삭빠른 짓이지만, 독재 정권에서 워낙 돈과 권력으로 부정을 저지르니, 폭력적 불법과 얍삽한 불법의 차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1967년 총선을 앞두고는 대통령까지 노골적으로 압력을 넣으며 관권선거를 하고 있었습니다.
마타도어의 귀재
엄창록이 최고의 책략가로 불리는 결정적인 사건은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신민당 후보 경선에서 드러납니다. 당시 대세는 당내 다수의 지지 세력이 있는 '김영삼'이었습니다. 반면 김대중은 정계에 늦게 들어서서 원내 세력이 약했습니다.
이에 그는 전국 조직을 동원한 밑바닥 표 모으기 전략을 구사했습니다. 남들은 신경 쓰지 않던 지역 대의원 시민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좋은 이미지 쌓기를 했던 것입니다. 심지어 가짜 명단까지 만들어서 선거운동원들이 이를 모르고 샅샅이 뒤지도록 했다고도 합니다.
또한 정책적인 면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당시 정치인 중 가장 경제적 지식이 해박했던 김대중의 경제정책에 "대중경제론"이란 이름을 붙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논리적인 경제 정책을 가진 후보도 처음이다 보니, 유권자들은 경제는 김대중이라는 이미지를 확실히 가지게 됩니다.
김대중을 배신하고 박정희 쪽으로...
박정희 정권 입장에서는 김영삼보다 김대중이 더 미운 상대였습니다. 김영삼은 세력이 있으니 세력 대 세력의 대결이었지만, 김대중은 거의 혼자서 공화당을 괴롭게 만들었으니 말입니다. 공화당이 1967년부터 목포를 특별지역구로 지정해서 그를 견제한 것은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때 큰 문제가 터집니다. 1971년, 김대중의 집에 폭발물 사건이 터진 것입니다. 중앙정보부는 사건을 조사하겠다며 그를 데려갔습니다. 이때 이후락이 개입해서 그를 강하게 설득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풀려난 엄창록은 대통령 선거 10일 전에 갑자기 사라지며 큰 의문을 남겼습니다.
당시 그를 가까이서 본 관계자는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엄창록이 김대중에게 큰 자리를 요구했지만, 원칙주의자 김대중이 이를 거절했고, 그러자 공화당 쪽에 붙어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어쨌거나 선거 운동은 계속되지만, 그 후로 두 사람은 단 한 번도 만나는 일이 없게 됩니다.
영호남 지역감정 조장의 정치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갑자기 경상도 지역에 이상한 전단지와 현수막이 붙기 시작한 것입니다. 내용은 전라도 사람들이 경상도 사람들을 공격하는 것이었습니다. 경상남도 사람들은 이에 자극받아서 박정희에게 표를 몰아줬고, 이후로도 경상도 표는 보수당을 계속 몰아주게 됩니다.
누가 봐도 이런 짓은 김대중에게 불리한 행위입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사라진 엄창록이 공화당에서 기획한 지역감정 이용 모략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 전부터 영호남 갈등이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물론 적게는 그것도 맞는 말이지만, 결코 큰 흐름은 아니었습니다.
박정희는 제6대 대선에서 전북표의 54%, 전남에서 62%의 표를 받고 있었습니다. 절반을 넘는 지지도인데, 이미 원래부터 지역감정이 극에 달해 있었다는 주장을 펴는 것은 틀린 이야기입니다. 또한 제7대 대선에서도 전북 46%, 전남 49%의 표를 받았으니, 경상도 지역만 박 정권의 사기에 당한 것은 분명했습니다.
엄창록의 최후와 사망 이유
결과적으로 1971년 제7대 대선에서 박정희가 승리하고, 1972년엔 유신헌법을 통해서 독재 지배의 발판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러나 엄창록은 실존인물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존재를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그가 나타난 것은 대선이 끝나고 한 달이 지난 다음이었습니다.
그는 이런저런 이유로 속리산에 있었다고 했으나, 연구가들은 그가 공화당에서 일하며, 한국에 지역감정을 도입한 사람이라고 분석합니다. 영화 킹메이커의 실제인물이지만 영화에서는 서창대라는 이름으로 묘사됩니다. 마지막에 김대중을 만나는 장면이 있지만 그것은 상상입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킹메이커 엄창록은 죽을 때까지 김대중을 피했습니다. 제13대 대선에서 '노태우'가 도움을 요청했지만, 어차피 노태우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던 일화도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1988년에 그는 사망했습니다. 엄창록의 사망 이유는 호흡기 질환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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