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가디슈 탈출 사건
1991년 소말리아 내전
남북한 대사관이 마치 한 가족처럼 12일간 동거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모가디슈 탈출 사건입니다. 남한의 강 대사와 북한의 김 대사는 함께 목숨을 걸고 영화 같은 감동을 함께합니다.
이 글은 모가디슈의 뜻과 함께 배경지식, 그리고 탈출 과정의 아찔한 과정을 정리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일화는 영화 모가디슈의 실화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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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가디슈 탈출 사건 실화 정리 - 소말리아 내전 중 남북한 대사관 일화와 모가디슈 뜻
모가디슈 뜻과 의미
먼저 소말리아 내전 역사를 알아야 당시 상황을 이해하기 쉬울 것입니다. 1990년대에 한국과 북한은 UN 동시 가입을 앞두고 치열한 외교전을 하고 있었습니다. '소말리아'의 수도가 '모가디슈'인데, 이 나라는 북한이 투자까지 해가며 자기편으로 만들었던 나라입니다.
아프리카의 도시 모가디슈의 뜻은Maq'ad Shah(마카드샤)란 말이 어원입니다. 이 말은 "샤의 소재지"란 뜻인데, 이 도시에 영향을 끼친 페르시아의 세력이 있는 곳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레 정권이 장기독재를 하는 가운데, 한국도 이 나라를 우리 편으로 만들기 위해 대사관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1990년 12월 30일, '아이디드'가 이끄는 USC 반군이 수도를 침공하기 시작했습니다. 시내에서는 시가전까지 벌어집니다.
반군이 대통령궁 외곽까지 진출해서 정부군과 전투를 벌이는 가운데, 부임한 지 얼마 안 되는 '강신성' 소말리아 대사는 한국과의 연락도 끊기는 상황에 부닥칩니다. 이틀 후, 무장반군은 대사관 차를 빼앗고 총을 들이댔습니다.
모가디슈 탈출 사건이란?
1월 4일에는 무장 괴한들이 공관과 사택에 침입해서 약탈했습니다. 총을 들이대고 피습사건까지 일어나자 극도의 공포감이 밀려들어 왔습니다. 경찰에게 보호를 요청했지만 그들은 곤란하다고만 하고... 결국 뇌물을 주고 경찰 인력을 지원받았습니다.
이것은 그나마 한국이 새로 외교 관계를 시작한 나라라서 봐준 것이었습니다. 북한과는 거리가 생기면서 북한 대사관 은 보호를 받지 못해서, 8번이나 무장강도가 들어가서 위협을 했습니다. 20명의 떼강도까지 당하자, 북한 대사관은 결국 포기할 상황에 처했습니다.
한국 대사관은 보호가 되었지만, 시가전 때문에 식량을 구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들은 모가디슈를 탈출하기 위해 알아보던 중, 공항에 구조 비행기가 온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습니다.
급하게 짐을 챙겨서 출발했지만, 이미 비행기가 출발한 후였습니다. 워낙 공격 위험이 높아서 대충 태우고 떠나버린 것입니다. 대사관 직원들은 허탈했지만, 다행히 교신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어서 구조요청을 보낼 수 있기는 했습니다.
모가디슈 사건 실화
그러다가 9일에 한국 정부에서 구조기를 보내준다는 메시지를 보게 됩니다. 이제는 살았구나 하고 다시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북한 대사관 사람들이 와 있었습니다. 대사관에서 쫓겨나듯 나온 후 갈 곳이 없어서 공항에 와 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공항에도 오래 머물 수 없는 처지... 한국의 강 대사는 북한의 김 대사에게 함께 가자고 제의했다고 합니다. 위급한 상황에 분단의 남북한이 따뜻한 동포애를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모가디슈의 실화에는 감동적인 사연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비행기가 왔는데 오히려 탑승구가 봉쇄되어 버렸습니다. 비행기는 이탈리아 시민들을 태우고 그냥 떠납니다. 워낙 다급한 상황이라 이탈리아 구조기를 한국 정부가 보낸 것으로 잘 못 안 것이었습니다. 또 다시 허탈해졌습니다.
다시 대사관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북한 대사관 사람들은 갈 곳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강 대사는 한국 대사관은 경찰이 지켜주니, 함께 가서 머물자고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며칠간 한 가족처럼 지내게 되었습니다.
소말리아 내전의 위기
밖에서는 전투가 계속되고, 강 대사는 그나마 구조기를 보내주는 이탈리아 대사관에게 부탁해서 모가디슈를 탈출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적십자 비행기를 얻을 수 있었으나, 8명의 자리밖에 없다고 했답니다.
북한 공관원 14명은 소말리아 내전에 발이 묶일 위기... 강 대사는 다시 부탁해서 비행기를 더 부탁합니다. 마침내 더 도움을 받기로 약속받고, 전체 22명의 남북한 대사관 사람들은 차를 나눠 타고 이탈리아 대사관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가던 도중에 공격을 받고 말았습니다. 정부군이 반군으로 오해하고 집중 사격을 한 것이었습니다. 그 포화를 뚫고 공항에 도착하기는 했으나, 북한의 박 서기관이 운전하던 차가 수상한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알고 보니 그는 총을 맞은 상태에서도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이를 악물고 운전했던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죽었는데, 그 가족에게 차마 사실을 말할 수 없어서 치료 때문에 먼저 보냈다고 거짓말을 해야 했습니다.
모가디슈 탈출 사건 일화
1991년 1월 12일, 한국 대사관의 모가디슈 탈출 사건의 날이 밝았습니다. 그동안 남북한 사람들은 가족처럼 친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또 다시 죽음을 건 탈출을 시도해야 합니다. 공항까지 가기 위해 방탄 버스와 일반 차량을 동원해서 출발합니다.
다행히 그들의 탈출을 돕기 위해 정부군은 반군에게 협상을 걸었습니다. 덕분에 공항에 무사히 도착하게 된 사람들... 거기에는 두 대의 비행기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제야 12일 동안이나 목숨이 오가던 위기가 끝나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위험은 마지막까지 영화 같았습니다. 엄청난 수의 소말리아인들이 탈출하려고 공항으로 뛰어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찔한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그들은 비행기 타기에 성공하고, 케냐의 몸바사 공항을 통해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소말리아 모가디슈 탈출 사건은 그 후에도 사연이 많았습니다. 가장 걱정되는 것은 북한 대사관 직원들이 암호 수첩도 잃어버린 채 남한의 신세를 졌다는 것입니다. 특히 암호 체계가 노출되는 것은 최대의 과오였습니다. 그래서 걱정을 했으나, 다행히 북한 당국의 처벌은 없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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