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천 530GP 사건
김일병 총기난사사건
2005년 경기도 연천에 있던 제28연대에서 "김일병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혹은 "530GP 총기 난사 사건"이라고도 하는데, 한편으로는 북한의 공격을 덮어주려고 조작된 사건이라는 주장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군대 미스터리 사건입니다.
다른 기사들은 대부분 한쪽 입장만 소개하거나, 시간 순서에 관계없이 설명하기 때문에 정확히 사건을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전체 사건을 시간순으로 재배치하고, 양측의 주장을 교대로 교차 비교해서 총기난사 사건의 김일병(김동민 일병)과 530GP 사건 상황을 다시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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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병 총기난사사건 - 연천 530GP 사건 미스터리 정리 (양측 주장 비교)
연천 530GP 사건이란
연천 530GP 사건이란 무엇인가? 이 사건은 2005년에 전방에서 있었던 국군 사망 사건으로, 8명이 죽고 2명이 부상당한 사건입니다. 발표된 원인은 고참들의 괴롭힘에 일병이 총을 난사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피해자 유가족은 북한의 공격에 의해 장병이 죽은 사건이라고 주장합니다.
이제는 사건을 알려진 시간 순서대로 이해하기 쉽게 정리하겠습니다. 2005년 6월 17일, 북한군 하사가 군사분계선을 넘어왔다가 잡힌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에 전방에는 "진돗개 둘"의 비상이 걸리고, 추가로 발생할지 모르는 사태에 대비하여 "차단작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때 경기도 연천군에 있던 육군 제28연대의 수색 중대는 조를 나누어서 작전에 들어갔습니다. 이들은 남방한계선보다 위쪽에 있는 비무장지대의 GP에 근무하며 수색을 맡았습니다. 그런데 6월 19일 새벽, 급박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본부에 미확인 무기가 9발 날아와 5명이 죽었다고 보고한 것입니다.
그로 인해 인근 부대에 일제히 비상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약 1시간 후 변경된 보고가 다시 올라왔습니다. 김 일병이 총과 수류탄으로 동료 병사들을 죽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체포된 김 일병은 선임병들의 언어폭력 때문에 살해했다는 진술을 했고, 3년의 재판 끝에 사형을 선고받은 후 현재는 국군교도소에 있습니다.
김일병 총기난사 사건의 미스터리
그런데, 피해 유가족이 주장하는 북한 공격설은 어떻게 된 것일까요? 국방부 발표에 의해 내무반 총기사고로 결론 났지만, 김 일병에 의해 죽은 장병들의 유가족은 믿을 수 없다며 반발했습니다. 이들은 정부가 북한의 도발을 덮기 위해서 김 일병을 희생양 삼아 총기 난사 사건으로 둔갑시켰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2005년의 6월은 한국의 통일부장관이 북한을 방문해서 김정일과 정상회담을 협상하던 때였습니다. 그러므로 정부가 남북 정상회담에 찬물을 끼얹지 않기 위해서 사건을 조작했다는 것이 유가족의 주장인 것입니다. 즉, 최초의 보고처럼 북한이 530GP 옥상 쪽으로 포격을 가했고, 이로 인해 사망자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유가족은 아들을 죽였다는 김 일병에 대해 "그 애도 피해자"라며 두둔했고, 국방부 민원을 비롯해 소송도 준비했었습니다. 북한군의 소행을 남북관계를 위해 조작/은폐했다는 진상규명 요구가 계속되자, 정부가 2017년에 재조사를 해보기로 결정해서 진행 중입니다.
국방부 진실과 유가족 진실
국방부의 발표는 이렇습니다. 19일 새벽, 옥상에서 경계를 서던 김 일병은 다음 근무자를 깨우겠다며 GP 내무반으로 갔습니다. 그때 자신을 괴롭힌 고참들이 잠들어 있는 것을 보고 살해를 결심한 김 일병은 정 상병의 총을 쏘고 수류탄을 던졌습니다. 이후 체력단련 중이던 소대장을 죽이고, 상황실의 중위에게도 총을 쐈으나 피하는 바람에 죽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취사장에 있던 이 상병을 쏘고, 다시 내무반에 들어가서 살아남은 부상자들에게 총을 난사했습니다. 그 후 다시 옥상에 올라가서 선임병도 죽이려고 했으나 총알이 떨어져서 실패합니다. 그러자 갑자기 초소로 돌아가서 태연하게 경계 근무를 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상황실에서 살아남은 중위가 군복을 입고 있던 것을 기억해내고, 그로 인해 구금되었습니다.
한편 유가족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국방부는 당시 531GP만 차단작전에 나갔다고 했으나, 유가족은 530GP도 차단작전을 나갔었다고 주장합니다. 병사들은 국방부 발표대로 내무반에서 자고 있던 것이 아니라, 차단 작전 수행 뒤에 복귀 중이었습니다. 그때 RPG-7로 추정되는 북한의 로켓추진 폭탄이 날아왔고, 일대 부대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병력 주변과 옥상에 집중적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적의 공격이 있다고 보고했었으나, 갑자기 상부에서 내부 총기 난사로 결론을 냅니다. 그러자 명령에 따라 사망자 시신들을 내무반과 옥상, 취사장 등에 재배치했습니다. 그리고는 증거를 없애기 위해 전투복 등을 다 태워버리고 조작된 발표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총기난사 사건 주장과 반박
이번엔 유가족의 주장과 국방부의 반박 내용을 살펴봅시다. 유가족은 처음 보고된 "미상의 화기 9발 피격"이 북한의 공격이라고 주장합니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적이 누군지 확실히 모를 때는 원래 그렇게 보고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오히려 정말 북한의 공격이라면 어떻게 주한미군이 이를 모를 수가 없냐고 반문합니다.
또한 유가족은 죽은 장병의 총상은 국방부 발표대로 K-1 소총이나 수류탄 파편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총탄 구멍이 너무 작고 길게 열화상이 난 것은 소총 자국이라고 볼 수 없고, 수류탄 자국이라면 쇠구슬 형태여야 하는데, 전혀 다른 상처 모양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수류탄이 터진 내무반이 선풍기도 고장 나지 않은 상태라 의혹이 크다고 합니다.
이에 국방부는 유족들이 입회한 가운데 직접 사망자의 몸에서 총알 꺼내 확인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또한 작은 파편과 열상에 대해서는 '프래그멘테이션' 현상에 의한 탄두 부스러기 때문이며, 총알이 지나갈 때 240도에 달하는 열 때문에 생긴 열상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수류탄은 내무반 침상을 구멍 내며 터졌으며, 실제로 천장에서 파편흔이 발견되었다고 했습니다.
또한 유가족은 국군이 사용하는 수류탄은 쇠구슬 파편이 날아가는 형태인데도 시신의 상처는 모양이 다르므로 RPG-7의 파편일 것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에 국방부는 그렇지 않다고 했는데, 언론사가 수류탄 제작 회사에 확인할 결과, 1990년대 이후 쇠구슬 모양이 아닌 사다리꼴 파편의 KG14 수류탄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연천 530GP 총기난사 미스터리
그 외, 당시 수사팀장과의 주장도 정리합니다. 유가족은 혈흔과 탄흔의 흔적도 상식적으로 맞지 않다며, 당시 군이 시신을 옮긴 뒤 총격을 가해서 아군의 총상으로 조작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수사팀장은 취사장과 체력단련실 등에서 탄흔과 혈흔을 확인하였으며, 사망한 병사의 현장 족적 감정도 확인됐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실제로 당시에 거기 있었다는 말입니다.
또한 유가족은 비상이 걸려서 인근 531GP가 작전을 나갔는데, 530GP만 나가지 않은 것은 이상하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한 수사팀장은 외부 차단 작전 후 시신을 건물 내부로 옮겼다면 그 과정에서 여러 군데에서 혈흔이 발견되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며 수사 결과를 밝혔습니다.
그 외에, 수사팀장은 외부의 구급차가 도착할 때까지 1시간 30분 만에 시신을 배치하고 총탄, 수류탄 흔적을 만들고, 살아 있는 수십 명의 부대원을 세뇌교육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본다고 합니다. 하지만 의혹을 제기하는 측에서는 최초로 현장 영상을 찍은 시간이 7시가 넘어서이니, 그럴 시간은 충분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조작 의혹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당시 총기와 수류탄에서 김 일병의 지문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총기화재 과장은 김 일병의 손등과 손바닥에서 뇌관 화약이 검출됐다고 말합니다. 또한 김 일병이 총기를 난사한 총과 현장 수거 탄피에서 발사된 흔적이 맞는다는 결과도 확인됐다고 합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비록 유가족과 국방부의 주장은 큰 차이가 있지만, 어쨌든 이 사건은 한국 병명 문화에 큰 전환점이 된 사건이 되었습니다. 그 이전에도 군내 가혹행위에 대한 감시는 있었지만, 겉으로만 조심하는 척을 했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중대장, 대대장, 연대장, 사단장까지 군복을 벗는 사태로 커지자, 그 이후로 군대 환경이 크게 변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후로도 가혹 행위로 인한 자살, 총기 사고 등이 있었지만, 김일병 총기 난사 사건 이후로는 과거처럼 대충 덮어 가기가 힘들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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