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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의문사 사건 - 1986년 대학생 김성수 사망 사건의 의혹

2021. 9. 23.

김성수 의문사 사건 - 1986년 대학생 김성수 사망 사건의 의혹


 

김성수 의문사

1986년 김성수 사망 사건

1986년은 아시아 최초로 국민이 자력으로 민주화를 쟁취한 날입니다. 이때 민주화 운동은 하던 사람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빨갱이 소리를 들으며 희생했었습니다. 지금도 보수 당에서는 좌파라며 마치 죄를 지은 사람처럼 대합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이렇게 자유로운 사회를 살 수 있는 것은, 그런 희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정적인 사건은 박종철 사건과 이한열 사건이었지만, 그 전에 김성수 의문사 사망 사건도 있었습니다. 이글은 김성수 사건의 의혹과 당시 상황을 정리한 것입니다. 다른 기사들과 달리 시간 순으로 재배열하여 이해를 도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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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의문사 사건 - 1986년 대학생 김성수 사망 사건의 의혹

김성수 사건이란?

1986년 의문사 사건의 '김성수'는 1968년 강원도에서 태어난 학생입니다. 어릴 때부터 옳은 말을 하는 성격이었다고 합니다. 누나가 여자라고 대학에 안 보내려고 하자 아버지에게 대든 적도 있고, 학교 교사가 자신을 잘 봐서 성적을 올려주자 찾아가서 본래의 점수로 되돌리라고 했다고 합니다.

화살표가 의문사 사망 사건의 희생자다 / ⓒ 김성수기념사업회

그러던 그는 고등학생 때부터 사회를 냉정히 보는 눈을 가졌고, 그때 이미 전두환은 살인마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 1986년, 서울대 지리학과에 입학했습니다. 이때는 보수 정부가 진보 민주화 운동을 가장 혹독하게 탄압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김성수 의문사 사건 - 1986년 대학생 김성수 사망 사건의 의혹 / ⓒ 뉴스타파

사실 김성수 의문사 사건이 있기 전부터 그는 이미 두 번이나 공안기관의 조사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1986년 6월의 어느 날, 그는 자취방으로 걸려온 전화를 받고는 문도 잠그지 못한 채 서둘러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는 실종되었습니다. 그 후 발견된 것은 엉뚱하게도 부산이었습니다.

 

 


김성수 의문사 사건

김성수 의문사 사건의 현장은 부산 송도 해수욕장 인근의 매립지였습니다. 그가 실종된 지 6일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그는 허리띠에 5개의 시멘트 조작을 달고 있었습니다. 물 위로 떠 오르지 못하게 무거운 것을 달았다는 얘기입니다. 그날, 신문에는 타살 가능성의 변사체가 발견되었다는 기사가 나갔습니다.

김성수 발견 위치는 현재 송도 해수욕장 근처다 / ⓒ 뉴스타파

그런데 이상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입은 바지는 그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공안기관에서 조사할 때 군복 바지로 갈아입히곤 했다고 하는데... 거기다가 부검 결과, 뇌막 쪽에 20cc의 피가 고여 있는 것도 확인되었습니다.

허리때에 묶인 시멘트 덩어리 / ⓒ Unknown

그런데, 그 다음 기사들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이상해졌습니다. 그가 운동권 학생이었다는 기사들이 나가고, 갑자기 경찰이 입을 닫았고, 표면에 드러나지 않게 대공 수사관들이 깔렸습니다. 이 변사 사건은 지방 경찰 최고 지휘선까지 보고가 올라갔지만, 어느새 조용한 사건이 되었습니다.

 

 


꼬리를 무는 의혹

김성수 사건으로 의문사 의혹이 가혹한 가운데, 수사 18일이 지난 이후 경찰은 성적 하락을 비관한 대학생의 자살이라고 발표했습니다. 갑자기 수사에서 손을 떼더니 성급히 수사를 마쳐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1학년이었고 기말고사도 치지 않았으니 성적 결과를 받아본 적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김성수 의문사 사건 - 1986년 대학생 김성수 사망 사건의 의혹 / ⓒ 뉴스타파

그들은 김성수의 성격이 내성적이었고 운동 동아리도 반강제로 가입했으며 성적이 떨어져서 고민했다고 밝혔습니다. 김성수의 아버지는 이에 반발했습니다. 그가 자살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경찰 조서에는 유가족이 자살이 틀림없다고 수긍했다는 보고가 적혀 있었습니다.

당시 피해 학생의 유가족 인터뷰 장면 / ⓒ MBC

나중에 인권위에서 확인한 바로는 당시 부산에서 중요 운동권 학생을 잡으려고 수사관들이 깔려 있었다고 합니다. 그가 급한 전화를 받고 나간 것도 추리가 됩니다. 당시 공안 수사관들은 "급히 도망가라"고 전화를 한 후, 뛰쳐나오는 학생을 기다렸다가 잡아가곤 했었던 것입니다.

 

 


아직도 진행형인 민주화

유가족은 강력하게 재수사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재수사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김대중 정부 때 '국가인권위원회'가 세워지고,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조사가 이뤄지면서 비로소 억울함을 풀 수 있었습니다. 보수 정부가 계속되었다면 이런 날이 없었을 것입니다.

1986년 의문사 김성수 사망 장소 / ⓒ 뉴스타파

그들은 그를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인정하고, 1억 5천만 원의 보상을 하라는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왜냐면 이때까지는 정신적 고통 손해는 금액으로 따지지 않던 시절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2006년 희생자 인정을 받은 후, 실질적인 보상은 13년이 지난 2018년에야 소송을 진행할 수 있게 됩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김성수 의문사 사건 - 1986년 대학생 김성수 사망 사건의 의혹 / ⓒ 뉴스타파

1987년은 '박종철' 의문사도 있었던 해입니다. 김성수 의문사 사망 사건은 그보다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리고 지금 수십 년이 지났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이미 수십 년 지난 일이라고... 하지만 피해자는 아직도 소송 중이며, 한국의 민주화는 계속 더 되어야 합니다. 아직 진행 중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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