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영 사건과 사형
곽□□ 유괴 살인 사건
1990년, 6살짜리 아이를 납치해서 살해해 놓고는 부모에게서 돈까지 받아낸 사건이 있었습니다. 곽□□ 유괴 살인 사건으로 알려진 이 사건은 범인이 자신의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 지능적인 살인을 했다는 것이 드러나며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 유괴 납치 살인 사건의 범인은 홍순영이었습니다. 체포된 후에도 뻔뻔한 자세를 보였기에 피해자는 더욱 깊은 상처를 받아야 했습니다. 이 기사에서는 홍순영 사건에 대해서, 배경과 과정, 그리고 결말과 사형 순간까지 정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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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영 사건과 사형 - 6살 유치원생 납치 유괴 살인 사건
피해자와 범인에 대한 배경 설명
1990년 6월, 당시 23살의 홍순영이 6살 곽□□ 양을 유괴했습니다. 남자친구의 환심을 사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그녀는 아이를 납치하여 살해해 놓고도 몸값을 요구했습니다. 결국 경찰에 붙잡혔는데, 알고 보니 가짜 신분으로 살아오며 허영심으로 살았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에 홍순영은 사형수가 되어 사라졌습니다.
곽□□ 양은 서울특별시 송파구 올림픽선수촌아파트에 살고 있었습니다. 당시 곽□□ 양은 유치원에 다니고 있었는데, 유치원이 아파트 단지 안에 있었기 때문에 혼자서 다녔다고 합니다. 그런데 집에 올 시간이 돼도 아이가 오지 않자, 어머니는 아이를 찾아 헤매다가 결국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하게 되었습니다.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난 홍순영은 중앙여고를 졸업했으나, 숙명여대 진학에 실패했습니다. 가정 형편은 좋았습니다. 부모는 경기도 부천시의 4억 원짜리 건물주였습니다. 문제는 성격이었습니다. 지는 것을 싫어해서 우월해 보이는 것을 좋아했고, 거짓말을 해서라도 원하는 것은 가져야만 하는 성격이었다고 합니다.
납치범 홍순영 사건
납치범 홍순영은 우연히 얻은 학생증으로 위조 학생증을 만들어서 4년 동안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 86학번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다녔습니다. 심지어 수업을 몰래 듣고 MT 등 학교 행사에도 참여했다고 합니다. 그녀에게는 명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다니는 애인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점점 가짜 학생이라는 소문이 나고, 결국에는 남자친구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남자친구의 부모는 그녀의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그녀는 남자친구와 어울리려면 돈이 필요했지만, 자신의 부모에게도 취직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다녔기 때문에 부모에게 달라고 할 수도 없었습니다.
거짓말을 계속하기 위해 돈이 필요했고, 그러기 위해 다시 거짓말을 해야 하는 것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1990년 5월, 마침내 초등학교 1학년 여학생을 납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부천시에 있는 자신의 집에 감금했었는데, 우연히 홍순영의 아버지가 아이를 발견하고는 돌려보내도록 하면서 다행스럽게 넘어갔습니다.
6살 유치원생 유괴 살인 사건
그럼에도 그녀는 돈 마련을 위해서 다시 아동 납치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숙명여대 건물에 미리 범행 도구를 준비해 두고 다음 대상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1990년 6월 25일, 송파구 올림픽선수촌아파트 유치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거기에서 곽□□ 양의 이름이 적힌 우산을 보면서 사건이 시작되었습니다.
홍순영은 자신이 곽□□ 양의 어머니인 척하며 유치원에 전화를 했습니다. 급한 일이 생겨서 바로 보내달라고 요청하고 기다렸습니다. 아이가 나오자 엄마 친구라고 속이면서 데리고 갔습니다. 숙명여대로 유인한 범인은 아이를 통해서 정확한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아냈습니다.
필요한 것을 다 알아내고도 범인은 잔혹했습니다. 음악대학 건물 뒤편으로 데려가더니 목을 졸라서 살해했던 것입니다. 일부러 음악대학 뒤를 선택했고, 음악 소리로 인해 아이의 비명은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잔인하게 살인을 저질러 놓고는 태연하게도 아이의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서 돈을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체포까지의 긴박한 과정
다음 날, 공중전화에서 전화를 걸어 신고하지 말고 5,000만 원을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겁에 질린 부모는 허겁지겁 우선 500만 원을 입금한 후, 다시 2,500만 원을 또 구해서 보내주었습니다. 당시에는 가명계좌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에 계좌주인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경찰은 ATM 전산처리를 이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틀 뒤, 범인은 다른 곳의 ATM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경찰은 은행의 협조를 받아서 서울 시내의 모든 지점과 전산실에 형사들을 배치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마침내 돈을 찾아가는 조짐이 보였고, 해당 현금인출기 쪽으로 경찰을 급히 보냈습니다.
범인은 을지로입구역 계단에서 쉽게 잡혔습니다. 그러나 이때 홍순영은 또 꼼수를 썼습니다. 여자라는 점을 이용해서 약한 척하며 자신의 남자친구를 공범으로 지목했습니다. 경찰이 그 말에 속아서 함께 서울역으로 나갔습니다. 하지만 틈을 노린 범인은 철로에 뛰어들었습니다. 자살을 기도한 것입니다.
재판과 홍순영 사형 전말
기관사가 급정거하며 자살 시도가 무산된 후, 납치범 홍순영은 사형시켜달라는 말만 반복하며 수사에 협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겨우 숙명여대 건물 물탱크 뒤를 알아내서 가 봤지만, 아이는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이 소식에 아이의 부모는 무너져 내리고 말았습니다.
범인은 살해 의도가 없었으며, 편집성 정신장애여서 심신미약 상태였기 때문이라고 변명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이 주장을 믿지 않고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그녀는 재판 과정에서 스스로 사형을 원한다고 말하더니, 정작 사형이 내려지자 항소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에서도 역시 사형이 인정되었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이후 범인은 3개월 동안 수감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991년 12월 18일 사형 집행이 이루어졌습니다. 대부분 언제 사형당하는지 모르고 있다가 불려 나가기 때문에, 당시 홍순영은 크게 충격받아서 울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 후 집행 직전 용서를 빌며 큰 죄를 지었다는 말을 남기고 사형대에서 사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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