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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의 시련 남목청 사건 - 김구 암살미수 사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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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의 시련 남목청 사건 - 김구 암살미수 사건

키스세븐지식 2023. 8. 12.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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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의 시련 남목청 사건 - 김구 암살미수 사건 / ⓒ 서영해


 

남목청 사건

김구 암살미수 사건

 

백범 '김구'가 '안두희'의 테러로 암살당한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런데 김구는 3번이나 암살당할 위기를 당했던 사람입니다. 그전에도 죽을뻔한 고비에서 살아났는데, 대표적인 사건이 1938년 남목청 사건입니다.

 

일본 밀정에 의해 저격당한 김구는 정말로 죽을뻔했습니다. 이 사건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이 다시 축소되는 위기로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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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의 시련 남목청 사건 - 김구 암살미수 사건

 

남목청 사건의 배경 설명

 

초기 독립운동가 사진 - 임시정부의 시련 남목청 사건 이전의 배경 / ⓒ Unknown

1932년, '윤봉길' 의사와 '이봉창' 의사의 의거가 있었습니다. 이 의거들의 뒤에 김구가 있다는 것이 드러나자, 일제는 눈에 불을 켜고 김구를 쫓았습니다. 지금 돈으로 거의 200억 원에 이르는 현상금이 걸리기도 했습니다. 결국 김구는 그 추적을 피해 탈출 길에 올라야 했습니다.

 

1919년 상하이에서 시작된 임시정부는 항저우, 전장, 창사, 광저우 등으로 피난을 다녔습니다. 20여 년 동안 6000Km나 되는 고난의 행군을 한 것입니다. 그러던 중, 1937년에 중일전쟁이 터집니다. 임시정부는 힘을 모아 중국을 돕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독립운동은 사분오열된 상태였습니다. 김구의 "한국국민당", '지청천'의 "조선혁명당", '조소앙'의 "한국독립당"으로 찢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통합을 위해 다시 모이기로 합니다. 이것이 1938년의 임시정부 3당 합당 시도입니다.

 

 


 

김구 암살 사건의 배경 설명

 

3번이나 암살 공격을 받은 김구 암살미수 사건 중 두번째가 남목청 사건이다 / ⓒ flickr.com

지도자들은 조선혁명당이 당사로 사용하던 '남목청'이란 곳에서 모임을 가졌습니다. 회의가 끝난 후 연회를 가졌는데, 여기서 '남목청 사건'이 터집니다. 김구 암살미수 사건으로 불리지만, 지청천, 현익철, 유동열 등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암살 위기를 맞은 사건이기도 합니다.

 

김구 암살범은 밀정 '이운환'이었습니다. 일본군과 내통한 자였는데, 그 뒤에는 조선혁명당의 강창제와 박창세가 있었습니다. 통합과정에서 지분이 적어지자, 이에 소외감을 느끼고 밀정을 사주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조선총독부 상하이 파견원의 비밀 보고서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이운환의 권총 난사 사건은 김구를 맞추고 현익철, 유동열, 지청천을 맞추는 차례로 벌어졌습니다. 이로 인해 현익철은 죽게 되고, 그 외 지청천, 유동열 등은 중상을 입었습니다. 첫발을 맞은 김구는 그 자리에서 쓰러져 정신을 잃었습니다. 즉사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남목청 암살 사건과 김구

 

남목청 사건 이후 가슴에 맞은 총알자국이 선명한 병원 사진 / ⓒ 서영해

김구는 거의 죽을 것으로 보였습니다. 총알이 가슴을 맞춘 것입니다. 왼쪽 심장 바로 아래로 총탄이 날아갔었습니다. 상아병원으로 후송되었지만, 살아날 가망이 없어 보이자 의사들마저 응급치료를 하나 마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정신을 잃은 김구는 문간방 같은 곳에 방치된 채 삶과 죽음을 헤맸습니다. 다들 그가 곧 죽을 것이라고 보고, 장남에게 김구의 사망 전보를 보냅니다. 그렇게 4시간이 넘게 흐르는데, 백범 김구는 죽지 않고 계속 살아 있었습니다. 그러자 의사들도 다시 치료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김구는 겨우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이를 들은 중국 국민당의 총재 장제스는 직접 친서를 써서 위로했습니다. 그리고 치료비까지 보내 주며 차도가 있길 빌어주었습니다. 나중에 의사가 말해주길, 총알이 심장 앞에서 멈췄다고 했다고 합니다.

 

 


 

이후의 백범과 임시정부

 

1945년 마지막 해의 임시정보 요인들 - 남목청 사건과김구 암살미수 사건/ ⓒ Unknown

남목청 사건으로 인해 3당 통합 시도는 일단 중지되었습니다. 배신자들 때문에 좀 더 길게 분열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도 독립운동의 힘이 빠졌습니다. 1945년 광복을 맞을 때, 임시정부가 승전국의 지위를 못 얻고 신탁통치를 받게 된 배경에는 이런 일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이후로 김구는 수전증을 앓게 됩니다. 글을 쓸 때 손이 떨려서 글이 흔들렸는데, 그래서 김구의 글씨체를 떨림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불굴의 의지로 살아난 그는, 마침내 1940년 임시정부 주석에 올랐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상해 임시정부는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이었지만, 그는 하와이에서 오지도 않으면서 대통령을 하려고 했었습니다. 결국 탄핵까지 당하는데, 그 후 사분오열된 임시정부의 구심점이 된 것이 1940년 김구의 주석 취임입니다. 이로써 임시정부는 대일선전포고를 하는 등 공격적인 활동을 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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