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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한 지식 칼럼/역사&사건

손기정 금메달과 일장기 말소 사건 - 안봉근 파티 일화

2023. 7. 11.

손기정 금메달과 일장기 말소 사건 - 안봉근 파티 일화 / ⓒ 기록 영상 캡처


 

손기정 일장기 말소 사건

안봉근의 파티

 

일제 강점기인 1936년 손기정이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땄습니다. 그 후, 일장기 말소 사건이 터지는데, 이것은 나라를 잃었어도 저항 정신이 끝내 남아 있었음을 보여 주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금메달을 딴 날, 손기정은 일본 대표팀의 축하 파티에 나가지 않고 독일 교포 안봉근이 연 파티에 갔습니다. 그는 거기에서 태어난 후 처음으로 태극기를 보게 되는데, 드라마 같은 가슴 뭉클함이 있었을 일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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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정 금메달과 일장기 말소 사건 - 안봉근 파티 일화

 

손기정과 남승룡

 

왼쪽 손기정 사진, 오른쪽 남승룡 얼굴 사진 - ⓒ Unknown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지 26년이 되던 1936년, 독일 베를린에서는 올림픽이 열렸습니다. 아직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기 전입니다. 일본 역시 올림픽에서 마라톤에 뛸 선수를 선발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조선인 2명이 최고 실력을 보여서 당황합니다.

 

그 두 사람은 '남승룡'과 '손기정'이었습니다. 이미 4년 전에 '권태하', '김은배' 선수를 뽑았다가 일본 선수보다 잘해서 난감했던 일본은, 조선인을 뽑지 않으려고 했지만 실력 차가 워낙 심해서 어쩔 수 없이 대표팀에 넣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1936년 8월 9일, 이 두 선수가 또 큰일을 해버렸습니다. 이번에는 손기정 금메달, 남승룡 동메달이었습니다. 일제 식민지에 살던 한국인들은 크게 기뻐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불가능할 것 같던 2시간 30분 벽을 깼으니 더욱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일장기 말소 사건이란

 

왼쪽이 일장기 말소 사건 사진, 오른쪽이 원본 사진 / ⓒ 동아일보, 조선중앙일보

그 소식이 신문에 나는데, 손기정 일장기 말소 사건이란 이때 신문에서 일본 국기를 지워버린 사건을 말합니다. 1936년 8월 13일과 25일, 손기정이 베를린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땄다는 기사가 났습니다. 12일 밤과 13일 새벽, 동아일보와 조선중앙일보가 소식을 전했고, 25일 다시 한번 기사가 실렸습니다.

 

금메달을 딴 손기정은 우승자에게 주는 올리브 잎으로 가슴의 일장기를 가리고 시상식에 올랐습니다. 우승자였기에 올리브 잎으로 가릴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 동메달을 딴 남승룡은 그게 부러웠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지 기자가 옆에서 찍은 사진엔 일장기가 그대로 보였습니다.

 

그러자 기자들은 슬그머니 일장기를 지워서 신문에 냈습니다. 13일 신문의 사진은 워낙 흐릿해서 잘 알아볼 수 없었지만, 25일 사진은 지웠다는 게 명백해서 일본 경찰에게 고문받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두 신문은 발행이 중단되고, 담당자들은 언론계를 떠나게 됩니다.

 

 


 

안봉근의 축하파티

 

왼쪽 남승룡, 가운데 손기정 - 손기정 금메달과 일장기 말소 사건 - 안봉근 파티 일화

지금도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의 금메달 기록에는 일본인 "기테이 손"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금메달을 따고도 치욕스러웠기에, 남승룡과 손기정의 몸은 무거웠습니다. 일본 대표팀 동료들도 나름 축하 파티를 마련했지만, 조선인 금메달리스트는 거기에 가지 않았습니다.

 

정작 주인공이 사라진 파티... 그때 다른 곳에서는 조선인들의 축하 파티가 있었고, 손기정은 그곳에 가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파티를 연 사람의 이름은 '안봉근'이었습니다. '안중근'의 사촌이지만 독일에서 소박하게 두부공장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안봉근은 두부를 판 돈으로 독립운동을 지원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축하파티에는 태극기가 걸려 있었습니다. 손기정은 그날 거기에서 태어난 후 처음으로 태극기를 보게 됩니다. 그러니 일제 강점기와 나라를 잃은 서글픔이 더했을 것입니다.

 

 


 

일본에 복수한 보스턴 마라톤 대회

 

1950년 보스턴 마라톤에서 1, 2, 3위를 차지한 함기용 송길윤 최윤칠 / ⓒ 체육회

한편 손기정 사진에서 일본 국기를 지운 일장기 말소 사건의 영향은 엄청났습니다. 사실 이게 법적으로 큰 죄는 아닙니다. 그러나 억지로 죄를 만들어서 박해하려던 일본은 반란 행위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니 손기정도 미운털이 박힌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더구나 독일 현지 방송에서는 손기정을 "조선 학생"이라고 소개하기도 했기 때문에 일본은 언짢아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귀국하던 날 환영 행사도 못하게 했습니다. 그로 인해 반일 운동이 벌어질까 봐 두려웠던 것입니다. 또한 일본은 그가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며 감시했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마라톤 세계 신기록을 12년간이나 보유했던 거물 손기정... 하지만 일본은 그를 금지선수로 지목해서 더 이상 뛸 수 없게 했습니다. 이윽고 1945년 광복을 찾았고, 1950년 4월 보스턴 마라톤 대회가 열렸습니다. 여기서 그는 감독으로 참가해서 태극기를 입은 한국 선수가 1, 2, 3 등을 모조리 휩쓸게 만들며 복수에 성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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