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 733편 추락 사고
1993년 목포공항 추락사고
아시아나 항공사의 첫 번째 대형 추락 사고는 1993년에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2002년 김해시의 중국국제항공 추락 사건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대형 항공기 사고입니다.
이 글은 1993년 아시아나항공 733편 추락 사고에 대해 원인, 사망자, 피해 등을 시간순으로 다시 정리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추락 당시의 상황과 사고 이후의 보상금 등에 대한 추가 내용도 함께 정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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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나항공 733편 추락 사고 정리 - 1993년 아시아나 비행기 추락 사건과 원인
1993년 목포공항 추락 사건
김영삼 정부는 "사고공화국", "참사공화국"으로도 불렸었습니다. 이 사건은 정부 시작 1년 차에 벌어진 사고입니다. 위치는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마산리였습니다. 보잉이 만든 737-5L9 여객기는 1993년 7월 26일 오후 2시경에 김포국제공항을 출발해서 오후 3시경에 목포공항에 내릴 예정이었습니다.
정확한 사고 기종은 보잉 737-500기이며 1990년에 만들어진 2년 차 여객기입니다. 6명의 승무원이 타고, 104명의 승객이 있었습니다. 당시 기장은 황인기(당시 48세)였고, 부기장은 박태환(당시 39세)이었습니다. 문제는 두 비행사 모두 이 항로를 단 2번밖에 못 가본 조종사였다는 것입니다.
도착할 목포공항은 고난이도의 기술이 필요한 노선이었습니다. 활주로 길이가 1500m밖에 안 되고, 한쪽 방향만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거기다가 자동착륙 유도 장치, ILS 같은 것은 설치되지도 않은 공항이었습니다. 여기에 아시아나는 경험이 부족한 조종사를 2명이나 배치한 것입니다.
해남군 운거산을 들이박다
아시아나항공 733편 추락 사고가 일어난 그날은 비가 오고 날씨가 좋지 않았기에 시야 확보가 어려운 날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강행된 비행은 3시가 넘어 착륙할 때쯤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15시 24분에 착륙 시도를 했으나 도저히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28분에 두 번째 착륙 시도가 있었습니다. 역시 실패했습니다. 공항 상공을 배회하던 비행기는 기회를 엿보다가 38분에 다시 착륙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실패하고 맙니다. 이착륙 시각을 중요하게 여기던 아시아나였기에 조종사는 점점 조급해졌습니다.
관제센터에서는 정확한 착륙 허가가 나지 않고, 더 이상 배회할 수도 없었기에 또다시 착륙을 시도했습니다. 아시아나 비행기 추락 사고가 있기 몇 초 전, 조종사는 "OK, 800(피트)"라고 말한 뒤 착륙 시도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몇 초 만에 눈앞에는 거대한 산이 나타났습니다.
아시아나항공 733편 추락 사고 원인
인근에는 운거산이 있었습니다. 산 높이는 252.1m였습니다. 그런데 몇 초 전 아시아나 추락 사고기의 높이는 225.2m였습니다. (블랙박스 기록) 규정 높이가 되기 전에 일찍 하강해서 산을 넘지 못한 것입니다. 조종사는 놀라서 급하게 조종 장치를 당겨서 상승하려고 했지만...
4초 동안 올라가던 비행기는 결국 232.3m 지점에서 운거산과 충돌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1993년의 아시아나항공 733편 추락 사고인 것입니다. 엄청난 충격과 함께 비행기는 튕겨 나가며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두 조종사는 바로 즉사했고, 116명의 사상자가 나고 말았습니다.
아시아나 추락 사고의 비행기는 목포공항 남서쪽으로 10km도 넘는 곳에서 발견되었습니다. 하지만 목포공항에서는 위치도 파악할 수 없었습니다. 인근 신고도 없었습니다. 당시는 휴대폰이 대중화되기 전이었기에, 살아남은 승객이 산 아래로 내려와서 경찰에 신고할 때까지 대처불가 상태였습니다.
처참한 비행기 사고 현장
구조대가 도착했을 때 그곳은 완전히 아수라장이었습니다. 다행히 비가 엄청나게 내렸기 때문에 비행기의 2차 폭발은 없었습니다. 항공유가 누출됐지만 사고를 일으킨 비 덕분에 더 이상의 피해를 막았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아시아나 733편 추락 사고의 사망자는 68명입니다. 부상자는 48명이었고, 생존자는 겨우 48명이었습니다. 사망자 중에는 어린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이때 가수 김경호의 이모와 조카도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군 병력이 동원되고 구조활동에 들어갔지만 수습도 어려웠습니다.
너무 산 꼭대기라서 구급차도 갈 수 없었습니다. 군용 헬기가 출동해서 부상자를 옮겨야 했지만, 대형 헬기가 아니라서 부상자를 눕힐 공간이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와이어로 매달아서 수송했다는데, 그로 인해 부상자들은 척추 마비를 당하는 2차 피해까지 겪게 되었습니다.
아시아나 여객기 추락 사고 정리
마을 주민들까지 혼신을 다해 부상자를 구하는 동안, 경찰의 수사가 이루어졌습니다. 그 결과 발표는 조종사가 거리를 착각하고 무리한 착륙을 시도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공항의 부실한 장비와 환경, 항공사의 무리한 운행 등도 사고의 원인으로 드러났습니다.
항공사는 사망자 1명당 약 1억7천만 원의 보상금을 주었습니다. 정부도 목포공항을 폐쇄하고 2007년에 무안국제공항을 열 목적으로 건설에 들어갔습니다. 이후 목포공항은 군용으로만 사용하게 되었다는 뒷이야기도 있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김영삼 정부는 1993년 3월에 부산 구포 열차 전복 사고, 7월에 아시아나항공 733편 추락 사고, 10월에 서해훼리호 침몰 참사 사고까지 연이어 터지면서 참사공화국이란 이름이 붙게 되었습니다. 아시아나 여객기 추락 사고는 수많은 피해자에게도 악몽을 남긴 사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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