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L항공 추락사고 - 일본항공 jal123편 추락과 생존자 구조]
1985년 JAL기 추락사고는 단 4명의 생존자만 살아남은 단일 항공기 최대의 인명사고였습니다. 다른 항공기 추락사고와 달리 JAL항공기의 항공사고는 추락까지 시간이 있었기에 희생자들의 절절한 유언이 남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JAL123 추락사고는 구조 과정에서 일본정부의 관료주의 문제점이 드러나 더욱 안타까움을 남기고 있습니다.
[글의 순서]
JAL123 추락사고란?
JAL항공 추락사고는 왜 일어났나?
보수관료주의와 구조 활동
JAL123 추락사고란?
일본항공 "JAL123 추락사고"는 1985년 8월 12일에 일어났습니다. 8월 15일은 '오봉절'이라고 하여 우리나라의 추석과 비슷한 명절이므로, 명절을 지내러 출발한 방문자와 여행객들이 가득 타고 있었습니다.
오후 6시 56분에 '다카마가하라 산'과 충돌한 JAL항공의 'JA8119'기는 524명의 승객 중 520명이 죽는 참사를 당했습니다.
(사진: 1985년 다카마가하라 산등성이에 충돌한 JAL123편의 현장사진. [JAL기 사고 생존자] / ⓒ japantimes.co.jp)
JAL123기 추락사고의 생존자는 단 4명의 여성이었습니다. 8세와 12세 어린이, 26세의 승무원과 35세의 주부가 살아남았습니다. 이들은 비행기 꼬리 쪽에 탔기 때문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외의 승객은 시신마저 알아볼 수 없도록 끔찍하게 죽었습니다. 520명의 승객 중 일부는 일본 정부의 늦장 대응으로 고통 속에 죽어가기도 했습니다.
(사진: JAL 추락사고 생존자. 이때의 쇼크로 그 이후의 인터뷰는 절대 하지 않는다고 한다. [JAL기 사고 생존자] / ⓒ someone)
JAL항공의 이 사고는 항공기 추락사고는 중에서 가장 많은 인명피해를 낸 사고였습니다. 다카마가하라 산에 충돌할 때까지 약 30분간의 공포 속에서 승객들은 죽음의 공포 속에서 유서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항공기가 추락한 후에도 JAL기 생존자들은 무려 14시간 동안이나 구조를 기다리며 사경을 헤맸습니다. 이때 일본 정부의 관료주의의 권위적인 대응은 한국의 세월호 사고와 비유가 되기도 합니다.
JAL항공 추락사고는 왜 일어났나?
1985년 520명의 사망자를 낸 일본항공 JA8119기는 1978년에 '테일 스트라이크'라는 사고를 낸 비행기였습니다.
테일 스트라이크란 항공기가 이착륙할 때 조종실수로 각도를 잘못 올려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비행기의 꼬리 부분이 활주로에 긁혀서 파손되는 사고인데, JAL123편 추락사고는 7년 전의 테일 스트라이크가 원인이었습니다. 이때 고장 난 기압 유지벽 때문에 JAL 추락사고와 생존자 4명이라는 참혹한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사진: 테일 스트라이크 설명 그림. 테일 스트라이크 뜻은 꼬리 쪽이 바닥과 충돌하는 것이다. [JAL123 추락사고란?] / ⓒ Tomás Del Coro / 편집 www.kiss7.kr)
1978년 테일 스트라이크가 발생한 후 일본항공은 비행기 제조사인 '보잉'에게 수리를 맡겼습니다. 그런데 보잉의 정비 책임자는 규정을 어기고 한 줄로만 철판을 고정시킨 체 수리를 마쳤습니다.
그 후 일본 국내선으로 운항한 JAL기는 동체가 뒤틀리는 현상을 보였지만 계속 투입되었습니다. 결국 1985년 기압 유지벽이 터지면서 꼬리 날개가 떨어져 나가고 조정장치가 마비되면서 JAL123은 추락했습니다.
(사진: 자위대의 추락 현장 구조활동. (끔찍한 부분은 편집했음) [JAL123 추락사고란?] / ⓒ rapt-neo.com)
그날 오후 6시 정도에 출발하여 56분을 비행할 예정이었던 일본항공 JAL기는 12분 정도가 지나서 꼬리날개가 떨어져 나갔습니다. 조종사는 최선의 몸부림을 쳤지만 조종 불능에 빠졌습니다.
비행기가 상하로 요동을 치자 6시 30반쯤부터는 승객들도 죽음을 직감하고 유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JAL기 생존자의 증언에 의하면 승객들은 공포에 떨었지만 조용하게 29분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 후 520명이 사망하는 JAL123편 추락사고에 보잉사 정비책임자는 자살을 했습니다.
보수관료주의와 구조 활동
보수집권 관료주의의 문제점은 세월호 사건에서도 보듯이 큰 문제를 드러냅니다. JAL123 추락사고가 터지자, 인근의 미군부대는 미리 감지하고 도움을 주겠다고 일본정부에 연락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규정 상 자위대의 구조 활동이 먼저라는 이유로 구조요청을 하지 않았습니다.
JAL기 생존자에 의하면 추락 후 밤새도록 사람들의 신음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다음 날 아침 9시에나 구조를 시작했습니다.
(사진: 당시 아사히 신문의 보도 자료. 아래쪽에 가슴 아픈 유서들이 같이 소개되고 있다. [JAL항공 추락사고는 왜 일어났나?] / ⓒ asahi.com)
일본항공은 항공기가 사라졌음에도 추락지점을 모른다는 이유로 2시간이나 지난 후에 자위대에 구조요청을 했습니다. 그 후 헬기 한 대가 사고현장에 나타났습니다. 헬기 조종사는 JAL123의 생존자가 보이지 않는다고 보고했고, 담당부서는 아예 전원 사망이라는 전제 하에 처리하려고 했습니다.
그날 밤 동안 비는 계속 내리고 JAL항공의 생존자들은 쇼크와 저체온 증으로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며 죽어갔습니다.
(사진: JAL123편의 추락 전 기내 모습. 승객들은 조용했다고 한다. [JAL항공 추락사고는 왜 일어났나?] / ⓒ buzzjoker.com)
살아남았던 JAL기 생존자들마저 죽어가고 구조로 살아난 승객은 겨우 4명이었습니다. 그 중에는 아시아 최초로 빌보드 1위에 오른 가수도 있었고 뇌신경 이론을 세운 세계적인 신경학자도 있었으며, 한국계 희생자도 3명이나 되었습니다.
가장과 주부와 어린이들은 공포의 29분 동안 요동치는 JAL123편에서 "죽고 싶지 않다"는, 그러나 가족에게는 "고마웠다"는 유서를 쓰고 있었습니다. 필사의 노력을 하던 조종사의 교신내용과 유서내용이 언론에 공개되자 사람들은 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
(사진: 하늘에서 찍은 JAL123기의 추락 잔해. 날개는 추락 중에 떨어져 나갔다. [JAL항공 추락사고는 왜 일어났나?] / ⓒ jiji.com)
무책임한 세월호 사고 대처에도 집권당인 새누리당(현.자유한국당)이 117개 지역을 가져가며 승리한 것처럼 일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독한 보수주의는 잘못에 대한 비판에 무감각해지기 때문인데, JAL123 추락사고 후 생존자를 생죽음하게 만들었던 보수 관료주의는 그대로 권력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JAL기 추락사고는 일본 뿐 아니라 전 세계를 경악하게 만들었고, 안전불감증과 부실한 대처의 교훈을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