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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운 탈북 사건 - 이용운 가족 최초 탈북 과정 취재

2022. 10. 4.

MBC


 

이용운 탈북 사건

이용운 가족 최초 탈북 과정 취재​

 

1990년대, 미국의 재미교포 팔순 노모와 가족들이 북한의 아들 가족을 탈출시킨 사건이 있었습니다. 일가족 9명이 탈출한 이용운 가족 탈출 사건이 그것입니다.

 

이 사건은 압록강을 건너 탈북하는 과정을 방송국이 직접 동행하며 영상으로 남긴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이 글은 이용운의 탈북 과정과 미국 가족들의 사연을 정리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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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운 탈북 사건 - 이용운 가족 최초 탈북 과정 취재

 

양강도와 LA로 이산가족이 된 사연

 

47년만의 상봉 (이용운 가족 탈북 사건) / ⓒ MBC

1950년, 6.25 한국전쟁이 터지고, 남북이 밀고 밀리는 전쟁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때 평양에 살던 백□는 아이들을 데리고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대동강을 건너가다 16살 아들 이용운과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가족을 찾을 수 없자 그는 평양으로 돌아가는데,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 인연이었습니다. 

 

북한에 홀로 남겨진 그는 군 복무 후 탄광노동자 등으로 일하며 평양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다가 부인과 결혼하고 2남 2녀를 두었습니다. 그동안 남한으로 간 어머니와 가족은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터졌습니다. 북한 정부가 신분 조사를 하다가 그의 가족이 월남했다는 것을 알아낸 것입니다. 그로 인해 신분 차별의 꼬리표가 붙고, 1974년 양강도에 있는 혜산시로 추방되고 말았습니다. 이곳은 양강도의 압록강에 닿아 있으며, 최저 -42도까지 내려가는 혹독한 곳이었습니다. 

 

 


 

간절한 47년 만의 만남

 

이용운 탈북 사건의 가족 9명과 미국 교포 가족 / ⓒ KBS

세월이 흐르고, 미국 LA에 자리 잡은 그의 팔순 어머니와 형제들... 그러나 북에 남은 이용운이 계속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1987년 이산가족찾기 신청도 넣어봤지만 생사를 알 수 없자, 큰 사위 이재학 등과 알아본 끝에 이용운 가족의 주소를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접촉 방법을 알아보다가 마침내 성공해서 소식을 주고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쌀과 돈, 옷 등을 보낼 수 있었기에 이씨의 가족들은 경제적인 여유가 생겼습니다. 그러나 만나보고 싶어서 1991년 방북 신청을 했지만, 북한 당국은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이에, 너무나 아들이 보고 싶었던 미국의 가족들은 그를 탈출시키기로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이용운의 가족에게는 큰 부담을 주는 제안이었습니다. 장남은 찬성했지만 부인과 둘째는 탈북을 반대해서 당혹스러운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이용운 탈북 사건의 시작

 

이혜리 작가의 소설 - 할머니가 있는 풍경 / ⓒ KBS

그러다가 1997년, 미국에서 《할머니가 있는 풍경》이라는 소설이 발표되었습니다. 이씨의 외조카인 이혜리가 지은 소설입니다. LA의 할머니와 북한의 외삼촌의 안타까운 사연을 소설로 엮어서 지은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소설을 UN에까지 보내며 호소했지만 도움을 받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때쯤, 이용운의 가족은 탈북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일단 북한의 신분 차별이 견딜 수가 없었고, 더구나 1990년대 들어서 최악의 경제로 떨어진 "고난의 행군"은 더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미국에서 출판된 소설로 인해 북한의 탄압을 받을까도 두려웠습니다. 마침내 이용운은 탈북 사건을 결심합니다. 

 

그들을 탈출시키기 위해서 큰 사위 이재학과 그의 딸 이혜리가 먼저 중국으로 건너갔습니다. 강을 건널 수 있겠다 싶었던 그들은, 이재학의 친구가 있는 방송국과 협의했습니다. 탈북 전 과정을 취재할 수 있게 해 주는 대신, 조선족 탈북 브로커를 연결받기로 했습니다. 

 

 


 

이용운 가족과 최초 탈북 과정 취재

 

최초의 탈북 동행 취재 - 이용운 일가족 탈북 사건 / ⓒ KBS

드디어 1997년 8월, 이용운 가족 탈출 사건이 시작됩니다. 이미 63살이 된 그는 일가족 9명과 함께 압록강을 건너기로 했습니다. 거기에는 자신과 젖먹이 손자들까지 있었습니다. 이들은 두 팀으로 나누어서 강을 건너기로 합니다. 4명이 먼저 강을 건너고, 보름의 간격을 둔 후 나머지가 탈출했습니다. 

 

물론 탈출 과정에서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북한의 경제난이 심각해지면서, 이전에도 이미 식량을 구하러 강을 건너곤 했던 것은 다행인 일이었습니다. 식량난으로 북한 국경의 경비도 허술해졌습니다. 동행한 취재화면에는 경비대가 뇌물을 받는 장면이 찍혔는데, 나중에 큰 화제가 될 장면입니다. 

 

다행히 아무도 죽거나 잡히지 않고 압록강을 건널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족들은, 압록강 건너기보다 제3국을 거쳐서 귀순하는 과정이 더 힘들었었다고 증언했습니다. 드디어 이용운 탈출 사건은 성공하고, 그의 어머니는 47년 만에 아들을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이용운 가족의 근황​

 

47년만에 어머니와 상봉하는 이용운 / ⓒ KBS

남한에 정착한 그들은 경비원과 호텔 청소부 등을 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임대 아파트 정도의 보조금이었기에 생계는 직접 해결해야 했습니다. 2006년 이용운 가족의 근황이 방송되었습니다. 딸 이애란은 보험왕이 되어 연봉 1억을 받았고, 식품영양학 박사를 받아서 탈북자 최초의 박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용운의 가족은 목숨 걸고 탈북한 후, 한국에서 나름의 자리를 잡고 살고 있습니다. 취직에도 성공하고 결혼에도 성공하여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들의 150일간의 북한 탈출을 기록한 책이 다시 출판되었습니다. 제목은 《아들이 있는 풍경》입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이전에 이미 소설을 썼었던 이혜리 작가는 2016년에 이 책을 내놨습니다. 북한에 있는 가족을 구출하기 위한 실화, 조선족 브로커와 중국 국경에 대한 생생한 묘사까지 있었기에 미국에서 대단한 인기를 얻었습니다. 50만부나 팔리는 기록을 세운 후, 이 책은 한국에서도 출판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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