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성종과 김희동 일화
조선 임금 잠행과 김희동의 광통교 일화
조선시대 성종의 잠행 이야기 중 재미있는 것이 있습니다. 경상도에서 먼 길을 올라 온 김희동이란 백성과의 일화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니 겁도 없이 임금을 만나겠다고 올라 온 순박한 백성... 성종은 이 김희동이란 백선의 순박함이 재미있어서 오히려 장난을 걸었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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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성종과 김희동 일화 - 조선 임금 잠행과 김희동의 광통교 일화
성종과 김희동 이야기
조선 '성종'은 1469년부터 25년간 재위에 있었던 임금입니다. 1932년 조선 건국부터 1592년 임진왜란에서 딱 중간쯤에 왕에 있었다고 보면 됩니다. 성종은 성군으로 평가받는데, 여기에는 미복잠행(微服潛行)으로 유명한 군주라는 점도 작용합니다.
왕의 잠행이란 뜻은 일반 양반의 옷을 입고 궁 밖으로 나와서 백성들을 살피는 것을 말합니다. 보통 한두 명의 '무예별감'을 데리고 다니지만, 성종은 백성과 더 가까워지기 위해 이마저도 멀찌감치 두고 길을 나섰다고 합니다.
성종과 김희동, 그리고 광통교의 일화가 나오는 것도 그때입니다. 어느 날 왕은 지금의 종로인 '운종가'로 나섰습니다. 성종이 광통교를 지나는데, 한 백성이 거기서 졸고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늦은 밤이라 그를 깨워보니, 그는 자신의 이름이 '김희동'이라고 했습니다.
순박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백성
성종과 김희동의 일화는 이제부터 시작됩니다. 그는 경상도 흥해에 사는 숯장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 참으로 순박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임금을 칭찬하자, 자신도 뭔가를 선물하고 싶어서 올라왔다는 것입니다. 성종은 자신을 "이 첨지"라고 속이고 계속 물어봤습니다.
그러자 김희동은 전복, 해삼 등을 임금에게 선물하겠다고 합니다. 성종은 속으로 나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신분제도가 엄격한 조선이라, 평민이 임금을 만나기는커녕 직접 선물도 바치기 어려웠으니 말입니다. 성종은 무예별감을 따라가 하룻밤 쉬라고 하고 그와 헤어졌습니다.
그렇게 하룻밤이 지난 뒤, 다음 날 아침에 성종이 일반인 복장으로 그를 만나러 왔습니다. 벼슬이 없는 사람은 임금을 만날 수 없으니, 원하는 벼슬이 있다면 말하라고 했습니다. 순박한 김희동은 자신이 무슨 벼슬을 하냐며, 욕심이라고는 전혀 없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조선 성종의 잠행 일화
그리고 또 하루가 지난 다음, 궁궐에서 사람들이 김희동을 찾아왔습니다. 임금을 만나기 전에 "충의초사"라는 벼슬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그 후 사모관대를 하고 드디어 임금을 만나러 가는 상황... 그런데 큰절을 한 김희동에게 성종이 얼굴을 들어 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웃기게도, 얼굴을 든 김희동은 "이 첨지가 어찌 여기에 있소?"하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 소리를 듣고 성종이 껄껄 웃으며 사실을 말하는데... 이 첨지가 성종이라는 사실을 그때서야 안 김희동은 벌벌 떨며 어찌할 바를 몰라했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마침내 이제는 성종도 장난을 거두고, 김희동이 가져온 것으로 식사를 차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많은 상금을 주며 충의벼슬에 맞는 역마까지 내려줬다고 합니다. 이렇듯 잠행에 관한 성종과 김희동의 일화는 백성과 함께 했던 성군의 이야기로 전해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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