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진실
천안함 침몰 사건 원인 정리
해군의 천안함은 2010년 피격 사건으로 침몰했고 장병 40명 사망, 6명 실종이라는 참혹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10여 년이 흐른 뒤, 당시 천안함 함장이 전역하며 천안함의 진실에 대한 문건을 공개하여 파장이 일었습니다.
지금까지는 북한의 소행이냐 아니냐만 가지고 이념 진영이 싸웠지만, 진짜 문제는 안보를 내세우던 보수 정부의 무능력과 안일한 대처였다는 것이 주내용입니다. 아래는 언론에 소개된 내용을 정리한 것이며, 앞으로 사실 여부의 검증이 필요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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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진실 - 침몰 사건 원인 정리 (당시 정부 문제)]
11년 만에 나온 문건
천안함 함장이 공개한 문건의 이름은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 의장 일행 부대방문 행사 결과"입니다. 이 문건은 상부에 보고되었으나 어찌 된 일인지 폐기 명령이 있었고, 이를 전 함장이 가까스로 구해서 보관해왔던 것이라고 합니다.
2010년 8월 12일에 있었던 이 행사 내용 중 주목할 것은 전 기무사령관의 발언과 그에 대한 답변들의 내용입니다. 결론 먼저 말하자면, 북한의 이상징후를 미리 보고했는데도 상부에서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명박 정부 당시의 사건 내용들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사건 며칠 전에 사전 징후를 인지했고, 이를 국방부와 합참에 보고했지만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
- 상부에서 침투 징후를 예하부대에 전파하지 않으니, 예하부대 역시 적극적인 조치를 할 수가 없었다.
- 합참의장에게 조치를 취하도록 여러 번 요구했으나, 특별한 조치를 해주지 않았다.
이에 국방부, 합참 등 상급부서들을 언급하며 군 기강이 해이해졌다는 질타가 그날 있었다는 것입니다.
천안함 사건의 진실
이 문서에서 말하는 사전 징후란 것은 수중 침투 관련 징후였다고 합니다. 천안함 사건 4개월 전인 2009년 11월에 '대청해전'이란 것이 있었습니다. 대청해전이란, 2009년에 있었던 서해안 충돌사건으로 북한의 경비정이 반파되어 우리 군이 승리한 전투입니다.
이에 북한은 공개적으로 보복하겠다고 경고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당시 천안함 함장이었던 문건 공개자는, 결과적으로 대청해전의 결과가 천안함 침몰 사건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천안함의 진실은 갑자기 당한 사건이 아니라, 이전부터 상대가 경고를 해 오고 있었고 사건 직전에 이상징후가 사전에 첩보로 전달되었는데도 묵살된 사건이라는 것이 이 천안함 문건 정리의 내용인 것입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큰 문제가 있습니다. 그동안 친북좌파라고 욕을 듣던 진보 정부 때에는 오히려 북한의 도발에 반격하고 사과를 받아내 왔었는데, 오히려 반공과 안보를 외치며 들어선 보수 정부 때는 안보에 무능하고 안일했다는 말이 되기 때문입니다.
묵살한 보수 정부
천안함 침몰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도 정리하자면 참혹한 내용들이 나옵니다. 천안함 사건 직후 대응공격을 해달라고 여러 차례 요청했음에도 보복 공격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과, 어뢰 공격 가능성의 보고는 오히려 누락되었다는 것입니다.
해군 보고 체계는 크게 6단계가 있는데, 제2함대사령부 - 해군작전사령부까지는 어뢰에 대한 보고가 들어있었지만, 합동참모본부 - 국방부 - 청와대 보고에서는 어뢰피격 가능성은 빠지고 좌초, 노난, 선체파손 보고만 올라갔던 것입니다.
이것은 그동안 보수진영에서 주장하던, 좌파가 어뢰 공격을 외면한다는 주장과 달리, 보수진영 정부 자체도 그것을 외면했다는 것입니다. 즉, 이미 보수 정부 내부에서 어뢰 가능성 또는 북한 공격 가능성을 제외하고 사건을 보려고 했다는 말입니다.
더구나, 현장 상급지휘 계통에도 문제를 노출했습니다. 당시 해군은 잠수함이든 반잠수정이든 서해의 특성상 활동하기 힘들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는 분석도 더해지며, 총체적인 난국이었음이 드러나게 됩니다.
천안함 혼란의 원인
지금도 각 진영에서는 천안함 진실에 대해, 정부는 제대로 공개하라는 진보진영과 북한 공격을 인정하라는 보수진영의 싸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안보를 위해서라면 보수 정권을 뽑아줘야 한다고 해서 당선된 보수정부에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2010년 4월, 천안함 침몰 사건 초기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반응도 거리가 있었습니다. 과학적 조사를 강조하며 북한 언급을 되도록 꺼렸습니다. 여기에는 비화가 있었습니다. 그때 싱가포르, 베이징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물밑작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진보 정부가 이런 짓을 했다면 보수 진영에서는 친북행위라며 맹렬한 공격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보수 정부였기에 이런 욕을 먹지 않고 넘어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건 매우 불합리한 문제점을 드러냅니다.
이명박 정부는 그러다가 갑자기 태도를 바꿔서 5월 20일에 북한의 소행이라고 주장합니다. 너무 급하게 방향을 틀면서 제대로 자료를 만들지 못하자, 엉뚱한 설계도를 북한 어뢰 설계도라고 설명했다가 망신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싸움만 하는 진영 논리의 문제
진실이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이런 과정은 남북 물밑 회담의 실패와 정치적 이용이 영향이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왜냐면, 북한 소행이라고 발표된 5월 20일은 지방선거의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는 바로 그날이었으니 말입니다.
국민들은 보수가 안보라는 큰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천안함 피해 장병 모임에서도 천안함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고 엄중히 경고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럼에도 진짜 진실은 지금까지 묻혀 있었던 것입니다.
방송 보도에 나온 천안함 피해 모임 장면에서, 보수정권은 그렇게 안보를 위하는 것처럼 굴면서도,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의 처우 개선은 문재인 정부 때 보다 적은 6명뿐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겉으로만 안보를 외치고 천안함 장병들의 편을 들어주는 것처럼 하면서도 결과적으로는 무능을 덮고 안일함을 숨겨왔다는 것입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 내부의 문제를 보지 못하고 북한 소행이냐 진실이 무엇이냐만 가지고 싸워왔습니다. 그러나 이쯤이면 왜 당시 정부가 우왕좌왕했었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천안함 진실이 그대로 묻힌다면, 결국 국민만 놀아나는 꼴이 되고 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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