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1편
1995년 대형사고
삼풍건설에 의해 지어진 건물로, 비리와 불법 용도 변경의 참사를 일으킨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이 사건은 1995년에 있었습니다.
1993년 10월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 1994년 10월 성수대교 붕괴 사고, 1995년 4월 대구 지하철 가스 폭발 사고에 이어 1995년 6월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마저 터지면서, 이 모든 사건 당시의 대통령이었던 김영삼은 참사 대통령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이 글은 위의 참사 중에서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을 다루는데, 총 2부로 되어 있으며 2부는 아래 링크를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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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1 - 위치(주소), 건설사, 사망자수, 생존자]
삼풍그룹 회장 이준
'삼풍백화점'의 위치(주소)는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중앙로 188(당시 주소는 서초 4동 1685-3번지)입니다. 현재는 대형 주상복합 아파트가 들어선 이 자리는, 6.25 전쟁 이후 단일 사고로는 최다의 사망자가 발생한 곳입니다.
사망자수 502명, 부상자수 937명, 실종자수 6명, 그리고 2700억 원의 손해가 발생한 이 사건은 비리와 불법 용도 변경, 탐욕스러운 자본주의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난 사건입니다. 또한 발전에만 눈이 어두웠던 시대상을 반영하기도 합니다.
이 건물의 주인은 '이준'이었습니다. 박정희 정권 당시 중앙정보부에 있던 그는, 그 인맥을 활용해서 거대 기업을 세웠습니다. 그가 운영한 삼풍그룹은 한때 재계 30위에 오를 정도로 돈을 끌어모았습니다.
그는 공무원에게 뇌물을 상납하고 주거지역으로 된 곳을 용도 변경해서 백화점을 지었습니다. 삼풍백화점의 건설사가 우성건설에서 삼풍건설로 바뀌는데, 이 삼풍건설도 이준의 그룹 자회사입니다.
삼풍백화점 붕괴 원인
1987년, 이 건물은 2개 동과 그 사이에 연결 동이 있는 형태의 4층짜리 불법 상가아파트로 착공되었습니다. 주거지역에 사업시설이 들어서는 것 자체가 불법이었지만 뇌물로 처리했고, 처음 이름은 '삼풍랜드'였습니다.
그런데 공사가 거의 다 되고 있던 시점, 삼풍그룹 이준 회장은 우성건설에게 5층짜리 백화점으로 설계 변경을 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우성건설은 너무 위험하다며 반대했는데, 그러자 이준은 계약을 파기하고 삼풍건설에게 짓게 했습니다.
이준은 백화점을 열기 위해서는 한 층을 더 올려서 5층에 식당가를 넣어야 한다고 우겼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대한민국 대참사의 원인 중 하나가 됩니다. 식당은 엄청난 무게의 물을 저장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거기다가 온돌 시설까지 하고 보일러 시설까지 올리니 무게가 심각하게 늘어났습니다. 또한 백화점 상품이 잘 안 보인다고 기둥을 깎아내서, 설계 시 32인치였던 기둥을 23인치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자본주의의 탐욕
1989년 12월 1일, 준공검사도 대충 받은 괴물 백화점이 드디어 오픈했습니다. 초호화 명품 브랜드들을 유치하며, 부자 동네에서 사치의 상징이 된 백화점. 당시 국내 2위의 규모로 국내 최고의 매출을 올리는 백화점으로 우뚝 섭니다.
그 후 놀랍게도 이 상태로 4년을 버텨오던 삼풍백화점의 원인이 드디어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1994년 서점이 들어서자 엄청난 책의 무게 때문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이 서점은 1년 만에 철수되었습니다.
거기다가 정말 무식한 짓을 저지르는데... 옥상에 있는 200톤에 가까운 냉각탑을 롤러를 이용해서 옮긴 것입니다. 한대의 무게만 36톤, 물을 채우면 87톤이나 하는 이 냉각탑은 소음 때문에 주변에서 민원이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무거운 것은 대형크레인을 이용해서 이동시켜야 하는데, 돈을 아끼려고 롤러를 장착해서 밀었던 것입니다. 이로 인해 옥상부터 상처를 내고 균열이 심해졌으며, 이하 층의 지지물에 결정타를 주게 됩니다.
삼풍백화점 참사의 징조
그 후 건물에서는 계속 내부 진동이 보고되고, 균열과 건물이 휘어진다는 보고까지 올라왔습니다. 심지어 지붕이 내려앉기 시작하고 내부 철근이 솟아오르는 데도, 백화점 측은 오직 돈을 벌기 위해 영업을 강행했습니다.
이런 결과로, 드디어 1995년 6월 29일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날도 오전부터 5층 식당가 바닥이 기울고, 콘크리트 부스러기가 떨어지는 등의 현상을 보였는데, 백화점이 고작 한 일은 식당가를 폐쇄하는 정도였습니다.
오후가 되어 에어컨 실외기를 가동하자 건물에서 갈라지는 큰 소리가 들렸습니다. 손님들도 신고를 하기 시작했고, 그래서 에어컨을 중지시켰습니다. 그나마 이 일로 찜통더위를 못 이기고 빨리 나가는 손님들이 있었다는 것은 천만다행이었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에어컨 문제로 10cm 이상 옥상이 갈라지기 시작한 상황, 오후 4시가 되자 B동 사무실에서는 긴급회의가 열렸습니다. 간부들은 영업을 중단하고 대피시켜야 한다는 보고를 올렸지만, 삼풍그룹 회장 이준은 손해가 크다며 반대했다고 합니다.
이후의 삼풍백화점 붕괴 당시 상황과 문제점이 2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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