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재 2
이승만 정권의 정치깡패의 최후
정치깡패 이정재의 최후는 이승만 정권의 몰락과 함께합니다. 그 과정을 통해서 권력에 눈이 먼 자의 철저한 파멸을 느끼게 되는 인물입니다. 그는 스케일이 큰 조폭이었지만, 문제는 주변 사람을 진정으로 다루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배신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의 인생 자체가 매우 드라마틱했기에 소설, 영화, 드라마 등에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미화된 면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의외로 인간적인 모습도 발견됩니다.
이 글에서는 이정재의 정치깡패 부분을 다루고 있습니다. 아래에 있는 링크에서는 그의 주먹 세계를 다룬 1편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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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 정치깡패 2 - 조폭 이정재의 최후와 이승만 정권의 최후]
자유당과 이정재의 결탁
1954년이 되고, 자유당이 막장이 되어 가고 있는 중, 김기홍은 이정재에게 자유당과 손을 끊으라고 조언했습니다. 조금 더 있으면 자유당이 파국을 맞을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인민군으로부터 목숨을 구해준 후, 다시 운명이 걸린 조언을 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정재는 그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김두환, 이화룡, 시라소니 등은 권력과 결탁해봤자 결국은 버려진다며 조언을 해 주었지만, 이 역시도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이에 실망한 김기홍은 결국 동대문파를 떠나고 맙니다.
오히려 자유당과 곽영주의 힘을 이용해서 화랑동지회를 조직했습니다. 주먹 조직들을 상인회와 묶어서 세력을 넓히려는 것이었습니다. 명동파와의 세력 대결에서 승리하며 주먹 세계를 통일시켰습니다.
그동안 때로는 주범인 사건이, 때로는 오해를 받는 사건들이 연속으로 터졌습니다. '시라소니 린치 사건', '단성사 저격 사건', '고대생 습격 사건'들이 계속되었고, 자유당을 위해 폭력으로 상대를 억압하는 정치깡배 이정재의 행보가 계속되었습니다.
이기붕과의 악연
1954년 사사오입 개헌(이승만이 영구 집권을 노리기 위한 개헌) 때 난동 사건을 벌이고, 1955년 자유당 창당동지회 방해 사건, 1956년 야당 집회 테러 사건, 1957년 장충단 공원 정치 테러 사건 등 온갖 정치깡패 짓을 하는 이정재의 악명은 점점 높아갔습니다.
한편으로는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이천에 공을 들였습니다. 각 학교에 돈을 지원하고 장학금을 주었고, 위령비를 건립해서 매년 제사도 지내주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기붕이었습니다. 이기붕이 이천 지역구로 나오며 선거구를 빼앗아 간 것입니다.
이것은 이기붕의 지지율이 떨어지며 서울에서 당선될 자신이 없자 이정재의 지역구를 빼앗은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정치에 회의를 느꼈습니다. 더구나 그 이전에 '김동진'의 배신으로 죽을 위기까지 있었기에 은퇴를 결심합니다.
그 후, 임화수에게 조직을 넘기고, 친척 사이인 '유지광'에게 임화수를 따르라고 부탁한 후 시골로 내려가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습니다. 유지광은 촌수가 더 높았기 때문에 이정재가 존댓말을 하는 사이였으니, 신경을 써줘야 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김두환, 유지광, 김기홍의 의리
정치깡패 이정재의 끝은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4.19로 이승만 독재가 무너지며 완전히 힘을 잃었고, 5.16 군사쿠데타로 군부가 들어서며 조직폭력배 척결사업에서 척결 대상이 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혁명재판에 넘겨집니다.
그러나 주먹패의 의리는 아직 있었기에, 그를 살리려는 노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형량이 가벼울 것으로 예상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임화수가 자신만 살기 위해 이정재에게 불리한 증언을 해대면서 상황이 점점 나빠졌습니다.
시라소니는 린치 사건이 없었던 일이라고 증언하고, 유지광은 대신 죄를 뒤집어쓰려고 했으며, 김기홍, 이화룡, 김두환도 이정재의 죄를 가볍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임화수는 김희갑 구타사건, 고대생 습격 사건, 단성사 저격 사건 등이 모두 그의 짓이라고 증언했습니다.
사실, 이정재가 정치깡패 짓을 하며 못된 짓을 한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시라소니 린치 사건'은 이정재의 부하들이 한 짓이며, '고대생 습격 사건'은 신도환이 했으며, '김희갑 구타사건'은 임화수가 저지른 일이었습니다. 즉 임화수의 증언 중 일부는 거짓이었던 것입니다.
정치깡패 이정재의 최후
하지만 김동진이 배신하자 죽이려고 했던 '단성사 저격 사건'의 살인교사는 너무나 명백해서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임화수, 신정식, 유지광과 함께 군인들의 감시 속에 플래카드를 목에 걸고 조리돌림을 당하기도 합니다. 거기엔 "나는 깡패입니다"라는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드디어, 1961년, 쿠데타로 정권을 빼앗은 혁명재판부는 이정재에게 정치깡패 혐의로 사형을 내렸습니다. 그는 면회 온 아들에게 자신은 세상에서 생각하는 그런 깡패가 아니라며 억울해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정치깡패 이정재의 말로는 그해 10월 44살의 나이로 형장에서 사라집니다. 그의 마지막 유언은 권력에 눈이 어두웠던 삶과 배신의 주먹 세계를 그대로 드러냅니다. 키우다시피 한 배은망덕한 자의 증언 때문에 죽게 되었다며, 섭섭하지만 인정한다고 말했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추가로 한 그의 유언은 아들 대에 가서는 절대 원수가 되지 않길 바란다는 바람으로 끝납니다. 어두웠던 시대는 그 시대로 그냥 끝나기를 바란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의 죽음은 이승만 정권의 부패가 끝나는 마지막 마침표와도 같았습니다.
아래의 링크에서 정치깡패 이정재 1편 - "김두환, 임화수, 김기홍, 유지광 주먹 세계"를 이어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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