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 암살범 처단 사건 1
암살범 안두희
1949년, 김구 선생이 안두희에게 암살당했습니다. 그 후 김구 암살범 안두희는 호의호식하다가 1996년 박기서에게 살해당합니다. 그 사이에도 곽태영, 권중희에게 처단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이글에서는 김구, 안두희뿐만 아니라, 이승만, 김창룡 등 김구 암살의 배후에 대한 주장들을 정리합니다. 내용이 길기 때문에 2편의 시리즈로 만들어졌습니다. 1편은 김구와 안두희에 대해서 정리했고(배경 역사 부분), 2편에서는 박기서의 처단 사건(살해 사건 부분)에 대해 정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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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 암살범 안두희와 박기서, 곽태영 - 김구 암살 사건 정리 1]
김구, 이승만, 안두희는 누구?
먼저, 김구의 암살과 이승만에 대한 이해를 해야겠습니다. '이승만'은 권력 욕심이 매우 강한 인물이었습니다. '김구'는 민족주의자이며 강경주의자였습니다. 그들은 친한 사이면서도 대통령 지지도 1~2위를 다투던 인물들입니다.
그러나 1946년 '장덕수' 암살사건으로 두 사람의 사이는 완전히 뒤틀어졌습니다. 그러다가 1949년 김구가 암살당했습니다. 당시 조사 기관에서 편파적으로 수사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증거가 남아 있지 않지만, 사람들은 이승만이 제거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에는 김구 암살범 '안두희'에 대해 알아봅니다. 그는 1947년 월남해서 '서북청년회'에 가입된 자였습니다. 다음 해에 육군사관학교 8기가 되어 소위로 군 복무를 합니다. 그는 김구 앞에서 "미 제국주의 하수인 이승만을 타도한다"는 혈서를 쓰며 접근했습니다.
1949년 6월, 안두희는 김구를 찾아가서 암살했습니다. 그가 있던 경교장으로 찾아가 권총을 쏜 것입니다. 그 후 정부 인사는 김구가 쿠데타를 하려고 했었다는 근거 없는 발언을 했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암살의 진실을 제대로 발표하지도 않았습니다.
김구 암살의 진실과 이승만 의혹
체포된 안두희는 누가 지시한 것인지, 김구 암살의 진실이 무엇이며 목적이 무엇인지를 말하지 않고 버텼습니다. 더 이상 밝히지 못한 것은 육군본부 정보국 방첩대장인 '김창룡' 소령 때문입니다. 그는 안두희를 여러모로 봐주고 있었습니다. (공산주의 활동을 하던 박정희를 살려준 인물이기도 함)
김창룡은 일제 시대에 독립군을 체포하고 고문했던 자입니다. 그러나 해방과 함께 보수주의에 붙어서 반공을 부르짖으며, 이승만 정부 아래에서 또다시 권력을 쥐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김창룡의 지령으로 김구가 암살됐다는 설이 강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일개 소령이 단독으로 민족의 존경을 받는 인물을 죽이라고 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승만이 배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당시 김구와 이승만은 남북한 정부 설립에 대한 의견 차이 때문에 갈등이 컸었습니다.
그런데 안두희는 모든 죄를 혼자 뒤집어쓰려고 했습니다. 안두희는 김구를 암살한 후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나, 석 달 뒤에는 15년 형으로 감형받고, 6.25 한국전쟁이 터지자 형집행정지를 받았습니다. 누군가 뒤에서 봐주기로 약속했다고밖에 볼 수 없는 일입니다.
김구 암살범 안두희의 그 후
안두희는 1950년 다시 소위로 복직했습니다. 그 후 초고속 승진을 하는데, 그해에 바로 중위를 달고, 1951년 대위로 진급했다가 1953년 소령까지 올랐습니다. 그런데 황당한 것은, 그런 안두희는 죄를 없애주면서 김구에게 안두희를 소개했던 '김학규'는 15년 형을 다 살게 했다는 것입니다.
소령으로 예편한 안두희는 군납업자가 되었습니다. 당시 군납업자들은 방산 비리를 저지르며 상당한 재산을 모을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재산이 많음에도, 4.19 희생자 성금으로는 돈을 아끼다가 고등학생들에게 공격당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 후에도 그의 죄를 벌하려는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결국 1961년 경찰에 넘겨지기는 했으나, 이번엔 공소시효 소멸로 풀려났습니다. 이승만이 친일파들을 다 봐주고 오히려 반민특위를 핍박해 주었으니, 이승만 아래에 있던 모든 친일파들도 그를 감싸주었습니다.
이런 저질스런 역사가 계속되었으니, 민간인들이 참지 못하고 나섰습니다. 1965년 백범 독서 회장 곽태영이 안두희를 기다렸다가 칼로 목을 찔렀으나, 질긴 목숨은 끝내 살아남았습니다. 이 일로 곽태영은 징역 5년을 살게 됩니다.
역사를 잊으면 안 되는 이유
단순 무식한 어떤 사람들 때문에 역사가 잊혀진다면, 권력을 가진 자와 국민을 배신한 자들이 계속 국민 위에 집권하게 됩니다. 하지만 잊지 않는 사람들도 잊기 때문에 안두희는 20년 동안 숨어 살아야 했습니다.
그의 정체를 안 가족들도 이혼하고 미국, 유럽으로 가버렸습니다. 그 역시도 이민하려고 시도했지만, 그의 정체를 알아본 출입국 관리자들이 출국을 허락하지 않아서 실패했습니다. 그 후 그는 동거녀와 인천 등지에 숨어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1987년 '권중희'에게 들키고 맙니다. 그는 마포구청 앞에서 몽둥이로 안두희를 폭행했습니다. 그러자 국회 증언에도 불려 다니면서 회개했는지, 김구 암살 배후의 진실을 털어놓을 듯한 자세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1992년, 그는 독자 범행이 아니며, 자신은 하수인에 불과하다고 말하면서 기대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더 이상 진실을 밝히지 않고 지내다가 1996년 80살이 되어, '박기서'의 습격으로 맞아 죽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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