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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통령 선거와 당선 대통령 지지율 - 1. 이승만, 윤보선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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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통령 선거와 당선 대통령 지지율 - 1. 이승만, 윤보선

키스 키스세븐 2015. 12. 2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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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통령 선거와 당선 대통령 지지율 - 1. 이승만, 윤보선] 



1945년 해방을 맞은 이후 우리나라는 6개의 공화국과 11명의 대통령 당선자가 있었습니다. 어떤 대통령은 겨우 36%의 지지율로 당선되기도 했고, 어떤 대통령은 마치 공산주의처럼 100%의 지지율로 당선되기도 했습니다. 
대통령 임기는 1981년까지 연임이 가능한 4년 임기였으나, 이후 현재와 같이 연임이 불가능한 5년제로 정착되었습니다. 




(역대 대통령 선거와 당선 대통령 지지율 - 1. 이승만, 윤보선)




제1대 대통령 이승만  91.8% / 김구 6.6% 

제1공화국은 1948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초대 대선에는 이승만, 김구, 안재홍, 서재필이  출마했고, 대한독립촉성국민회 후보인 이승만이 91.8%의 대통령 지지율로 당선되었습니다. 정치적 야욕이 강한 이승만이 초반부터 적극적인 정치 수완을 발휘한 것입니다. 

(제1대 대통령 선거에서의 이승만과 김구)

당시에는 부통령 제도가 있어서 이시영이 되었으나, 국민방위군 사건으로 이승만에게 항의하다가 사퇴해 버렸습니다. (국민방위군 사건은 상부의 부정부패 때문에 6.25 전쟁 중에 5만 명의 국군이 동사하거나 굶어 죽은 사건입니다) 
후보였던 김구는 1949년 암살 당했습니다. 이승만과 보수집권당의 배후설이 짙은 사건입니다. 





제2대 대통령 이승만 74.6% / 조봉암 11.4% 

제2대 대선은 6.25전쟁 중인 1952년에 실시되었습니다. 후보로 이승만, 조봉암, 이시영, 신흥우가 나왔고, 자유당으로 나온 이승만이 74.6%의 대통령 지지율로 당선되었습니다. 표 차이는 444만 표입니다. 부통령에는 함태영과 이범석이 맞붙어서 함태영이 3대 부통령으로 뽑혔습니다. 


(제2대 대통령 선거에서의 이승만과 조봉암)

이시영의 뒤를 이었던 2대 부통령 김성수가, 이승만이 부산 정치파동을 핑계로 영구집권을 위한 헌법으로 개정을 개정하려하자, 사퇴하여 2대 대통령과 3대 부통령을 뽑는 선거가 되었습니다. 
자유당 내에서 이범석은 이승만을 위협할 정도로 영향력이 있었습니다. 이를 견제하기 위해 이승만은,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당인 이범석이 부통령에 뽑히는 것을 방해하였습니다. 





제3대 대통령 이승만 70% / 조봉암 30% 

제3대 대선은 1956년 자유당 이승만 70%, 민주당 조봉암 30%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승만이 288만 표 차이로 당선되었습니다. 민주당에서 나온 신익희가 유세 도중 갑자기 사망해서 국민들이 항의의 표시로 일부러 무효표를 던졌습니다. 신익희의 사인은 뇌일혈로 발표되었으나, 홍차를 마신 뒤 갑자기 쓰러졌기 때문에 암살의혹도 있었던 것입니다. 


(제3대 대통령 선거에서의 이승만과 신익희)

무소속 조봉암의 지지율은 자유당에게 큰 부담을 주었습니다. 부정선거를 하지 않았다면 조봉암에게 졌을 것이라는 위기감이 자유당 내에서도 있었습니다. 결국 북한을 도왔다는 누명을 쓰고 1959년 교수형을 당합니다. 사법권이 정권의 시녀가 되어 사법살인을 했다는 평가가 있는 사건입니다. 
부통령으로는 장면이 뽑혔습니다. 장면도 암살위기를 겪었습니다. 




제4대 대통령 무효, 이승만 100% / 조병옥 사망 

제4대 대선은 1960년에 있었습니다. 경쟁자였던 민주당의 조병옥이 선거 도중 갑자기 병이 악화되어 사망하는 바람에, 이승만이 단독 출마하여 투표율 97%에 100% 대통령 지지율로 당선되었습니다. 무효표가 122만 표나 발생하였습니다. 또한 이 대통령 선거는 부통령에 이기붕을 당선시키기 위해 정치깡패를 동원하는 등의 부정선거를 저질러 4.19의거로 이어졌습니다. 


(제4대 대통령 선거에서의 이승만과 조병옥)

정부의 계엄령에도 불구하고 결국 전국적인 시위에 이어 국회에서도 무효로 처리되고, 이승만은 미국으로 도피했으며 이기붕은 가족 자살에 이릅니다. 
이승만이 하야할 때 눈물을 흘리며 국부라고 부르던 국민들도 꽤 있었습니다. 아직도 국부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많은데, 왕과 대통령을 구분하지 못하는 전근대적인 생각입니다. 




제4대 대통령 윤보선 : 82.2% / 김창숙 11.7%  

대통령제의 권력독점으로 인한 부패와 부정을 경험한 후의 한국은 내각책임제로 제2공화국을 열었습니다. 4.19의거에 의하여 제1공화국을 몰아낸 1960년, 국회 간접선거로 선거가 있었습니다. 민주당이 수권정당이 되어 10명의 후보가 출마한 가운데, 82.2%로 윤보선이 대통령에, 장면이 국무총리에 뽑혔습니다. 민주당의 구파인 윤보선은 신파인 장면 총리를 반대하여 다른 총리를 추천했으나, 국회의 계속된 거부행사로 결국 장면이 실권을 잡게 됩니다. 


(제4대 대통령 선거에서의 윤보선과 김창숙)

5.16 쿠데타의 학습효과로 제2공화국이 무능한 정권으로 낙인 찍혔지만, 능력이 없다기 보다는 시간이 없었던 정권이었습니다. 박정희 정부가 치적으로 내세우는 경제개발계획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 윤보선 정부였고, 4.19 시위 이후 봇물처럼 터졌던 전국적 시위물결도 안정화되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한 때였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아직 과도기에 있었던 윤보선 정부는 1961년 박정희의 군사쿠데타로 일찍 막을 내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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