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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세븐
[이화학당 체조 수업 사건 - 이화여대 일화]현재의 이화여대와 이화여고는 이화학당에서 시작했습니다. 이화학당은 1886년에 조선 한성부에 설립된 교육기관이었습니다. 여자를 밖으로 돌리지 않던 유교 관습이 아직도 남아 있기에, 처음에는 학생도 구하기 힘들었다고 합니다.그러다가 1890년에 박영효가 딸을 이화학당에 보내면서 상류층의 아이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나마 돈 좀 있고 권력 좀 있는 사람들이나 가능했던 것이 교육입니다. 그러다가 1893년 양반가들의 대찬 항의를 받으며 위기를 겪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 블로그는 "심심할 때 잡지처럼 읽는 지식"이라는 목적으로 운영됩니다. 즐겨찾기(북마크) 해 놓으면 심심할 때 좋습니다. [엮인 글] 나혜석, 최초의 서양화가 - 나혜석거리의 페미니스트 "여자도 사람이..
[도쿠가와 쓰나요시 쇼군 법칙 - 살생금지령(생류연민령) 동물보호법]일본 역사에는 이미 17세기에 동물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동물보호법을 정한 쇼군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도쿠가와 쓰나요시 쇼군의 살생금지령 동물보호법(생류연령)이 너무나 지나쳤다는 데에 있습니다. 쓰나요시 쇼군의 생류연민령으로도 불렸던 황당한 쇼군 법칙이 무엇이었는지 시간여행을 해봅시다. [엮인 글]무타구치 렌야 - 일본 희대의 무능한 장군 (임팔전투) 살생금지령을 내린 도쿠가와 쓰나요시 임진왜란이 끝나고 약 100년 후인 1680년대에 일본은 '에도 막부'의 5대 쇼군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도쿠가와 쓰나요시'입니다. 이때 일본은 사상 최대의 경제 호황기를 맞고 있었고, 조선은 '기사환국' 등의 당파싸움으로 서로 죽이는 피..
[애처가 이황 - 애처가 일화와 이황 부인 권씨와의 관계]성리학을 꽃피운 조선 초기의 대학자를 대표하는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특히 이황은 애처가라는 얘기들이 전해져 옵니다. 애처가 이황의 부인 권씨는 지적장애인이었기에 오히려 더 많이 감싸고 챙겼다는 얘기입니다. 그의 일화 중 어떤 것들은 현대에도 부부 지침서로 기억할만 합니다. [엮인 글]정순왕후와 이사관의 야화 - 영조, 사도세자, 정조의 시대 애처가 이황 부인 권씨 퇴계 '이황'은 1501년에 태어난 학자입니다. 율곡 '이이'는 이황을 가르켜 '공자' - '주자'를 잇는 대학자라고 했습니다. 이토록 큰 영향을 끼친 이황은 애처가라는 평도 받습니다. 우주 만물을 성리학의 이치에서 바라본 이황은 부부라고 할지라도 손님을..
[세종대왕의 고기 편식 - 세종, 고기와 비만, 당뇨병]수많은 왕들 중에서 "고기"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세종대왕일 정도로 세종의 고기 편식은 유별납니다. 세종대왕과 고기의 일화들을 보면 비만과 당뇨병으로 고생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습니다. 세종의 편식은 현대병과도 연결해서 생각해 볼만 합니다. [글의 순서]세종대왕은 편식대왕세종대왕과 고기세종의 고기 편식과 질병 세종대왕은 편식대왕 드라마를 보면 `세종대왕`은 날씬하고 잘 생기고 목소리도 좋은 배우가 연기를 맡습니다. 혹은 너무 연구를 많이 해서 세종이 허약체질인 것처럼 표현하는 책도 많습니다. 그러나 세종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뚱뚱하고 질병투성이인데다가 편식까지 심한 왕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이런 얘기들은 세종과 고기의 ..
[조선 문종의 이혼과 결혼들 - 현덕왕후와 단종 죽음의 배경]엄격한 유교국가의 왕인 조선 문종은 두 번의 이혼과 세 번의 결혼을 하였습니다. 성군이었던 세종이 아버지이고 문종 또한 출중한 학문과 성품, 그리고 외모까지 겸비한 엄친아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혼이 엄격한 조선시대에 문종은 두 번이나 이혼을 한 것입니다. 이것은 나중에 문종의 아들 단종이 왕권을 빼앗기는 것에도 연결되는데... 이 글은 문종과 부인들에 얽힌 조선 왕실의 뒷이야기입니다. [이 글의 순서]1. 문종의 첫 이혼 휘빈 김씨2. 문종의 두번째 이혼 순비 봉씨3. 현덕왕후와 단종 문종의 첫 번째 결혼과 이혼 - 휘빈 김씨 태평성대를 연 세종에게 '문종'은 아주 특별한 세자였습니다. 유교국가를 표방하며 조선이 건국되었지만, 피비린내 ..
[정도전의 최후 - 이방원의 왕자의 난과 정도전의 죽음] 조선 건국의 절대적인 인물 정도전의 최후는 처참했습니다. 정도전은 비명의 죽음을 맞게 되고, 그 후 수백 년 동안 나쁜 평가 속에 있었습니다. 한 국가를 세웠을 뿐만 아니라 조선이 수백 년간 지속될 통치체계를 만들었지만 정도전의 죽음은 묘도 남아있지 못할 정도의 최후였습니다. 정도전은 이방원의 왕자의 난에 의해 최후를 맞은 후 무려 500년을 간신으로 치부 당했던 것입니다. [엮인 글 링크] 정도전의 성격과 정도전 업적, 요동정벌, 민본주의 과전법 평가 왕자의 난 이전의 정도전과 이방원 정도전과 이성계는 친구같은 군신관계였습니다. 이성계를 왕위에 올려준 인물이 정도전이지만, 조선건국 이후 정치, 경제, 체제, 사상, 국방, 심지어 외교에까지도 정도..
[차례 제사 상 차리기 - 홍동백서, 조율이시, 어동육서는 근거 없는 말] 한국인은 제삿날 외에도 설날, 추석에 제사상을 올립니다. 제사 상 차리기는 워낙 번거로워서 홍동백서, 조율이시, 어동육서 등을 외우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때 이런 말들이 근거가 없다는 것이 밝혀져 화제가 되기도 했었습니다. 실질적인 차례상의 의미보다 허례허식을 중요시한 풍토가 만들어낸 말들이라고 합니다. 홍동백서, 조율이시, 어동육서 근거 없는 말 유교국가를 자처해 온 조선은 예법에 따라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 전통은 지금도 중요하게 전해지지만, 상다리가 휘도록 제삿상을 차리다 보면 명절이 오히려 힘들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옛 유교 문헌에서 홍동백서나 조율이시, 좌포우혜, 어동육서 등은 찾아볼 수가 없다고 합니다. 다시 ..
[맹사성 - 세종의 청렴한 정승, 맹사성의 일화와 황희정승과의 비교] 조선 초 세종의 놀라운 업적에는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해서 모범을 보이는 삼정승이 있었습니다. 황희, 맹사성, 윤회는 세종의 측근으로 재상을 맡아 조선의 발전을 이룩하였습니다. 그 중에서 맹사성은 예의가 바르고 소박하면서도 업무에는 강직하여 공직자의 모범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청렴한 세종의 정승, 맹사성의 생애와 업적 맹사성은 최영 장군의 손녀 사위였습니다. 그래서인지 맹사성은 황금보기를 돌같이 하는 최영 장군을 본받아 살고자 했다고 합니다. 재능이 있고 성품이 올바르기 때문에 최영의 숙적인 이성계도 맹사성을 조선 건국 후에도 중용하였습니다. 대사헌을 거쳐 이조판서와 좌의정에 오르기까지 맹사성은 세종의 여진정벌을 돕고 조선 초의 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