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당스 문학과 유미주의에 대한 18세기 유럽 살펴보기]
데카당스란 세기말적 경향을 말한다
2천년 전 로마 말기는 물질이 풍부해지면서 사회적 빈부차가 극심해지고 상류층은 향락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낭비와 퇴폐문화가 만연하면서 로마는 멸망의 길에 들어서게 되는데, 19세기 후반에 유럽에서 이러한 향락, 퇴폐주의를 본받는 문예사조가 다시 생기면서 이를 데카당스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데카당스란 퇴폐주의자들이란 뜻인데, 프랑스에서 시작되어 영국 등 유럽으로 퍼지며 문학과 미술 등 예술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기존의 질서를 바탕으로 한 전통 가치관을 거부하고 방탕한 자유와 무질서의 혼란 속에서 미적 기준을 찾으려 했습니다.
데카당스 이전의 문화는 원칙과 질서정연한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려했지만 데카당스는 이것을 획일화라고 생각하고 무질서와 방탕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으려했던 것입니다.
데카당스 예술가들은 퇴폐적인 세상을 동경하는데, 관음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관능적인 미적 기준을 가지고 있으며 성적 도착증을 내포하기도 했습니다.
지나칠 정도로 탐미적이고 기괴한 행동에서의 감각적 자극을 추구하였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움에 집착하여 우울해지고 환각적인 면조차 보이는 것도 여기에 속합니다. 흔히 이러한 경향을 세기말적인 경향이라고 표현합니다.
(출처: en.wikipedia.org)
잠간 둘러보는 데카당스 작가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20여년의 기간에서 잠간 동안 폭발적인 문예사조를 이루었으나 오래 가지는 못하였습니다.
유럽에서 보들레르, 오스카 와일드, 호프만스탈, 토마스 만, 플로베르가 유명하며 한국의 작가로는 오장환이 대표적인 데카당스 작가입니다. 일본의 데카당스 작가로는 다자이 오사무가 있습니다.
보들레르-랭보-엘리어트로 이어지는 구시대 문학의 습성 깨트리기는 현대시로 전환되는 길목이기도 합니다.
보들레르는 "악의 꽃"에서 기존 문학의 구태의연한 규칙 얽매이기를 깨트리며 파괴문학을 시도합니다. 보들레르는 외설적이며 신성 모독적이라는 공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보들레르는 6살에 거액의 상속을 받고 법대를 들어갔으나 방탕한 생활을 계속하여 말기에는 질병과 빚에 허덕이며 살았던 시인입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저항할 수 없는 운명에 대한 세기말적 포기는 신비주의와 탐미주의적 경향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19세기의 프랑스가 거대한 과도기에 서 있었던 것도 예술가들에게 데카당스 풍을 만들게 하였을 것입니다.
(출처: www.break.com)
18세기의 데카당스는 왜 발생하였을까?
프랑스는 18세기에 왕을 처형하고 혁명을 일으킵니다. 하지만 나폴레옹이 정권을 잡으며 다시 황제에 오르고, 유럽전쟁에서 패배하며 다시 왕정으로 바뀌었다가 2월 혁명으로 다시 공화정으로 바뀝니다. 하지만 나폴레옹 3세가 제정시대를 다시 열고 또 전쟁에 패해 배상금을 물어내는 시기를 맡게 되었습니다.
거기다 18세기의 산업혁명은 가진 자에게는 더 많은 부를 쌓게 하고 못 가진 자에게는 더 많은 허탈감을 안겨 주면서, 겉으로는 활황기의 모습이었으나 속으로는 깊게 썩어 들어가는 시대를 만들었습니다.
프랑스의 이러한 상황은 구태의연을 벗진 못한 권력층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며, 불안정한 변혁기의 시대적 공황기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데카당스는 기존 질서에 대한 반항을 하게 되었고 인간성 상실의 시대를 여실히 보여주는 문학으로 확산되게 됩니다.
기교와 절제로 풍미했던 낭만파의 시대는 가고 데카당스는 상징주의에 영향을 주며 고정되지 않은 미에 대한 탐구정신으로 현대적 문학사상과 예술사상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현대에도 데카당스라는 표현으로 타락하고 음울한 시대에서의 탐미주의적 갈등을 그리는 예술작품이 간간이 발표는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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