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 사망 원인
고종 독살 미스터리
1919년 1월 21일, 조선의 황제 고종이 사망했습니다. 이 사건은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긴 이후 가장 큰 사건이었고, 역사적인 파장도 컸던 사건입니다. 이만큼 큰 사건이었기에 고종의 사망 원인이 무엇인가, 고종 독살설은 사실인가하는 추측과 반론이 많습니다.
이 글에서는 왜 독살설이 나오게 되었는지를 설명한 후, 왜 독살설보다는 뇌출혈이나 뇌동맥류 파열의 가능성이 더 높은지를 설명합니다. 역사의 비극을 배경으로 멸망의 마지막을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가져 봅니다.
고종 사망 원인 - 고종 독살 미스터리와 뇌출혈
고종 독살설의 배경
상황을 이해하려면 고종 황제가 사망하는 당시의 배경을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고종 황제는 조선의 26대 왕이자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였습니다. 1863년부터 1907년까지 재위했으며, 철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습니다. 고종의 아버지는 흥선대원군이며, 아내는 명성 황후였습니다.
하지만 일제의 침략이 이어졌습니다. 1905년 일본의 강요로 을사늑약이 체결되었고, 1907년 고종 황제는 강제로 폐위되었습니다. 그후 1910년 한일병합늑약을 당하며 결국 조선이 망합니다. 이후 고종 황제는 1919년 1월 21일에 사망하는데, 이때 독살설이 돌고 마침내 1919년 3월 1일에 3.1 만세 운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결국 1919년 4월 상하이 임시정부가 세워지며 현재의 대한민국의 모태가 됩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조선총독부가 고종 사망의 모든 처리를 담당했기 때문에, 이상한 점이 있어도 아무도 재조사를 하자고 할 수가 없었습니다. 바로 이 점이 고종 독살설의 배경이며, 고종의 사망 원인에 대한 미스터리로 남게 되는 것입니다.
고종 사망 원인에 대한 정황들
고종 독살설에 대한 이유는 여러 가지 주장이 있습니다. 그것을 정리하면, 큰 줄기는 아래처럼 됩니다.
- 나이는 66살이지만, 사망 전날까지 평소와 다름없이 건강한 모습이었다.
- 하지만 쓰러지기 얼마 전부터 불면증을 강하게 호소했다.
- 고종 황제가 자다가 갑자기 "어" 하는 소리와 함께 가사상태에 들어갔다.
- 발작과 경련이 반복되면서 맥박과 체온이 상승했다.
- 시신이 심하게 부어올랐고, 특히 팔다리가 심하게 부어올라 한복 바지를 찢어야 할 정도였다.
- 목에서 복부까지 30cm가량 검은 줄이 나타났다.
- 치아가 모두 빠져 있고 혀가 사라졌다.
- 식혜를 먹고 30분 정도 지난 후 죽었는데, 당시 식혜를 올린 궁녀 두 명이 갑자기 사망했다.
이는 단순한 소문이 아니라 실제로 신문이나 지식인의 책에 나오는 상황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독살을 당한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계속됩니다.
고종은 왜 갑자기 죽었어야 했을까... 정치적 배경을 봐도 가능한 주장이긴 합니다. 고종의 죽음은 을사늑약과 한일병합늑약이 다 지난 후였기에 이미 대한제국이 멸망한 뒤였긴 합니다. 그러나 국내뿐 아니라 만주 등에서는 조선 회복 무장 투쟁이 계속되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즉, 일제 입장에서는 구심점을 제거해야 했을 것입니다.
고종 황제 사망 독극물은 식혜였나
고종 황제 독살설의 독극물로는 비상과 청산가리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비상은 사약에 많이 사용된 독극물이고, 무색 무취이며 물에도 잘 녹기 때문에 음료에 타 먹일 수도 있는 독극물입니다. 청산가리는 특유의 비터 아몬드 향이 나고 물에 타면 아린 맛이 있습니다. 그러나 냄새를 못 느끼는 사람도 있고, 산성과 섞으면 맛도 덜 느껴지게 됩니다.
비상은 바로 죽지 않고, 구토와 심한 복통 등 심한 고통을 겪다가 죽게 됩니다. 청산가리는 미토콘드리아로 가는 산소를 막아서 세포가 질식하게 만드는데, 보통 5분 정도 후에 욱하는 증상과 함께 죽게 됩니다. 물론 사람이나 먹은 양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더구나 이 음모설이 계속되는 이유는, 당시 고종 황제에게 식혜를 올렸던 두 궁녀가 죽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대해, 음료를 준비한 두 궁녀도 독살에 사용된 독극물을 먹거나 노출되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고, 고종을 독살한 무리가 비밀을 묻어버리기 위해 두 궁녀를 희생시킨 것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고종 독살설에 대한 반론
그런데 비상이나 청산가리를 사용해서 독살했다는 주장에는 다른 점이 많습니다. 청산가리는 거의 바로 죽고, 비상은 한참 있다가 죽는데 고종 황제는 그 사이의 시간인 30분 뒤에 사망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서, 양의 차이 때문일 수도 있고, 그 이전부터 조금씩 나눠 먹였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일단 커피 등 음료맛을 잘 아는 고종이 청산가리의 아린 맛을 모르고 마셨다는 것도 이상하고, 구토와 복통이 심하게 일어나는 비상 중독 증상도 보이지 않았다는 것도 이상합니다. 장기간 조금씩 나눠 먹였다는 주장도, 죽기 이전에 고종이 멀쩡히 몸을 움직였다는 점에서 독살설은 확정할 증거가 부족합니다.
두 궁녀가 죽은 사건도 수상하기는 그지 없으나, 이것도 확정하기엔 부족합니다. 첫 번째 궁녀는 수년 전부터 폐결핵 증세를 앓았으며 죽던 날도 여러 차례 피를 토하고 의식을 잃었습니다. 두 번째 궁녀는 감기에 걸려 치료받던 중 죽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첫 궁녀는 폐결핵으로, 다음 궁녀는 당시 유행하던 스페인 독감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고종 독살 미스터리 대한 반론
그렇다면 시신의 팔다리가 심하게 부어 오른 이유는? 그것은 시신이 부패하면서 생길 수 있는 증상이라고 합니다. 요즘처럼 냉장안치실이 없는 상태이기에 내부 부패가 생기면 몸 여기저기가 부어 오른다고 합니다. 30cm 가량의 검은 줄은 또 무엇인가? 이것은 부패망이라고 하는데, 세균이 혈관을 따라 증식하면서 생기는 현상일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당시 시신 보관 의술의 차이 때문이라고 한다지만, 치아가 모두 빠지고 혀가 사라진 것은 또 왜 그럴까? 이 역시도 시신 부패를 검시해 본 검시관들은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고종은 평소에 치아가 좋지 못 했고, 시신 부패로 인해 잇몸이 견디지 못해서 빠지기도 하며, 혀가 변색되고 부어 오르면 혀가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고 합니다.
이런 반론의 핵심은 간단합니다. 흔히 보이는 증상이 더 설득력있는 설명이라는 것입니다. 비상이나 청산가리에 의한 독살일 수도 있지만 그때 발생하는 흔한 증상이 명확하지 않은 반면, 이가 빠지고 몸이 붓는 것은 오히려 시신 부패 중에 흔하게 보이는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설득력이 있다는 반론입니다.
고종 사망 원인은?
오히려 현대의 법의학자들은 고종의 사망 원인을 뇌동맥류 파열이나 고혈압으로 인한 뇌출혈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뇌동맥류 파열이란 뇌 속의 핏줄이 터져서 머리 속이 뇌로 차는 현상으로, 즉각적이고 심한 통증이 오며 몇 초 내에 최고 강도에 도달합니다. 실제로 뇌동맥류 파열 환자의 30%가 출혈과 동시에 사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뇌출혈도 비슷한데, 뇌출혈이란 뇌혈관벽의 약한 부분이 터져 출혈이 일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75%는 고혈압 때문에 뇌혈관이 터지며, 급작스러운 두통과 경련 등이 덮칩니다. 고종이 발작과 경련이 반복되면서 맥박과 체온이 상승했다고 하는데, 뇌출혈량이 많을 경우 갑작스럽게 의식을 잃고 30분 이내에 사망하기도 합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당시 고종의 나이는 66살이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70대 중반 이후의 신체연령이었을 것입니다. 거기다가 왕족으로서 불규칙한 식습관, 불면증, 스트레스 등이 겹치고 고혈압이 있었을 가능성이 독약을 먹었을 가능성보다 높습니다. 물론 이것마저도 다시 부검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가능성으로 볼 수 밖에 없지만,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인 것만은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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