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유용한 지식 칼럼/역사&사건

최초의 비행선 폭격 - 항공전의 시작 (제1차 세계대전 런던 폭격)

2025. 1. 4.

최초의 비행선 폭격

항공전의 시작 - 제1차 세계대전 런던 폭격


최초의 비행선 폭격 - 항공전의 시작 (제1차 세계대전 런던 폭격)
최초의 비행선 폭격 - 항공전의 시작 (제1차 세계대전 런던 폭격)


 

1903년, 세계 최초의 동력 비행기가 개발되었습니다. 그리고 1940년대, 현대적 항공전투가 시작됩니다. 그러나 그 이전의 항공 폭격은 비행선에 의해 열린 것이었습니다. 1852년, 세계 최초의 동력 비행 선이 개발되었고, 1915년, 비행선 항공전 시작된 것입니다.

 

이 글에서는 단순히 항공전이 시작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배경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인지, 제1차 세계대전 런던 비행선 폭격은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그로 인해 현대적 항공전으로 변천하게 된 역사는 무엇인지까지 이해하기 쉽도륵 설명하려고 합니다.

 

 


 

최초의 비행선 폭격 - 항공전의 시작 (제1차 세계대전 런던 폭격)


 

제1차 세계대전, 항공전 시작의 배경

 

최초의 항공전은 1911년 이탈리아-터키 전쟁 때 처음으로 비행기가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때의 비행기는 수류탄 크기의 폭탄 정도를 겨우 실을 수 있었기 때문에, 항공 폭격이라고 부르기는 어색합니다. 그렇다면 인류 최초의 항공 폭격은 무엇인가... 그것은 제1차 세계대전의 비행선 폭격이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항공전 시작의 배경
제1차 세계대전, 항공전 시작의 배경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의 해상 봉쇄로 인해 독일은 전쟁 물자 부족에 시달렸습니다. 특히 화약에 필요한 질소 수입이 문제였는데, 주재료가 칠레 등 해외에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독일은 대체물을 찾아야 했고, 전략 폭격이라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게 된 것입니다.

 

영국은 바다와 해군이라는 역사적 막강 전력이 있기 때문에, 해군이 약한 독일이 공격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영국은 하늘의 공격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고, 비행선은 8톤에 달하는 폭탄을 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적의 사기를 꺾으려는 심리적 전략까지 생각한 독일에게는 획기적인 방법이었습니다.

 

 


 

최초의 항공 폭격전 역사

 

독일은 체펠린 비행선을 개발했습니다. 독일의 폰 체펠린 백작이 남북전쟁 당시 북군의 기구를 보고 영감을 얻어 개발한 비행선입니다. 프랑스도 비행선을 설계했지만 어려움이 컸습니다. 특히 영국은 공중 전투의 문제를 깨닫고 대규모 투자를 해서 메이플라이 비행선을 개발했지만 크게 실패한 후, 오히려 해군력에 집중했습니다.

 

최초의 항공 폭격전 역사
최초의 항공 폭격전 역사

 

전쟁이 장기화하자, 독일 군부는 주요 도시를 폭격하여 적의 사기를 꺾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당시 독일 황제 빌헬름 2세는 도시 폭격이 비인도적이라고 반대했습니다. 특히 영국은 혈연적으로 할머니가 다스렸던 나라였기에 빌헬름 2세는 런던과 왕궁 폭격을 크게 반대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빌헬름 2세는 프랑스 폭격을 막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파리 폭격을 시작했지만, 파리는 이미 대공포가 강화된 상태였기 때문에 비행선 폭격이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1915년이 되자 전황이 불리해지면서, 빌헬름 2세도 할 수 없이 영국 폭격을 허용하게 됩니다. 대신, 외곽의 산업 시설이나 템스강변의 조선소, 조병창 등에만 집중되었습니다.

 

 


 

1915년 독일 비행선의 영국 본토 폭격

 

1915년 1월 19일, 독일은 L3, L4, L6 세 대의 비행선을 동원하여 야마우스 해군 기지, 랭커스터, 셰링엄, 킹스린 등 여러 도시를 공격했습니다. 하지만 이 공격은 정밀하지 못했으며, 민간인 사상자를 발생시켰습니다. 비행선은 당시 혁신적인 무기였지만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폭격과 비교하면 매우 미약한 공격력이었습니다.

 

1915년 한 해 동안 독일은 총 20회의 비행선 폭격을 감행하여 37톤의 폭탄을 영국에 투하했지만, 실제 피해는 사망자 181명, 부상자 455명이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인명 피해가 아닙니다. 영국은 섬이라는 지리적 이점 덕분에 외세 침략에 안전하다고 생각하다가, 하늘에서 날아온 공격에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윈스턴 처칠은 영국 대공 방어 능력이 독일 비행선의 공격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독일 비행선 생산 기지를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한동안 영국은 심리적인 충격으로 흔들렸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대공포를 강화하고 독일 비행선을 격추하는 대응력이 생기게 됩니다.

 

1915년 독일 비행선의 영국 본토 폭격
1915년 독일 비행선의 영국 본토 폭격

 


 

비행선 한계와 현대 항공전의 시작

 

독일은 당시 세계 최첨단 기술로 여겨진 비행선 개발을 통해 자신들의 기술력을 과시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비행선은 여러 가지 군사적 한계가 분명했습니다. 비행선의 순항 고도는 1,000에서 2,000m, 최대 3,500m를 넘지 못했기 때문에 당시 원시적인 대공포에도 쉽게 격추될 수 있었습니다.

 

더욱 큰 문제는 기상 조건에 매우 약해서 악천후에 쉽게 파손되거나 통제력을 잃고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1915년 2월, 영국 폭격을 위해 출격한 L3와 L4 두 대의 비행선이 악천후로 인해 실종되었습니다. 또 다른 비행선 두 대는 폭풍을 만나 승무원들까지 몰살당하는 비극도 있었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더군다나 비행선의 골조를 만드는 데 사용된 알루미늄은 매우 비쌌고수소 가스는 폭발 위험이 커서 안전성에도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비행선 폭격의 한계가 드러나자, 독일은 폭격기 및 호위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현대 항공전의 시대를 여는 배경이 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24년 후 2차 대전에서 참혹한 폭격전으로 연결됩니다.

 

 


 

함께 볼 심심풀이 지식거리

 

최초의 공중전 - 전투기 탄생 이유가 된 항공전

 

최초의 공중전 - 전투기 탄생 이유가 된 항공전

[최초의 공중전 - 전투기 탄생 이유가 된 항공전] 현대전에서는 물론 전투기 항공전을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과거와 같이 육상전은 당연히 중요하지만, 공군력이 전쟁에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kiss7.tistory.com

 

전쟁 최초의 독가스 발명 - 프리츠 하버 (비료와 독가스의 아버지)

 

전쟁 최초의 독가스 발명 - 프리츠 하버 (비료와 독가스의 아버지)

독가스 발명가 프리츠 하버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전쟁 최초의 독가스가 사용되었습니다. 이것을 개발한 사람은 프리츠 하버... 그런데 그가 비료 발명의 공헌자였다니! 전쟁 최초의 독가스 발명 -

kiss7.tistory.com

 

 

[ 최초의 비행선 폭격 - 항공전의 시작 (제1차 세계대전 런던 폭격) ]

 

키스세븐지식은 키스세븐과 그룹 사이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