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오련
독도, 대한해협을 횡단과 근황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은 1970년 방콕 아시안게임과 19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에서 메달을 따며 어려웠던 한국 국민에게 희망을 주었던 인물입니다. 그런데 그보다도 더 유명한 것은 1980년의 대한해협 횡단이었습니다. 48㎞를 헤엄쳐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었습니다.
국내외에서 유명했던 그는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요. 2009년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될 때까지의 파란만장한 그의 삶을 정리했습니다. 도버해협 횡단, 독도 프로젝트 등 도전의 연속이었던 순간들을 설명합니다.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 - 대한해협 횡단, 독도 횡단, 도버해협 횡단, 근황
조오련은 누구인가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 선수는 전남 해남읍의 평범한 농부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제주도로 심부름을 갔다가 수영 경기를 관람한 것이 계기가 되어 수영 선수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1968년, 해남고등학교 1학년이던 조 선수는 학업을 중단하고 서울로 올라와 YMCA 수영장에서 훈련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서울 선수들로부터 외면받고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던 그는 3명의 후원자를 우연히 만나게 되면서 힘을 얻게 됩니다.
그 후 1969년 전국체전 서울시 예선전에서 자유형 400m와 1,500m를 석권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양정고등학교에 스카우트되어 본격적인 훈련을 받은 조오련은 국내 대회에서 계속 우승하며 국가대표로 선발되었습니다.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
그의 주 종목은 자유형 장거리였지만, 개인혼영과 접영, 배영까지 못 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1970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는 자유형 400m와 1,500m에서 우승하며 '아시아의 물개'라는 별명을 얻었고, 4년 후 테헤란 아시안게임에서도 2연패를 달성하며 50여 개의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조 선수는 1970년대 한국 수영의 발전을 이끈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못 사는 나라 한국은 스포츠 부분에서도 성적이 좋지 못했기 때문에, 그의 활약은 국민들에게 힘을 주는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1978년 선수로서는 은퇴하는데, 대한민국 체육상과 체육훈장 청룡장을 받으며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은퇴 후에 조오현을 대한해협 횡단을 계획했습니다. 그리고 1980년 8월 11일, 맨몸으로 수영을 해서 대한해협을 13시간 16분 만에 횡단하는 대단한 업적을 이루게 됩니다. 부산시 서구 다대포 앞바다에서 출발하여 일본 대마도 북단의 사오자끼 등대까지 가는 대여정이었습니다.
조오련의 대한해협 횡단
대한해협 횡단은 상어의 위협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쇠그물 안에서 진행됐습니다. 3척의 배가 10m x 5m x 2m의 쇠그물을 치고 그 안에서 수영을 했습니다. 하지만 강한 해류 속에서 근육마비를 겪으며 15분간 서서 헤엄쳐 몸을 풀어야 하는 위기도 있었습니다.
단순한 수영 기록을 넘어, 인간 정신의 불굴함을 상징하는 이 도전은 영양분을 섭취하기 위해 죽을 빨아먹으며 계속되었습니다. 장대로 죽을 넘겨주면 이를 빨아먹으면서 수영한 것입니다.
처음엔 대한해협 횡단에 18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었습니다. 하지만 생각지 못한 밀물이 그를 도와주었습니다. 덕분에 13시간 16분 만에 거대한 도전을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대한해협의 거리는 무려 48㎞나 됩니다. 이때 그의 나이는 30살이었습니다.
이후에도 그의 도전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2년 뒤엔 32㎞의 도버해협을 건넜고, 2003년에는 ‘한강 600리’를 헤엄쳐 건넜습니다. 1982년 영국 도버 해협 횡단 때는 현지 가이드가 돈을 가지고 달아나는 어려움 속에서도 굽히지 않아서 더욱 화제가 되었습니다.
근황과 삶과 죽음
국내외에서 유명했던 것과는 달리, 조오련의 삶은 점점 어려워져 갔습니다. 수영장을 마련하기 위한 자금이 필요했기에 아내가 하는 봉제업을 확장하려고 하다가 오히려 큰돈을 잃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1985년에는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는 시련을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오련 수영 교실을 열며 의지를 굽히지 않았고, 광복 60주년인 2005년에는 두 아들과 함께 울릉도에서 독도까지 횡단하는 대단한 일을 했습니다. 이후에도 독도를 헤엄쳐서 33바퀴 돌기를 했는데, 이것은 독립선언문 33인을 상징하며 일본에 대한 항의이기도 합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그리고 조오련은 30살에 성공했던 대한해협 횡단을 60살에 다시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무려 1억원의 빚을 지면서 노력했지만, 2009년에 갑자기 심장마비로 숨지고 말았습니다. 한국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인간의 불굴의 의지를 증명했던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은 그렇게 뜨겁게 살다가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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