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립 장군의 성격
탄금대 전투의 신립과 원녀의 전설
사람들은 신립 장군의 탄금대 전투가 옳았느냐는 관점에서 신립을 평가합니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왜 그가 그런 선택을 했는지를 전술이 아니라 성격에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역사상의 수많은 장군들을 보면, 오직 이성적 판단만으로 전투를 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신립 장군과 원녀의 전설이나, 부하와의 관계를 통해서 또 다른 면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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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금대 전투와 신립 성격 - 신립 장군과 원녀의 전설 등
신립 장군은 어떤 사람인가
'신립' 장군은 임진왜란 때의 육군 장수입니다. 왜군이 남부 지방에서 연전연승하며 올라오는 상황에서, 조선은 한양을 지키기 위한 최강 카드로 신립을 뽑았습니다. 그러나 최고의 방어지라고 여기는 조령을 포기하고 탄금대 앞에서 기병 돌격을 하다가 전투에서 지게 됩니다.
신립은 당시만 해도 조선에서 가장 용맹한 장군이었습니다. 특히 1583년 여진족의 '니탕개'을 토벌할 때는 용맹하고 저돌적인 공격으로 '선조'의 믿음을 듬뿍 받기도 했습니다. 신립의 장점은 기병을 이용한 파괴력이었습니다. 제3자 입장에서 기병 돌격 방식은 매우 화려했기 때문에 특히나 칭송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역사가들은 대체 왜 조령을 포기했을까라는 궁금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신립 장군의 탄금대 전투 방식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많기 때문입니다. 조령에서 방어전을 편 것이 아니라, 조총을 가진 적에게 기병 돌격전을 편 원인은 그의 성격도 알아볼 필요가 생기는 것입니다.
신립의 성격, 성품
그러나 문제는 단 한 번도 왜군이나 왜구와 싸워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가진 일본군에 대한 인식은 '을묘왜변'에서 왜군은 수군이 강하고 육군이 약하다는 정보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왜군은 배를 타고 왔으니 기병대가 없을 것이고, 그는 기병대의 돌파력으로 승부를 거는 장군이었으니 오판을 할만 했습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용맹한 장군이지만 소통으로 이끄는 장군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좋게 보면 매우 엄격하고 규율대로 하는 대쪽이었지만, 나쁘게 보면 부하들에게 잔혹한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유성룡'은 "징비록"에서 평소 성질이 잔인하고 가는 곳마다 사람을 죽여서 권위를 세운다고 했습니다.
1987년, 졸개가 부장에게 대들었다는 이유로 즉결처분으로 처형시킨 사건도 있었습니다. 전쟁 중이 아닌데도 보고 없이 즉결처분하는 것은 파직감이었습니다. 또한 신립은 탄금대 전투 전에도, 아직 왜군이 조령을 넘지 않았는데 넘었다고 잘못 보고한 정찰병을 참수해버리는 냉혹함을 보였었습니다.
신립 장군과 원녀의 전설
신립이 무과에 붙기 전의 일입니다. 산길에서 길을 잃었는데, 한 집에서 처자가 홀로 우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왜 그러가 물어 보니, 머슴이 자신의 가족들을 다 죽이고 재산을 빼앗았으며, 아내로 삼겠다며 다시 돌아오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신립이 분노해서 머슴을 죽이고 처자를 구해줬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신립 장군의 전설에서 원녀가 왜 나오나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후 처자가 신립에게 자신을 거두어 달라고 한 것부터 문제가 생깁니다. 감사하다고 말하던 처자가 자신을 거둬달라고 한 것입니다. 하지만 신립은 이미 약속한 사람이 있다며 거절했습니다.
실망한 원녀는 집에 불을 지르고 죽어서 원귀가 되었는데, 그 후 임진왜란 때 신립이 탄금대를 선택하도록 홀렸다는 것이 전설입니다. 전체적인 맥락은 실패의 원인을 원녀에게 돌리는 형식인 전설입니다. 하지만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방식으로 거절했기에 원녀가 죽었을 것이라는 맥락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신립 장군과 탄금대 전투의 실패
사실 신립과 원녀의 전설은 남이 장군의 설화와 비슷해서, 어쩌면 원래 있었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정확한 기록이 더 이상 없어서 탄금대 전투의 실패 원인에는 여러 가설이 있으나, 탄금대 전투의 실패는 신립이 주변 보좌관들의 조언을 전혀 듣지 않고 쌩고집을 부렸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충성심과 용맹함은 인정받을만한 장수지만, 덕장이며 지장이냐는 것에는 의문점이 가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능력이 출중해도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지 않는 사람은 가장 중요한 순간에 실수를 하고도 그것을 모른다는 역사적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신립은 탄금대 전투를 계획하며, 조총의 재장전 속도보다 말의 속도가 빠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병사와 말의 심리적 흔들림도 생각하지 못했고, 지형이 속도를 낼 수 없는 곳이라는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결론적으로 혼자 잘났다고 생각하고 독단에 빠지는 사람의 문제점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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