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여자기술학원 방화사건
1990년대 인권 유린이 원인
마치 수용소 같은 강압과 구타, 감금... 경기도에 있던 여자기술학원에 방화사고가 나서 수십 명이 죽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기숙사 생활을 하던 미성년자와 가출 여성들은 불이 나도 탈출을 막으려는 시설 측 방해 때문에 죽어가야 했습니다.
대체 왜 이런 일이 있었는지, 거기에 남은 의혹이 무엇인지에 대해, 경기도에 위치한 기술학원 방화 사건을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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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여자기술학원 방화사건 - 경기도 여자 기숙학원 방화 사고와 사망자
기숙사 시스템의 기술학원
'경기여자기술학원 방화사건'은 1995년 8월 21일에 일어났습니다. 이곳은 1962년 성을 팔던 여성들의 사회 교화를 위해 경기도가 대한예수장로회 자선사업 재단에 위탁 운영하던 곳이었습니다. 경기여자기술학원의 위치는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구성동입니다.
1962년 이후 33년 동안 거친 원생 수는 4,985명이나 됐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로는 가출하거나 무의탁 중인 여성들, 비행 여자 청소년 등이 다수를 이루었습니다. 그 중엔 기술을 배우기 위해 스스로 들어온 저소득층도 있었지만, 부모가 요청해서 보낸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곳은 기숙사로 운영되었습니다. 1995년 사고시에 총 원생 수는 138명이었고, 그중 미성년자는 50명이 넘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강압적 인권 유린 시설이 되어서 탈출 소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미 그해 1월에도 원생 2명이 불을 지르고 탈출하려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인권 유린 여자 수용소
이곳은 교화를 한다며 구타하고 감금했습니다. 전화도 금지였고 외부와의 접촉이 차단되었습니다. 군대 같은, 아니 수용소 같은 시설이 되었습니다. 밤 7시에 일과가 끝나면 기숙사의 모든 출입문이 잠겼습니다. 창문마다 쇠창살이 있고 비상문도 밖에서만 열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
그러니까 진짜 큰 사고가 된 경기여자기술학원 방화사고는 두 번째 사건인 셈입니다. 1월에 있었던 방화 사건도 성공했고, 안에 불이 나면 밖에서 열어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저지른 사건입니다. 배□□ 등 주동자 18명은 새벽 2시에 불을 지르고 도망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고 유독가스가 가득 찼습니다. 1층의 유독가스까지 2층으로 올라오자, 2층의 청소년들은 좁은 화장실로 몰렸습니다. 더 이상 탈출할 수는 없었고, 결국 경기여자기술학원 방화사건은 사망자 37명, 부상자 16명의 대형 사고가 되고 말았습니다.
기술학원 방화사건의 사망자 원인
당시 언론에선 경비실 청원에게 열쇠가 없었다고 잘 못 알려졌으나, 살아남은 증언자의 증언에 의해 의혹이 더 커졌습니다. 초기에 그들은 원생들의 탈출을 막기 위해 문을 열어 주지 않고 몽둥이질을 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생들이 화장실로 방향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감 선생을 부축해서 탈출할 수 있었던 이□□의 증언에 의하면, 한 당직자가 몰래 문을 열고 나갔고, 2시 30분 정도엔 출입문 잠금이 풀려 있었다고 합니다. 나중에야 개방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닫아 놓은 상태였기에 이를 모르는 원생들은 화장실에서 죽어가야 했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결국 경기여자기술학원 방화사건에 소방대가 출동했을 때는 사망자 37명과 부상자 16명이 발생한 뒤였습니다. 탈출을 막아 놓고 자신들만 도망간 자들 때문에 더 큰 피해가 있었습니다. 그 후 이곳은 폐쇄되었고, 나중에 경기도 여성능력개발센터를 세워서 방식을 바꾸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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