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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보그룹 정태수 회장 - 죽음과 근황, 부도와 IMF 한보사태

2023. 3. 26.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 - 죽음과 근황, 부도와 IMF 한보사태 / ⓒ KBS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

 

1997년 한국은 IMF로 무너졌습니다. 그 시작은 한보그룹의 부도였고, 그 원인은 비리였습니다. 여기에는 한보그룹의 정태수 회장이 있었습니다.

한보그룹은 한국 재계 서열 14위의 기업이었습니다. 그런데 한보의 회장 정태수는 불법대출과 정계비리로 기업을 운영했습니다. 그 결과가 바로 한보그룹의 부도사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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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보그룹 정태수 회장 - 죽음과 근황, 부도와 IMF 한보사태

 

정 회장과 역술가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은 1923년에 태어났습니다. 본명은 정태준인데, 무속에 빠지면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그는 소학교(당시 초등학교)를 나온 후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서류상 대학까지 나온 것으로 되었고, 세무공무원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역술을 좋아했던 그는 어느 날 점술가에게서 "흙과 철에 관련된 사업을 해야 성공한다"는 점괘를 받았습니다. 그 후 갑자기 돌을 수집하며 돌아다니기 시작하더니, 운이 좋은지 몰리브데넘(광물질 수연) 광산을 발견하게 되고, 이것이 사업 밑천이 되었습니다. 

 


 

흙과 철로 돈을 번 사람

 

한보사태의 정태수 회장  / ⓒ KBS

광산 발견으로 수백 배 이상의 이익을 본 정태수는 그 돈으로 1974년 한보상사를 세웠습니다. 그 후 결정적인 천운이 왔습니다. 1979년 지은 은마아파트가 대박을 친 것이었습니다. 은마아파트의 위치는 서울 대치동인데, 헐값에 산 땅에 지은 수천 세대가 단 20일 만에 완전 분양되면서 엄청난 돈을 끌어 모으게 됩니다. 

 

이후 승승장구하며 사업을 넓혀 가던 그는 모기업이 될 (주)한보를 세웠습니다. 하지만 역술가의 조언을 믿던 그는 그렇게 성공했음에도 본사를 은마아파트 상가 3층에 두었습니다. 점점 커져서 재계 서열에 오른 대기업이지만 아파트 상가 속에 본사를 두고 있었으니 그의 성격을 알 수 있는 일화입니다.

 

흙에서 떼돈을 번 그는 이번엔 철 사업에 손을 대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엔 문어발처럼 자금을 동원해서 회사들을 사들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건설, 탄광, 제약, 가스, 목재, 선물, 저축, 통신, 철강, 관광 사업까지 손을 댔습니다. 

 

 


 

한보그룹의 성공과 부도

 

한보 부도는 충격적이었다 / ⓒ KBS

결국 1996년 한보그룹의 정태수 회장은 22개의 계열사를 보유하며 국내 14위의 재벌기업을 만들어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당시 한보그룹은 5조 4000억원의 매출을 일궈냈지만, 그 많은 기업을 단기간에 사들일 자금은 어떻게 조달한 것인지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역술가가 흙과 철로 돈을 벌어야 한다고 했던 말을 따르려던 것인지, 한보 정 회장은 당진제철소를 추가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제철소는 엄청난 자금이 드는 사업입니다. 대출을 해서 기업을 사고 계열사를 늘리던 (주)한보에게는 동원할 자금이 없었습니다. 

 

이미 그동안에도 그렇듯이, 역시나 은행권과 정치권에 대형 로비가 추진되었습니다. 당시는 보수정부가 들어서 있었고, 대통령은 '김영삼'이었습니다. 그의 둘째 아들 '김현철'과 여러 국회의원에게 접근한 그는 뇌물을 주며 5조 7000억 원의 불법 대출에 성공했습니다. 

 

 


 

한보그룹의 부도 원인

 

한보그룹 회장 정태수 얼굴 사진 / ⓒ KBS

그러나 한보사태는 거기서 더 큰 사건이 되었습니다. 빚을 져서 덩치를 키운 기업이 한둘이 아니었지만, 대형 로비 사건은 결정타가 되었습니다. 사실 한보그룹은 이미 1997년 1월에 자금조달의 위기를 맞았었습니다. 그것을 회사채 발행이나 차입으로 덮어오다가 결국 터질 것이 터진 것입니다. 

 

결국 정태수 회장은 1997년 구속되었습니다. 불법 대출로 받은 5조가 넘는 돈도 제대로 쓰이지 않았다는 것이 수사로 드러났습니다. 직접적으로 당진제철소에 사용된 돈은 2천억 원밖에 안 되었고, 그 외의 돈은 엉망인 그룹의 자금 조달로 사용된 것입니다. 

 

곧이어 한보리스트가 뜨고, 수많은 은행장과 전현직 국회의원들이 구속되었습니다. 특히 대통령 아들이 연루되었다는 점에서 보수정부는 큰 위기를 겪었습니다. 재계 서열 14위의 한보그룹이 무너진다는 것은 국민들에게 큰 충격이었기 때문입니다. 

 

 


 

정태수 회장과 IMF

 

정태수 근황과 그 아들 정한근 근황 - 2018년의 사망 / ⓒ KBS

하지만 정 회장의 태도는 뻔뻔스러웠습니다. 재판만 시작되면 멀쩡하던 재벌 총수들이 아프다면서 휠체어를 타고 나오는 일이 지금도 종종 있습니다. 정태수 역시 그랬습니다. 한보 청문회에 휠체어를 타고 나온 그는 답변에서 계열사 사장들을 머슴이라고 부르는 등 갑질성도 드러냈습니다.

 

그동안 당진제철소는 결국 부도가 났습니다. 계열사들도 공중분해 됐습니다. 그는 징역 15년 형을 받았고, 3000억 원대의 추징금을 선고받았습니다. 이 중에는 내지 않고 버티던 2천억 원이 넘는 국세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동안 한국 역시 무너져 갔습니다. 1997년부터 동남아를 휩쓸던 연쇄 외환위기가 한국의 외환위기로 옮아왔습니다. 사실, 보수정부가 정경유착을 하며 무분별한 대출을 허용하고, 금융기관을 부실하게 놔뒀으며, 환율 운용에 실패한 이유도 있었습니다. 한보그룹 부도는 단지 그 시작일 뿐입니다.

 

 


 

정태수 근황과 그 아들

 

거대 기업이 공중분해 된다는 것은 거기에 연결된 수백 배 이상의 기업들이 함께 위기에 처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대한민국 전체가 영향을 받게 됩니다. 그렇지만 한보그룹의 정태수 회장은 겨우 5년 5개월의 징역을 산 후, 2002년에 병보석이라며 교도소를 나왔습니다. 

 

그래 놓고도 정신 못 차린 그는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던 강릉영동대학교에서 72억 원을 횡령했습니다. 또다시 교도소로 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해외로 도망가버린 것입니다. 그 후 정태수의 근황을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그 후 함께 도망간 그의 아들 '정한근'이 2019년에 붙잡혔습니다. 무려 21년 만에 일입니다. 사람들은 정 회장과 추징금에 관심을 쏟아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2018년에 에콰도르에서 죽었다고 합니다. 수사 끝에 행정부도 공식 사망을 확인했습니다. 다만 정한근은 징역 7년을 받고 수감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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