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아그룹
회장 최순영과 그룹 해체
20세기 말, 한국 재계 랭킹 25위에는 '신동아그룹'이 있었습니다. 한강의 기적의 상징처럼 불리는 63빌딩이 이 그룹 소유였고, 당시 신동아 그룹의 회장은 최순영 회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신동아 그룹은 1999년 해체되어버리고, 최순영은 고액 체납자 20위 안에 들며 불명예스러운 언론 보도만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신동아 그룹과 최순영을 정리하며 기업사를 간단히 설명하기 위해 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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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 그룹 최순영 회장과 그룹 해체, 고액 세금 체납, 횃불재단 논란 등 정리
신동아 그룹의 최순영 회장
'신동아 그룹'의 시작은 창업주 '최성모'가 조선제분을 인수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후 동아제분으로 이름을 바꾸고 1966년 신동아화재를 인수하면서 1999년까지 이어집니다. 1973년에는 태흥산업과 대성목재 등이 그룹에 인수되어 덩치가 커졌습니다.
그런데 1976년 최성모가 죽자 '최순영'이 30대의 젊은 나이로 그룹 오너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는 대한생명보험사를 운영하며 공격적인 회사 경영을 이어갔습니다. 결국 1985년 63빌딩을 세우며 최대의 번영기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계열사가 22에 달했습니다. 1997년 외환 위기가 왔으나, 내부 돈 돌림으로 IMF에도 어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회사였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게 내부 불법 자금의 흐름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화려했던 신동아 그룹은 부실경영과 옷 로비 사건으로 인해 해체당하게 됩니다. 결정적인 것은 1996년 미국에 유령회사를 차린 뒤, 문서를 허위 작성하여 1억 8500만 달러를 대출받았던 사건입니다. 그중 2000만 달러를 빼돌리면서 횡령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고액 체납자 최순영
1999년, 최성모는 검찰에 연행되었습니다. 외화 밀반출과 횡령이 주 혐의였습니다. 재판 끝에 그 혐의가 인정되어 징역 5년과 추징금 1500억여 원을 선고받고 마침내 신동아 그룹이 역사 속에서 무너져 내리게 됩니다.
국내 최고의 명성을 날리던 대한생명은 신동아그룹의 계열사들에 부당지원을 하면서 부실했던 것이 드러나고, 국가는 막대한 공적 자금을 투입해서 살리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희망이 없는 상황이라 2002년 한화그룹으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이후 나머지 계열사들도 파산하거나 매각이 계속되었습니다. 한강의 기적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63빌딩도 한화그룹으로 넘어가며, 이제는 "한화 63시티"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보다도 큰 문제가 터지는데, 그것은 최순영 회장의 고액 체납자 혐의입니다.
고액 미술품 압수와 소송전
그는 무일푼이 되었다며 추징금은 물론 국세, 지방세 등을 20여 년간이나 내지 않았습니다. 약 1000억 원대의 세금을 체납하여, 국내 고액 체납자 중 상위 20위 권에 들어가 있는 중입니다.
하지만 언론에는 돈이 없어서 세금을 못 낸다는 그의 말과 달리 가족과 함께 수십억 원을 호가하는 고급 빌라에 살고 있으며 최고급 자가용도 이용하고 있다는 보도가 줄을 이었습니다. 또한 횃불재단도 논란에 오릅니다.
최근에는 서울시가 집을 수색해서 고가의 미술품들을 압류했었습니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벌어집니다. 최순영의 부인과 가족들이 최순영에게 소송을 건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미술품의 주인이 가족이라는 것을 인정하라는 소송장인 것입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이 경우 최순영이 소송에 응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원고의 승소가 됩니다. 그러면 이 미술품은 가족 소유로 인정되어 서울시가 다시 내놓아야 합니다. 다시 세금 압류가 불가능해지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신동아그룹의 최순영 회장을 보는 눈이 곱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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