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상륙작전
174작전의 배경과 이유
이 글은 기획 연재 글입니다. 1950년 한국전쟁의 장사상륙작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아래 링크에 따로 있습니다.
여기서는 인천상륙작전과 장사상륙작전(174작전)의 관계, 6.25 전쟁과 학도병들의 비극, 한국 전쟁과 상륙작전 상황의 요약 정리 등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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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작전의 배경과 이유 - 장사상륙작전 요약 정리
장사상륙작전의 배경
6.25 전쟁이 일어나고 약 3개월이 지난 1950년 9월, 북한군은 낙동강까지 진격해 있었습니다. 이에 한국군과 미군은 반격을 하기 위해 인천상륙작전을 계획했습니다. 인천은 낙동강의 인민군 주력의 후방입니다. 즉, 적의 허리를 끊어서 북한군을 양분시키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대규모 상륙작전은 보안을 유지하기 어려운 법입니다. 미군의 동향을 보고 북한군도 반격 작전이 있을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북한군도 상륙작전에 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그 상륙 지점이 인천인지 원산인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 UN군의 입장에서도 북한군이 확실히 알지 못하도록 관심을 분산시킬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장사상륙작전입니다. 경상북도 영덕군 장사리에 있는 이곳은 인천의 반대 방향인데다가, 북한군의 주력인 낙동강 부대를 묶어 둘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174작전의 요약
물론 양쪽의 공격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다면 가장 좋은 일이지만, 낙동강 전선에 내몰린 상황에서 그것은 벅찬 일입니다. 그래서 UN군은 생각합니다. 인천상륙작전 바로 직전에 누군가 장사리에서 희생해 준다면, 적이 오판하도록 묶어 둘 수 있을 거라고 말입니다.
이런 위험한 작전에 미군을 보낼 리가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한국군이 맡기로 했지만, 한국군 역시 유인 작전으로 희생시킬 병력이 모자랐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학도병을 모집했습니다. 물론 학도병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전선으로 보내질 운명일 뿐이었습니다.
대구와 밀양 등에서 학도병을 모집한 작전부는 겨우 2주일의 훈련 뒤에 부산으로 보내졌습니다. 부산에서는 미군이 상륙작전을 하는 척하며 배에 올랐다 내렸다를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래 놓고는 학도병들이 탔을 때 배가 떠납니다. 철저히 적을 속이기 위한 작전입니다.
장사상륙작전의 학도병들
당시, 이 작전을 작전명령 174작전이라고 했습니다. 작전을 리드하기 위해 정규군이 약간 섞인 772명의 제1 독립유격대가 배를 타고 출발했습니다. 그날이 9월 14일입니다. 인천상륙작전 날짜가 9월 15일이니, 하루 전인 것입니다.
평균 나이 17살, 최소 나이 14살의 학도병들... 반드시 살려서 데려온다는 생각은 전혀 없이 보내진 아이들... 그런데 그들은 잘 싸워도 너무 잘 싸웠습니다. 북한군은 큰 부대가 들어온 줄 알고 낙동강 전선을 뚫고 내려가려던 부대를 돌려서 이곳에 보내야 했습니다.
(이때의 자세한 상황은 아래 링크를 참고 바람)
장사상륙작전, 인천상륙작전을 위한 10대 학도병 참전 6.25전쟁 이야기
결국 포로 포함 139명이 전사하고 100여 명이 부상을 입은 것으로 174작전이 끝납니다. 그리고 9월 15일에 시작된 인천상륙작전이 대성공했습니다. 이것은 최고의 기쁨이었지만, 동시에 군번도 없이 장사상륙작전에서 죽어간 어린 학생들이 잊혀져 간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작전명령 174작전의 비극
현재, 장사상륙작전의 진실은 1991년에 당시 사용된 수송선이 발견되면서 다시 발견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1951년 국방부 공식 간행지에 이미 174작전에 대한 기록이 적혀 출판되었던 것입니다.
그 후에도 국방부의 한국전쟁사나 육군본부의 학도의용군 책들에 이 내용들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잊었던 것이 아니라,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으며 보상을 해 줄 생각도 없었던 것입니다.
전멸당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훈련도 제대로 안 된 학도병이 90%인 부대를 보내 놓고는 아무도 그들을 챙겨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당시 너무 어렸기에, 이들은 당연히 목숨을 바칠 일이라고 생각할 뿐 보상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살다가 죽었습니다.
잊혀서는 안 될 장사상륙작전
작전명령 174작전, 장사상륙작전은 의외의 대활약으로 한국군과 연합군 측에 큰 이득을 준 전투입니다. 거의 죽을 줄로 알았던 학도병들은 북한군을 혼란에 빠트리고 약 600여 명 이상이 탈출에 성공했습니다.
즉, 장사상륙작전은 살아남은 학도병의 수도 많고 목격자도 많으며 기록도 찾을 수 있지만, 그냥 잊힌 체 지금까지 관심을 받지 못한 전투라고 정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나마 1980년에 살아남은 학도병들이 돈을 모아 위령제를 지낸 것이 전부였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다행히 1990년대 이후 이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하고, 2019년 영화 《장사리》가 개봉되면서 국민들도 진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군번이 없다며, 그래서 누군지도 모르니까 챙기지도 못하겠다고 버려진 영혼들... 그 영혼들에 대한 위로가 조금이라나 됐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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