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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이방원의 후궁들 - 태종의 자녀 수와 후궁 수, 가계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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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이방원의 후궁들 - 태종의 자녀 수와 후궁 수, 가계도

키스세븐 2022. 4. 17.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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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태종의 후궁들

이방원의 후궁들

 

정식으로 알려진 조선시대 후궁의 숫자는 175명입니다. 여기에는 간택 후궁과 비간택 후궁이 있습니다. 후궁 간택제를 적극적으로 도입한 왕은 바로 태종 이방원... 가장 많은 후궁을 둔 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글은 태종 이방원의 가계도와 별개로 내명부 소속의 후궁과 태종의 자녀에 대해 정리한 글입니다. 태종은 왜 이렇게 많은 후궁을 두었을까를 알 수 있는 자료로 삼기 위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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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이방원의 후궁들 - 태종의 자녀 수와 후궁 수, 가계도

 

조선 왕의 후궁 수

 

태종 관려 드라마의 한 장면 / ⓒ KBS

조선 왕조는 27명의 왕이 있었습니다. 그 왕들에게는 모두 175명의 후궁이 있었습니다. 한 조사에 의하면, 조선 국왕은 평균 6.4명의 후궁을 두었다고 합니다. 이 중에는 단 한 명의 부인과 산 왕도 있고, 십여 명의 후궁까지 둔 왕도 있었습니다.

 

이중 태종 이방원의 후궁 수는 19명입니다. 조선 국왕 전체에서 가장 후궁을 많이 둔 왕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이 부분이 이 글의 주제로 연결되는 자료입니다. 한편, 그 뒤에는 광해군 14명, 성종 13명, 고종 12명, 연산군 11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이는 알려진 후궁 수만 포함하기 때문에 다른 자료와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태종이 후궁 간택제를 하면서 원경왕후 민씨와 엄청난 충돌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왕권강화의 집착이 원인이기도 합니다.

 

 


 

태종 이방원의 후궁 수와 자녀 수

 

태종은 가장 많은 후궁을 둔 왕이었다 / ⓒ KBS

태종에게는 빈, 숙의, 궁주, 옹주, 궁인으로 나뉘는 후궁들이 있었습니다.

명빈 김씨, 영월 신씨, 의빈 권씨, 효빈 김씨, 신빈 신씨, 선빈 안씨, 소빈 노씨, 정빈 고씨까지가 "빈"이고, 숙의 최씨, 숙공궁주 김씨, 의정궁주 조씨, 혜순궁주 이씨, 신순궁주 이씨, 덕숙옹주 이씨, 혜선옹주 홍씨, 순혜옹주 장씨, 서경옹주 등이 있었습니다.

그외에 일반 궁인인 후궁 김씨, 이씨가 있었습니다. ​

 

태종 이방원의 후궁들 - 태종의 자녀 수와 후궁 수 가계도 / ⓒ KBS

이들 부인들을 통해서 태종 이방원의 자녀 수는 공식적으로는 12남 17녀입니다. 그 외 기록으로는 18남 19녀를 두었다고 합니다. 이 중 중요 왕자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괄호 안은 왕자의 어머니입니다.

양녕대군(원경왕후 민씨), 효령대군(원경왕후 민씨), 충녕대군(원경왕후 민씨), 경녕군(효빈 김씨), 함녕군(신빈 신씨), 성녕대군(원경왕후 민씨), 온녕군(신빈 신씨), 혜령군(선빈 안씨), 근녕군(정빈 고씨), 희령군(숙의 최씨), 후령군(이씨), 익녕군(선빈 안씨)

이 외에, 아직 정확히 알려지지 않은 왕자가 6명이 더 있습니다.

 

 


 

태종의 후궁 간택제

 

[드라마의 효빈 김씨] 태종 이방원의 후궁들 / ⓒ KBS

후궁 간택제에 의해 최초의 후궁이 된 사람은 태종 때의 의정 궁주부터입니다. 그 이전에는 정식 가례색이 없었지만, 정식으로 후궁 제도를 선택한 태종은 적극적으로 여러 부인을 맞이했습니다. 이를 이어 세종도 10명의 후궁을 두었습니다.

 

그러나 후궁 문제 때문에 태종과 원경왕후 민씨는 큰 충돌을 해야 했습니다. 실질적으로 조선 건국에 큰 영향을 미친 원경왕후는 이를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는 여성의 영향력을 인정하던 고려 시대 권문세족 민씨 집안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의빈 권씨를 들일 때 원경왕후는 식음을 전폐하고 대항하기까지 했었습니다.

 

속으로는 나름의 공로를 인정받으려고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에 반발하듯이 태종은 오히려 후궁 수를 늘렸고, 원경왕후를 시기와 투기가 심한 여자로 몰아세웠습니다. 그 결과 왕후의 4명의 동생들을 다 죽여서, 처가를 멸문시켜버렸습니다.

 

 


 

원경왕후 민씨를 내치는 태종

 

그렇다면 태종 이방원은 왜 후궁을 늘리고 정부인을 이렇게 혹독하게 대했을까요... 그것은 왕권강화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럴듯한 단어를 썼기에 거창해 보이지만, 내부적으로는 태종의 집착과 고집 등이 발동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버지 태조를 조선의 왕으로 만들었지만, 속으로는 자신이 왕이 되고 싶었던 태종... 그는 실질적인 조선 초대 왕은 자신이라고 생각한 듯합니다. 그래서 후궁 제도도 중국처럼 "1빈 2잉제"를 정식 채택하는 등의 제도를 추진했습니다.

 

[드라마의 원경왕후 민씨] 태종의 자녀 수와 후궁 수 가계도 / ⓒ KBS

더구나 그는 계모와 이복동생, 그리고 친형까지 죽여가며 왕에 오른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이 군사를 이끌고 왕권 쟁탈을 벌인 만큼, 남들도 그럴 것이라는 불안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인척과 처가까지도 모두 적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이런 태종 이방원 때문에 원경왕후는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됩니다. 태종은 처가 식구마저도 다 제거하려고 들었고, 결국 몰살시키다시피 합니다. 원경왕후의 공로도 거의 인정하지 않았고, 왕이 되면서 부부의 사이도 상하 관계처럼 생각하게 됩니다. 그 견제 작업의 하나로 후궁 간택제도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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