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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과 원경왕후, 효빈 김씨(효순궁주) - 원경왕후의 질투와 투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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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과 원경왕후, 효빈 김씨(효순궁주) - 원경왕후의 질투와 투기

키스세븐지식 2022. 4. 9.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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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효빈 김씨

원경왕후와 효순궁주

 

조선 제3대 왕 태종의 부인 원경왕후, 그녀는 투기와 질투의 화신인가, 아니면 이방원에 의해 억울하게 누명을 쓴 여인인가...

 

이 질문에 등장하는 후궁이 있습니다. 생전에는 효순궁주라 불렸고, 나중에 효빈 김씨라고 불리는 인물입니다. 이 글은 태종의 처가 숙청 사건인 민무구, 민무질, 민무휼, 민무회 사건의 원인 중 일부를 다루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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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과 원경왕후, 효빈 김씨(효순궁주) - 원경왕후의 질투와 투기

 

태종의 후궁, 효빈 김씨

 

드라마 대왕세종에서의 효빈 김씨 / ⓒ KBS

효순궁주는 태종의 후궁입니다. 태종이 1400년에 즉위하였고, 그때 궁에 들어갔다가 1401년에 궁주가 되었습니다. 궁주란 당시에 궁중 여성들에게 내리던 작호(따로 부르던 이름)였습니다. 고려시대에는 왕비, 후궁, 공주 등을 이렇게 불렀었습니다.

 

효빈이란 조선시대에 궁중 안에서 정1품에 해당하는 것이며, 그녀가 죽은 후에 추종된 명칭입니다. 하지만 실록에서 중요한 인물은 아니었고, 태종이 원경왕후를 투기의 여인, 질투의 화신처럼 몰아갈 때 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따로 야사가 전해지기는 하나, 야사의 내용과 실록의 내용이 많이 다릅니다. 1402년 즈음 태종의 서자 경녕군을 낳았는데, 이때의 일을 가지고 1415년까지 원경왕후의 친정 사람들을 몰살할 때 민씨 집안에게 그 죄를 물었습니다. 그 후 단종 2년까지 문제없이 살다가 죽었다고 합니다.

 

 

 


 

태종 실록에서의 효빈 김씨

 

[태종실록] 태종과 원경왕후, 효빈 김씨(효순궁주) - 원경왕후의 질투와 투기 / ⓒ Joseon Dynasty

태종실록에 의하면, 효순궁주는 원경왕후가 왕비가 되기 이전부터 데리고 있던 노비였다고 합니다. 그 후 태종이 왕이 되자 함께 궁에 들어갔고, 태종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었습니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태종이 효빈 김씨를 보호하기 위해 후궁제도를 법제화했다는 말도 있습니다. 

 

임신한 효순궁주는 궁 밖에 나가서 몸조리를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밝혀지기로는... 원경왕후가 효빈 김씨를 행랑방에 두고 학대했다고 합니다. 시간이 흐르고 음력 12월이 되자 출산 신호가 왔습니다. 여종이 급히 와서 이를 말하니, 왕후는 문 바깥 다듬잇돌 옆에 내다 두라고 했답니다.

 

이것은 얼어 죽으라고 하는 것이니, 궁주의 가족이 보다 못해 도왔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봐주지 않고 이부자리 마저 빼앗은 뒤, 토담집에서 산후조리를 하라 했다는 것입니다. 다행히 그 후 가족들이 왕후의 허락을 받고 데려가서 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야사로 전해지는 효순궁주

 

TV방송에서의 효순궁주 / ⓒ ichannela.com

야사에서는 김씨가 신덕왕후의 종이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신덕왕후는 이방원의 계모입니다. 그리고 야사에서는 매우 아름다운 여인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 미모에 이성계가 넘어갈까 봐 일부러 눈에 띄지 않게 했다는 말도 전해집니다.

 

그러나 실록에서는 제2차 왕자의 난 때 이미 왕후 민씨와 함께 살았던 것으로 나옵니다. 이 난은 태종이 아직 왕에 오르기 전의 내전인데, 이방원이 진 것으로 오해한 민씨가 따라 자결하겠다고 하자, 김씨가 말렸다고 합니다. 이 부분은 야사와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한편, 왕자 시절의 이방원은 김씨의 외모에 반해서, 그 사이 만남을 가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신덕왕후가 전 부인의 아들들을 밀어내려고 했기 때문에 이방원과는 철천지원수가 됐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방원은 왕이 된 뒤 김씨를 후궁으로 챙겼습니다.

 

 


 

원경왕후는 정말 투기와 질투의 왕후일까

 

드라마 태종 이방원에서의 효빈 김씨 / ⓒ KBS

이상한 것은, 원경왕후와 효빈 김씨의 문제가 1402년이 아닌 1415년에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때는 태종이 원경왕후의 친정 동생들을 숙청하던 때이니, 작정하고 이런저런 구실을 다 꺼낸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이 실록에 남게 된 것입니다.

 

이런 배경으로 본다면, 왕후는 어쩌면 억울하게 누명을 뒤집어쓴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미 왕이 직접 언급함으로써 실록에 적혔으니, 일단 사실이라고 할 수밖에는 없습니다. 만약 누명이라면 왕후만 억울하게 역사에 남을 뿐...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태종 이방원은 십여 년이나 지난 이 사건을 다시 꺼내며, 이 사건의 배후에 민씨의 친정동생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왕후 민씨의 친정 동생을 제거하여, 민씨 집안의 힘이 강해지는 것을 꺾으려는 의도입니다. 결국 태종 이방원은 1415년까지 처남인 네 형제를 모두 죽게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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