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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이방원에게 왕자의 난을 일으키게 한 여장부 원경왕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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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이방원에게 왕자의 난을 일으키게 한 여장부 원경왕후

키스 키스세븐 2015. 4. 1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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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이방원에게 왕자의 난을 일으키게 한 여장부 원경왕후] 




태종의 부인, 원경왕후가 될 민씨  


수많은 왕비들이 조선의 역사 속에 살았는데 그 중에는 현모양처도 있었고 질투의 화신도 있었습니다. 태종 이방원의 왕비이며 세종의 어머니이기도 한 원경왕후는 여장부 스타일의 왕비가 아닌가 합니다. 원경왕후는 정치적이며 주도적인 성격을 가진 왕후이기도 합니다. 



원경왕후의 집안은 고려 말 권문세가의 혈통입니다. 고려 말에 권문세가는 신진사대부들과 대립적인 관계였습니다. 권문세족은 기득권을 가진 보수집단이었는데 반해 신진사대부는 진보적인 성향을 가졌기 때문에 사이가 좋지는 않았습니다. 이성계는 신흥무인세력이었기 때문에 역시 신진사대부와 같은 시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권문세족이면서도 성리학에 조예가 깊은 민씨 집안과 사돈을 맺게 됩니다. 


태종 이방원보다는 2살이 많은 민씨는 시아버지 이성계가 신흥무인세력일 때 며느리로 들어갔습니다. 

태조가 되기 전의 이성계는 민씨 일가와 겹사돈을 맺습니다. 넷째 아들 이방간의 부인과 다섯째 아들 이방원의 부인이 같은 민씨 집안의 부인들입니다. 이중에서 이방원의 부인은 남편 이방원이 태종이 되면서 왕비의 지위에 오르고 이방간의 부인은 이방간이 권력에서 밀려나면서 힘든 삶을 살게 됩니다.




(출처: wikipedia.org)







태조 이성계의 아들 태종 이방원의 왕자의 난


14세기 말에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 후 이성계의 아들인 이방원에 의해 두 번이나 피비린내 나는 왕자의 난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왕자의 난은 정도전 등 개국공신들이 이방원에 의해 죽임을 당한 난입니다. 


개국공신인 정도전은 새로 건국된 나라의 왕권을 강화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태조 이성계가 개인사병을 통해서 힘을 기르고 결국 왕에 올랐으나, 정작 왕이 되고 나니 개인사병을 철폐하여 귀족 및 호족들의 힘을 약화시킬 필요가 생긴 것입니다. 정도전은 모든 사병을 해산시키고 무기도 없애라는 정책을 폈습니다. 

이방원은 사병을 훈련시켜 힘을 키우고 있었기에 정도전이 미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때 원경왕후가 될 이방원의 부인 민씨는 무기를 숨겨 놓습니다. 이 무기들이 나중에 1차 왕자의 난에서 이방원이 사용할 밑천이 되었습니다. 


더구나 태조 이성계에게는 두 명의  부인이 있었는데 두 번째 부인인 강씨의 아들 이방석을 왕세자에 올리려는 상황 때문에 이방원은 더욱 화를 내게 되었습니다. 

태조 이성계에게는 고향에 두고 온 전처 한씨와 조선을 개국할 때의 후처인 강씨가 있었는데, 이성계가 왕에 오르자 왕비로 강씨를 정하고 왕세자마저 강씨의 소생으로 결정해 버린 것입니다. 


한씨는 먼저 결혼을 하고도 후궁이 된 상황이고 한씨의 소생인 이방원과 그 형제들은 졸지에 후궁의 소생이 되어 왕세자가 될 기회마저 빼앗기니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이런 차에 정세가 돌아가는 것에 보는 눈이 빠른 이방원의 부인이 남편에게 거사를 일으키라고 조언을 합니다. 마침 처가 쪽의 민씨 형제들도 합심해서 돕기로 하였습니다. 


이렇게 후에 원경왕후가 될 민씨의 말을 깊이 참고하여 일어난 것이 제1차 왕자의 난입니다. 결국 이방원은 권력을 차지하고 태종에 오릅니다. 부인 민씨가 무기를 숨겨두고 정세를 파악하여 남편에게 용기를 준 것이 이방원이 왕이 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드라마에서의 원경왕후 / 출처: KBS방송 캡처)







정치적이고 다혈질이며 야심이 강했던 원경왕후 민씨 


드리어 태종이 왕에 오르자 덩달아 왕비가 된 민씨 부인, 즉 원경왕후 민씨의 앞날은 창창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남편과의 불화는 점점 심해져서 원경왕후는 불편한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바깥일에 참견하고 괄괄하며 다혈질인 원경왕후의 성품이 스스로의 고생을 불러일으킨 측면도 있습니다. 


원경왕후는 태종 이방원의 등극에 공헌이 있다고 생각하고 정사에 관여하려고 했지만 태종은 이를 불편해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외척이 권력을 잡아서 왕권강화의 방해가 될 것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원경왕후가 정사에 간섭하는 것은 태종으로서도 자존심이 상하는 일입니다. 더구나 왕세자가 정사에 간섭하길 좋아하고 다혈질인 원경왕후 민씨와 그 외척의 영향으로 휘둘릴 것에 대한 걱정을 하게 됩니다. 


태종 이방원은 왕이 된 후에 축첩이 늘었습니다. 후궁들과의 관계가 늘다보니 원경왕후 민씨는 이를 참지 못하고 또 성격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태종은 원경왕후와 자주 언쟁을 하게 되자 아예 원경왕후를 찾지 않고 멀리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던 중 결국 일이 터졌습니다. 

태조가 일찍 왕위를 물려준 것처럼 태종도 그렇게 하려고 하다가 말을 거둔 적이 있었는데, 원경왕후의 첫 번째와 두 번째 동생이 이를 기뻐했다하여 귀향을 보낸 후 사약을 내린 것입니다. 태종은 앙갚음을 함과 동시에 외척의 싹을 자르려고 하였습니다. 




(태종과 함께 묻힌 원경왕후 / 출처: wikipedia.org)







남편에 의해 친정이 몰살 당하는 비운의 여인 원경왕후 


얼마 후 왕세자였던 양녕대군에 의해 민씨 일가는 또 한번 고난을 만납니다. 호색을 즐기다가 태종의 미움을 받아서 자리가 위태롭게 된 양녕대군이 태종에게 외삼촌들을 고해 받친 것입니다. 외삼촌들이 양녕대군에게 잘 부탁한다고 말했던 것이 화근이 되어 청탁 및 왕권간섭의 여지가 있다하여 원경왕후 셋째와 넷째를 유배 보내 버렸습니다. 


하지만 그 후에도 원경왕후 민씨는 다혈질을 못 참고 질투심을 그대로 표출해 버리곤 했습니다. 이런 것들이 쌓여 태종의 분노를 폭발 시키는 사건이 또 터집니다. 

태종 이방원은 후궁으로 효빈이 있었는데 그녀의 소생인 왕자를 원경왕후가 학대했다는 소문이 돌아서 태종이 극노합니다. 그 보복으로 결국 원경왕후의  남은 두 동생들에게 스스로 자결하라는 명을 내립니다. 집안이 남편에 의해 송두리째 박살나는 순간입니다. 


태종 이방원은 왕비 원경왕후를 폐서 시킬까 하다가 그만두고 네 명의 남동생들을 다 죽여 버린 뒤 빙어제도를 만듭니다. 왕비나 후궁들과 그 자식들에게 등급을 주는 제도입니다. 폐서 위기에 몰린 원경왕후는 남편이 찾지 않으나 정실 부인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며 대왕대비까지 오르게 됩니다. 다행히 그 아들이 왕위를 계승했기 때문입니다. 


왕위를 계승한 사람은 우리가 잘 아는 세종대왕입니다. 태종에 의해 양녕대군이 폐위되고 충녕대군이 왕세자로 정해질 때 형제 간의 싸움을 우려하여 반대하였으나 태종 이방원은 원경왕후 민씨의 반대를 무릎쓰고 결국 마음대로 하고 맙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원경왕후 민씨의 삶은 자신의 성격 때문에 우여곡절이 많은 삶이었지만 효성깊은 그 아들 세종대왕이 왕에 오르면서 조선의 태평성대를 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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