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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마섬(군함도) 정리 - 강제 징용과 의혹 논란 정리

2022. 4. 21.

ⓒ 準建築人手札網站 Forgemind ArchiMedia


 

군함도

강제 징용 논란

 

"군함도 정리" 연재 기사 중 하나입니다. 이글은 전체 요약과 의혹 비교를 내용으로 합니다. 그러므로 상세한 내용에 대해, 아래 링크에 있는 이전 연재 글을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일제강점기 말기, 조선인들은 탈출할 수 없는 지옥섬에서 죽느니만도 못한 인권유린을 당하며 강제 노역을 했습니다. 그곳은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하시마섬'! 하지만 일본은 약속을 어기고 강제 징용 사실을 숨기고 있는데...

 

 

 

 

이 블로그는 "심심할 때 잡지처럼 읽는 지식"이라는 목적으로 운영됩니다. 즐겨찾기(북마크) 해 놓으면 심심할 때 좋습니다. 

 


 

하시마섬(군함도) 정리 - 강제 징용과 의혹 논란 정리

 

군함도 징용 정리

 

[일본이 소개하는 군함도 위치 지도] 하시마섬(군함도) 정리 / ⓒ iichi.com

먼저 간단히 정리하자면, 군함도의 뜻은 군함처럼 생겼다는 의미이며, 원래 이름은 하시마섬입니다. 이곳엔 해저탄광이 있었고, 많은 노동자가 필요했기에 학교, 아파트, 극장까지 있었습니다. 단, 일본 정부 소유가 아니라, 전범 기업 미쓰비시의 소유였습니다.

 

하시마섬의 탄광은 20세기 초부터 1970년대까지 채굴이 됐는데, 그중 1939년부터 1945년까지가 문제가 됩니다. 태평양 전쟁으로 인력이 모자라서 한국, 대만, 중국 같은 데서 사람을 모았기 때문입니다. 조선에서는 보국대라는 곳에서 일할 사람을 모집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일본 광부가 가장 많았습니다. 그러니까 학교도 지어주고 그랬을 것입니다. 하지만 조선인들은 공장에서 일하는 줄 알고 갔다가, 나오지 못하는 섬에 갇혀 식민지 백성의 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군함도 사건의 지옥섬

 

[하시마섬, 군함도 사진] 강제 징용과 의혹 논란 정리 / ⓒ 準建築人手札網站 Forgemind ArchiMedia

해저 탄광이라서 깊이 파고들어 간 탄광은 최소 45도가 넘는 혹독한 곳이었습니다. 거기다가 하루 12시간이나 되는 극심한 노동이 강요되었습니다. 속옷 한장만으로 허리도 펴지 못한 채 들어간 갱도에서 질식사, 압사로 사람이 죽어갔습니다.

 

그렇게 일하고도 먹는 것은 콩기름 찌꺼기를 삶은 식사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두 끼 치를 모아서 먹어도 배가 고파서 눈물이 났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도망갈 수도 없습니다. 하시마섬의 위치는 18km 이상 헤엄을 쳐야 탈출할 수 있는 곳입니다.

 

만약 도망가다가 잡히면 고무나 와이어 줄로 후려갈기는 것을 그대로 맞아야 했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탈출하기 위해서 스스로 신체를 훼손하려고 시도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그럼에도 탈출을 시도하다가 익사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군함도 역사의 의혹

 

[일본 최고의 인구밀도였던 곳] 하시마섬 강제 징용과 의혹 논란 정리 / ⓒ Unknown

그런데 또 한편에서는 또 다른 목소리도 나옵니다. 생존자라며 증언을 한 사람 중에는 과연 하시마섬에 가보기나 했을까 싶을 정도로 동떨어진 증언을 하는 사람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식사로 쌀밥이 나왔다고도 말합니다.

 

그중에는 자발적으로 자원해서 온 사람들도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또한 도쿄 신주쿠에 세워진 산업유산정보센터에 있는 재일조선인 2세의 증언을 보면, 일본인과 조선인의 차별은 없었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자료를 통해보면, 1939년부터 1945년까지의 군함도 사망자 수에서 조선인 64명, 일본인 382명이라는 기록도 나옵니다. 물론 여기까지의 주장들은 대부분 일본인들이 주장하는 것이긴 합니다. 하지만, 이런 것은 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군함도 왜곡 논란의 반론

 

[일본 최초의 철골콘크리트 아파트] 군함도 강제 징용과 의혹 논란 정리 / ⓒ Unknown

이런 엇갈린 주장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연도에 대한 조사도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1939년부터 한국인 64명이 죽었다지만, 사실은 1925년부터 가서 일을 했었습니다. 그렇다면 전쟁 이전과 전쟁 말기 시기에도 항상 대우가 같았는지를 조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인력 수급이 가능한 전쟁 이전에 간 사람은 자발적으로 간 사람도 있겠지만, 전쟁으로 노동력이 극심히 부족한 전쟁 말기에는 대부분 속거나 끌려갔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 연도 조사는 거의 없이 한쪽은 혹독했다고 하고 한쪽은 차별이 없었다고 하니 군함도가 역사 왜곡 논란에 싸이게 됩니다.

 

일본인 사망자가 더 많은 것은 전체 5천여 명의 노동자 중 한국인이 500~800명 수준이니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더구나, 차별이 없었다고 주장한 재일조선인은 당시 감독관을 맡았던 사람입니다. 일반 조선인과 대우가 다를 것이니 믿을 증언도 아닙니다.

 

미쓰비시는 사기업이지만, 군국주의 일본에 군수품 납품으로 거대 기업이 된 회사입니다. 당시 일본 사회를 보면, 이런 회사는 사내 문화 자체가 군대와 비슷했을 가능성도 높습니다. 사기업이니 강제 징용이 약했다고 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하시마섬(군함도) 논란 정리

 

[현재 관광지 공개] 강제 징용과 의혹 논란 정리 - 군함도(하시마섬)  / ⓒ Jordy Meow

위의 의혹에 대해 정리하자면, 공식적으로는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도 강제 징용을 인정하지만, 그렇게 심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겠습니다. 일본 정부가 유네스코에 강제 징용문제도 공개하겠다고 약속한 것, 미쓰비시가 중국과 미국에 사과했으니 사실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분통이 터지는 것은, 일본 정부가 약속을 어기고 아무런 사실 공개를 하지 않고, 미쓰비시는 조선은 당시 식민지였으니 사과할 일이 아니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미쓰비시의 계열사인 기린 맥주나 니콘, 엘리베이터 등은 지금 한국에서 큰돈을 벌고 있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일본은 관광 안내문에서 "국가총동원법이 있었고, 한국도 일본 산업을 지원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눈 가리고 아웅 하며 감추는 것입니다. 이는 보수국가의 특성입니다. 일본은 지독한 보수 국가이기 때문에 체면을 지키느라 과거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니, 피해자인 한국이 지속적인 항의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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