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군함도 실화 - 하시마섬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논란]
일본 군함도는 현재 작은 무인도입니다. 일본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킨 군함도의 뜻은 군함같다하여 생긴 말인데, 원래 이름은 하시마섬입니다. 하지만 일본은 강제징용을 하고 가혹행위가 있었던 것을 숨기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강제징용 당한 조선인 사이에서 군함도는 지옥섬으로도 불립니다. 그런데 영화 군함도의 실화가 된 이곳이 세계산업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되어 논란이 있습니다.
[글의 순서]
1. 일본 군함도 - 뜻과 유래, 위치
2. 군함도 실화를 무시한 유네스코
3. 일본 군함도(하시마)의 세계유산 논란
[엮인 글 링크]
일본 군함도 - 뜻과 유래, 위치
군함도의 뜻은 마치 군함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유래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본의 해군 군함이었던 '도사(土左의 일본식 발음)호'와 비슷하게 생겨서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 군함도의 유래입니다.
'군함도'는 여러 차례의 제방공사와 정비사업이 있었던 데다가, 가운데 부분이 건물과 공장굴둑으로 솟아 있어서 멀리서 보면 마치 군함처럼 보입니다. 또 어찌 보면 요새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감옥처럼도 생겼습니다. 영화 <군함도>의 실화는 이 섬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사진: 영화 군함도의 실화가 있었던 일본의 하시마섬을 상공에서 본 모습. 실제로 군함처럼 생긴 군함도이다. [일본 군함도 - 뜻과 유래, 위치] / ⓒ kntrty)
군함도 위치의 실제 섬이름은 '하시마섬'입니다. 하시마섬의 뜻은 "끝에 있는 섬"이라는 뜻입니다. 나가사키 반도에서 배로 30분이면 갈 수 있는데, 거리는 약 4km라고 합니다. 무인도였던 이 섬은 지금 축제 분위기입니다.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며 관광객이 몰려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시마섬은 조선인과 중국인이 강제징용되어 처참하게 죽어간 곳입니다. 일본 관광객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가 군함도의 실화를 숨기고 있어서 입니다.
(사진: 유네스코에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후 관광객 유치로 돈을 벌고 있는 군함도. 유네스코 논란은 역사 정상화를 위한 과제이다. [일본 군함도 - 뜻과 유래, 위치] / ⓒ At by At)
일본 군함도는 19세기 말부터 개발되었습니다. 하시마섬과 인근 다카시마섬에서 해저탄광이 발견되면서부터 입니다. 석탄은 증기기관 발명 이후로 인류에게 중요한 에너지 자원이었는데, 하시마섬의 해저탄광 석탄은 질도 좋았습니다.
영화 군함도 실화가 되는 시기인 '태평양전쟁' 당시에 최고의 실적을 내다가, 석유 수요가 앞질러진 1974년 폐광이 된 후 이제는 무인도로 존재합니다. 태평양전쟁 시기의 군함도는 일제의 침략야욕을 뒷받침하는 자원기지였습니다.
(사진: 전범기업인 미쓰비시 마크와 미쓰비시가 사들여서 해저탄광 채굴을 했던 군함도의 옛날 사진. [일본 군함도 - 뜻과 유래, 위치] / ⓒ Shinkosha)
100여 년 전, 하시마섬의 지하 위치에서 석탄이 발견되자 일본의 거대기업 '미쓰비시'는 이 섬을 사들였습니다. 중공업회사인 미쓰비시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의 군수사업에 앞장섰으며, 일본 석탄의 1/4을 생산했던 기업입니다.
나가사키에 위치한 미쓰비시 조선소도 군수사업이 한창이었고, 그래서 역사상 두 번째로 원자폭탄을 맞은 도시가 되기도 했습니다. 군함도의 실화에서 강제징용된 사람들은 미쓰비시가 일본 제국주의를 위해서 노예처럼 부려먹은 피해자들입니다. 군함도의 뜻처럼 군국주의의 산물입니다.
군함도 실화를 무시한 유네스코
군함도는 무인도였다가 세계유산에 등재되며 관광지로 유명해졌습니다. 폐광이 되기 전인 1940년대 이전에는 작은 섬에 5천 명 이상의 인부들이 살았기 때문에 최고의 인구밀도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인구증가에 의해 9층 주택건물이 즐비하게 되고 학교, 당구장, 영화관 등이 들어서서 독립적인 행정구역처럼 되었습니다. 일본인 인부들의 인금은 당시 평균임금보다 높고 정부에서도 에너지자원 지역 특별대우를 하니, 일본에서 유일하게 컬러TV를 볼 수 있는 지역이기도 했습니다.
(사진: 현재의 폐허가 된 군함도 사진. 돈벌이가 되면서 일본 노동자들이 몰려 들었다. 그러나 태평양전쟁 이후 조선인들의 강제징용으로 채워졌다. [군함도 실화를 무시한 유네스코] / ⓒ eager)
일본은 1900년 전후만을 대상으로 세계유산 등재신청을 했지만, 이 지역의 시설들의 실질적 연도는 강제징용의 만행을 저지른 1940년대 이후의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1937년 '중일전쟁'이 터지고 일제 정부는 국민총동원령을 공포하였습니다. 이때부터 식민지 조선인의 강제동원이 본격화되었습니다. 1941년 태평양전쟁이 터지면서는 더욱 심해져서 아프리카 노예처럼 납치도 자행됐습니다.
초기에는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유혹으로 끌어들였지만 나중에는 일본 406개 기업에 102만 명이 끌려가는 등 700만 명 이상의 인생이 파괴되었습니다.
(사진: 대우가 좋았던 일본인 노동자와 달리 조선인 노동자는 주로 북쪽에 살며 가장 힘들고 위험한 장소에 배치되었다. 감시를 받으며 좁은 골방에 살아야 했다. [군함도 실화를 무시한 유네스코] / ⓒ 에코고노사마)
군함도 실화의 말기 기록을 보면 강제동원 조선인이 약 800명이었고 그 후 전체 노동자의 60%~70%가 끌려온 조선인으로 채워졌습니다. 전쟁이 계속되면서 인부의 대우가 나빠졌고 급하게 자원조달이 필요해지면서 혹독한 노동이 되자 일본인 노동자들은 빠져나갔던 것입니다. 군함도란 뜻도 있지만 또 다른 비유인 지옥섬이 정말로 되고 말았습니다.
중국에서도 식민지 납치가 있었는데, 이들은 조선인보도 더 하급민 취급을 받았습니다. 이들은 일본이 패망하며 비밀리에 몰살당했다는 말도 전해집니다.
(사진: 북해도 탄광 강제징용자들의 모습. 하시마섬(군함도)의 뜻은 끝에 있는 섬이란 뜻이다. 북해도처럼 오지였던 것이다. [군함도 실화를 무시한 유네스코] / ⓒ 미상)
강제징용되어 군함도에 끌려간 조선인들도 노동자라며 생활비를 받긴 했지만 일본인 인부와는 비교될 수도 없는 10엔 정도였습니다. 임금이라고 볼 수도 없는 수준인데, 이마저도 각종 명목으로 갈취되어서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습니다.
일본 패망이후에는 두 번째 원자폭탄을 맞은 나가사키 처리작업에 동원되었습니다. 맥아더 장군이 패전한 일본이 조선인을 고향에 보내지 않고 노역시킬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입니다. 방사능으로 죽어가며 고향으로 돌아가길 희망한 이들이었지만, 군함도 실화에서 희생된 조선인들은 차비조차 없어서 그렇게 일본에서 최후를 맞아야 했습니다.
일본 군함도(하시마)의 세계문화유산 논란
일본의 주장에 의하면, 일본이 아시아 산업혁명의 시작점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본 내의 23개 장소와 위치를 '세계산업유산'으로 신청했습니다. 그 중 7개 장소는 한국인에 대한 강제징용이 있었던 곳입니다.
일본 스스로도 침략의 역사문제가 제기될 것을 두려웠는지, 1868년~1912년 '메이지시대'에 국한해서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을 했고, '요시다 쇼인'같은 침략주의자의 유적도 다른 곳과 섞어서 문화유산으로 슬쩍 끼워 넣었습니다. 물론 한국과 중국은 반발했지만 너무 늦게 대응해서 막지 못했습니다.
(사진: 정한론을 편 침략주의자 요시다 쇼인과 그의 학당. 일본 보수주의자 아베 총리는 그런 요시다 쇼인을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라고 했다. [일본 군함도(하시마)의 세계문화유산 논란] / ⓒ 편집 : www.kiss7.kr)
결국 영화 군함도의 실화가 되는 위치의 하시마섬과 일본 각지의 신청지역이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한국과 중국은 강제징용의 만행을 알려서 막으려고 했지만 일본은 유네스코 기금기부의 최대지원국입니다. 미국보다 많은 지원을 하는 일본을 막기는 역부족입니다.
2017년 중국이 일본의 '난징대학살 기록유산'을 신청하고 한국이 일본의 '위안부 기록유산'을 신청하자 일본은 유네스코 기금지원을 중단하는 횡포를 보였습니다. 군함도 세계문화유산 논란은 일본의 힘을 보여주는 단면입니다.
(사진: 군함도의 실화 역사가 있었던 하시마섬의 위치. 다카시마섬 아랫쪽에 있으며 나가사키 조선소 인근이다.[일본 군함도(하시마)의 세계문화유산 논란] / ⓒ google maps. 편집 : www.kiss7.kr)
한국과 중국의 강력한 항의 때문에 국제여론을 무시하지 못하게 된 유네스코는 일본에게 조건부 세계유산 등재를 허락했습니다. 등재된 세계유산을 알려 줄 때 반드시 강제징용의 과거 사실도 기록하도록 한 것입니다. 일본은 등재를 위해서 할 수 없이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이익을 가지기 위해 최초로 일본이 강제징용을 인정하는 양보를 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 뿐이었습니다. 이후 군함도(하시마섬) 위치 안내 등에 조선인 강제징용은 표시하지도 안내하지도 않았습니다. 군함도의 실화는 결국 묻혀버리는 상황입니다.
(사진: 배를 타고 본 옆모습의 군함도. 군함도의 뜻은 군함을 닮았다는 것인데 정말로 배처럼 인공섬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일본 군함도(하시마)의 세계문화유산 논란] / ⓒ Toomore Chiang)
군함도의 뜻은 군함을 닮았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태평양전쟁의 군국주의 의식이 깔린 곳이지만, 일본이 거짓말까지 하며 부인해 오던 강제징용 사실을 인정한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군함도와 여러 위치 등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뒤 관광 등의 경제효과가 140억 원이나 생긴 것입니다. 일본의 꼼수는 완전히 성공해서 조선침략을 가르치던 학당까지 세계유산이 되고 전범기업 미쓰비시의 조선소까지 세계문화유산이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그저 강한 자와 약한 자의 문제일까요? 뒤통수를 치려는 자와 미리 생각하지도 못한 자의 문제이며 반성하지 않는 자의 악질적인 문제입니다.
[엮인 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