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덕왕후
이성계 부인의 죽음과 이방원
이방원과 신덕왕후는 모자 관계였지만, 정치적인 적이며 왕자의 난의 원인이기도 했습니다. 이성계의 부인 신덕왕후 강씨의 죽음과 정릉을 보면, 이방원의 야심과 원한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조선 초의 어지러운 역사를 정리하고 원인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신덕왕후와 이방원의 관계는, 가족 간에 살생이 벌어진 비극의 이유를 이해하기에 중요한 열쇠가 될 것입니다. 특히 연도에 신경 써서 읽으면 이해에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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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의 부인 신덕왕후 - 이방원과 신덕왕후 강씨 죽음, 아들, 정릉
이성계의 가계도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의 원래 부인은 신의왕후 한씨였고, 그 아래로 6남 2녀를 두었습니다. 1388년 위화도 회군을 한 이성계는 1392년에 조선을 건국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성계의 부인 신의왕후 한씨는 1391년에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조선이 세워지기 1년 전에 본부인이 죽었고, 이성계는 신덕왕후와 재혼한 후에 왕에 올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선 최초의 왕비는 신덕왕후 강씨가 됩니다. 이것은 조선의 시작이 혼란 속에 있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태조와 신덕왕후가 결혼할 때 나이 차이가 무려 20살이었습니다. 당연히도 신의왕후의 자식들은 다 컸던 때였습니다. 쿠데타의 위험을 함께 헤쳐온 친어머니는 왕비가 되지 못한 채 죽고, 새파란 여자가 와서 왕비가 되었으니 자식들의 감정이 남달랐을 것입니다.
이성계의 부인 신덕왕후
두 사람이 처음 만난 일화도 유명합니다. 호랑이 사냥을 하다 목이 말라 우물을 찾은 이성계, 물 한 모금을 부탁하니 신의왕후가 급히 마시지 않도록 버들잎을 띄워 주었다는 일화인데, 사실 이것은 고려 왕건 때도 있던 일화이니, 사람들의 착각에 의한 설화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무튼, 신덕왕후는 머리도 총명하지만 야심도 대단한 여성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1932년 이성계가 정치적 위기에 처했을 때 이방원을 보내서 구해주고, 그 해에 이방원이 정몽주를 죽여서 이성계가 분노했을 때는 오히려 이방원을 감싸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왕비가 된 후에는 자신이 낳은 2남 1녀의 앞길을 위해 정략적인 방향으로 돌아서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방원과 대립 중에 있는 정도전을 끌어들이고, 둘째 아들 의안대군을 왕세자에 앉히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방원과 신덕왕후의 죽음
이성계 입장에선 신덕왕후가 젊고 총명하니 아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이성계는 신덕왕후의 아들 방석을 왕세자로 올리기로 합니다. 그러자 신의왕후의 자식들은 크게 반발하는데, 이것이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의 원인인 것입니다.
신덕왕후는 자신의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1396년에 신부전증으로 일찍 죽고 말았습니다. 태조는 큰 충격을 받아서 애통해 했고, 그래서 지어진 것이 흥천사였습니다. 태조는 그녀의 명복을 비는 불경 소리를 들은 후에야 밥을 먹을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성계는 신의왕후 사이에서 낳은 자식들을 시큰둥하게 대하면서, 신덕왕후를 그리워하고 그녀의 자식들과만 지냈습니다. 그러자 드디어 이방원의 분노가 폭발했고, 제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서 의안대군 방석을 죽여버렸습니다.
태조와 신덕왕후의 정릉
이성계는 분노했지만, 더 이상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 후 제2대 왕에 정종이 오르고, 이성계는 자식들과 등을 지고 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결국은 이방원의 야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이었으니, 1400년이 되자 이방원은 제3대 왕 태종이 됩니다.
왕에 오른 태종 이방원은 신덕왕후의 죽음에 대해 노골적인 보복을 가했습니다. 1408년 이성계가 죽자 신덕왕후를 왕비에서 후궁으로 끌어내렸습니다. 다음 해엔 신덕왕후의 정릉을 파괴하고 이전하며, 무덤의 흔적을 찾을 수 없도록 해버렸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정릉의 병풍석 등은 공사에 써버리도록 하여, 세상 사람들이 밟고 지나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수모를 당한 신덕왕후는 현종 때가 돼서야 다시 왕비로 복권되었습니다. 그날, 엄청난 폭우가 내리니, 사람들은 이것이 신덕왕후의 눈물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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