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범곤 총기 난사 사건
우순경 사건
우리나라에는 최단시간 최다 살상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던 살인마가 있었습니다. 그는 우 순경 사건으로 불렸던 1982년 '우범곤 총기 난사 사건'의 인물입니다. 파리 때문에 사망자 62명, 사상자 33명을 낸 이 사건의 범인은 경찰...
이 글에서는 우범곤 순경이 일으킨 총기 난사 사건을 시간순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자제하지 못하는 다혈질인 사람, 음주하면 행패하는 사람의 문제점도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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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순경 사건 - 우범곤 총기 난사 사건과 사망자, 범행 이유, 기네스북 내용
우범곤 총기 난사 사건
우범곤 순경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범죄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네스북에는 최단시간 최다살상 범인으로 기록되었었고, 2011년 노르웨이 극우 보수주의자 브레이비크 사건(77명) 이전까지 최고 기록이었습니다.
그는 부산 초량동에서 성장했습니다. 아버지가 경찰관이었지만 어릴 때부터 일진 폭력배 짓을 하고 다녔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경찰로 들어가는 데에 성공하고, 한때는 청와대 근무까지 했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성격이 포악하고 술만 마시면 행패가 너무 심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경남 의령군으로 좌천되고 말았습니다. 궁류 지서에서 근무하게 된 그는 이웃에 살던 전 모 씨와 사귀게 되었습니다. 성질이 급해서 무조건 동거부터 하겠다고 하는데...
여자 쪽의 부모는 말렸지만, 가을에 식을 올리겠다며 무작정 그 집에 들어가서 처가살이를 시작해버렸습니다. 여기에서 우범곤 총기 난사 사건의 원인이 발생하는데, 그 이유라는 것이 황당하게도 파리 때문이었습니다.
우 순경 사건의 원인은 파리
어느 날 집에 들어와 낮잠을 자던 중, 그에게 앉은 파리를 쫓으려던 동거녀가 그의 가슴을 내리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깨서 성질을 내는 그와 동거녀는, 파리 때문에 심하게 다투었습니다. 화가 난 이 다혈질 인간은 그길로 술을 마시러 가는데...
다시 돌아온 그는 또 동거녀와 싸움질을 시작했습니다. 주먹으로 폭행을 시작하자, 친척 언니가 말렸습니다. 그러자 친척 언니마저 뺨을 때리며 행패를 부렸습니다. 결국 총기 난사 사건의 이유는 우 순경의 다혈질인 것입니다.
우범곤은 다시 지서로 가서 술을 마셨습니다. 이때 동거녀의 남동생이 와서 따졌습니다. 그러자 완전히 돌아버린 우범곤은 성질을 폭발시키며 총을 꺼내 장전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놀라서 막았지만 예비군 무기고의 무기마저 꺼내 들었습니다.
다혈질 인간의 미친 짓
밤 9시쯤... 겨우 100가구 남짓의 이 마을은 반상회 때문에, 그날따라 밤늦게 모인 사람이 많았었습니다. 실탄 180발과 수류탄 7개를 들고 밖으로 나온 그는 지나가는 사람을 쏘고 시장으로 들어가서 마을 사람들 3명을 죽였습니다.
그리고는 우체국으로 향해서, 통신 교환원 2명과 집배원 1명을 죽입니다. 여기 근무하던 직원은 과거에 그가 짝사랑하다가 거절당한 여성이었다고 합니다. 한편으로는 마을 사람이 외부로 신고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목적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교환원이 죽기 전에 코드를 연결해 놔서 주민이 신고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이때 경찰 지서장은 온천에서 접대를 받고 있었는데, 술에 취한 채 지서에 왔다가 신고 보고를 받더니 그대로 달아나버렸습니다.
그동안 우범곤은 총기를 난사하며 사건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매실부락으로 향하며 불 켜진 집마다 들어가서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가 경찰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의심 없이 문을 열어준 것이 큰 원인이었습니다.
총기 난사 사건을 벌인 우범곤 순경의 끝
그래 놓고는 근처 상갓집에 들어갑니다. 태연하게 부의금까지 내고 같이 앉아서 술을 마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곳은 우 순경 총기 난사 사건의 최대 피해지가 되고 맙니다. 갑자기 총을 꺼내서 마구 죽였기 때문입니다. 상주 가족 12명이 죽었습니다.
밤 12시가 넘어서서 30여 명의 전투경찰이 도착했지만, 총이 두려워서 입구의 다리 밑에 숨어 있기만 했습니다. 의령경찰서장은 궁류 지서에 숨어 있었고, 시민이 와서 출동을 요청했지만 늦은 밤이라 작전을 못 한다며 거부했다고 합니다.
그동안 우범곤은 마을을 돌아다니며 놀라서 뛰어나오는 사람들을 차례로 쏴댔습니다. 이렇게 해서 죽은 사람이 추가로 23명... 그 후 자정이 넘자 한동안 쉬며 살인을 멈추고 혼자 돌아다녔습니다. 마산과 진주에서 기동대가 새벽 4시에 올 때까지 말입니다.
새벽 5시가 넘자, 우 순경 사건의 결말이 찾아옵니다. 아는 사람의 집을 찾아간 그는 가족들을 모두 깨웠습니다. 그리고는 수류탄 2개를 꺼내서 폭발시켜버렸습니다. 그로 인해 3명의 가족이 그와 함께 죽어야 했습니다.
우순경 총기 난사 사건 이후
단 몇 시간 동안 62명이 죽고 33명이 다치고 6명은 병원에서 악화되어 죽어간 사건... 그가 죽은 후 경찰은 지서장과 서장을 파면하고 구속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대법원 공판에서 직무유기죄가 인정되지 않고 파면도 무효가 된 것입니다.
우범곤 사건은 책임자는 교묘히 빠져나가고, 서씨 집안이 모여 사는 집성촌이라 친척들이 떼죽음을 당한 사건입니다. 당연히 마을 사람들뿐 아니라 국민들도 화가 났습니다. 그러자 학비와 의료지 지원이 이루어졌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이 사건으로 내무부 장관이 바뀌며, 드디어 전두환의 친구 노태우가 행정 주요 직책으로 나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전두환은 이 마을을 직접 찾아가 원성을 잠재우며 각종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그 충격 때문에 주민의 절반이 마을을 떠나 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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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순경 사건 - 우범곤 총기 난사 사건과 사망자, 범행 이유, 기네스북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