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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삶 - 다이애나 스펜서의 죽음까지

2020. 11. 15.

다이애나 스펜서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삶 - 다이애나 스펜서의 죽음까지 / ⓒ Mirrorpix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삶 - 다이애나 스펜서의 죽음까지]

다이애나 왕세자비는 연예인이 아니면서 20세기에 가장 인기 있던 사람 중 한 명이었습니다. 다이애나 스펜서는 자유분방하고 평범한 사람에서 왕실의 아이콘이 되고 비극적인 죽음을 맞을 때까지 말 그대로 드라마의 한 편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1997년 다이애나 비의 교통사고로 파파라치에 대한 비난으로 언론계까지 흔들리게 했던 세기적인 다이애나 스펜서 사건을 정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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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애나 왕세자비란 누구?

'Diana F. Spencer(다이애나 스펜서)'는 1961년 영국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왕실의 왕자들과 친하게 지냈습니다. 그의 부모가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영지를 빌려 쓰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975년에 아버지가 백작 작위를 받자 백작 가문의 막내딸이 되었고, 프랑스에 유학을 갔다가 다시 영국으로 돌아와서 상류사회를 대상으로 하는 유치원 교사로 일했습니다.

 

[다이애나 비의 등장]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삶 - 다이애나 스펜서의 죽음까지 / ⓒ James Gray

다시 왕실과 친해지기 시작한 그녀는 오랜 친구였던 '찰스' 황태자와도 사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이 둘의 약혼이 발표되자 영국인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에게 화제가 되었습니다.

 

자유분방하게 살았기 때문에 왕실과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은 생활, 그러나 갓 스무 살이 된 수줍은 모습과 미모에 전 세계가 빠져들었습니다. 더구나 동화처럼 왕자님을 만나 결혼한다는 것 자체도...

 

 

찰스 왕세자의 세기의 결혼

1981년, 다이애나 비와 찰스 왕세자의 결혼은 전 세계가 관심을 가졌고 결혼식도 전 세계로 생중계되었습니다. 그리고 두 왕자의 탄생에도 사랑이 쏟아져서 영국 왕실마저 이미지가 좋아졌습니다.

 

삶의 방식 때문에 왕실과 맞지 않을 것이라는 걱정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성실하게 왕세자비의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가난한 아이들과 AIDS 환자를 위한 자선 사업에 활발했습니다.

 

[세기의 결혼식]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삶 - 다이애나 스펜서의 죽음까지 / ⓒ REX

품위만 앞세우던 그동안의 왕실 가족과 달리 밝고 명랑한 그녀는 세계적인 인기인이 되었습니다. 미모는 더욱 플러스 요인이 되었고 그녀의 헤어스타일과 패션 감각 자체가 여자들의 유행으로 번졌습니다.

 

하지만 마냥 좋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기자들이 시도 때도 없이 그녀를 괴롭혔고, 사생활을 촬영해서 배포하는 파파라치 때문에 예민해졌습니다. '파파라치'란 공인들이 생활 중 실수하는 민망한 모습들을 몰래 찍어서 팔아먹는 자들입니다.

 

 

다이애나와 파파라치

산후 우울증에 의기소침, 식용부진까지 덮친 데다가 파파라치가 뿌려대는 사생활 노출은 다이애나 스펜서 비가 맞을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결국 왕실과의 불화, 찰스 왕세자와의 불화까지 겹치며 별거에 들어갔고, 약 4년간의 세월이 흐른 1996년 공식적으로 이혼했습니다. 이제 왕족은 아니지만 십여 억 달러의 위자료와 매년 7억 달러의 생활비를 받는 부자가 되었습니다.

 

[다이애나 비와 찰스 왕세자]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삶 - 다이애나 스펜서의 죽음까지 / ⓒ Unknown

사실 이혼 전 다이애나 스펜서와 찰스 왕자는 각각 바람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표면으로 드러나지만 않았을 뿐... 그러다가 다이애나 비가 '도디'라는 사람과 사귀는 것이 언론의 관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1997년, 프랑스에서 지내던 그녀는 파리에서 파파라초의 추격을 받게 됩니다. 사생활을 들키고 싶지 않았던 두 사람은 운전사에게 도망가자고 했고 고속의 추격전이 벌어졌습니다.

 

 

다이내나 스펜서의 죽음​

그러나 이 사건은 다이애나 스펜서의 죽음을 불러왔습니다. 180km가 넘는 속도로 도시를 질주하며 추격을 뿌리치던 그들의 차는 파리의 알마 터널에서 교각을 들이받고 말았습니다.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죽음이 전해지자 충격이 대단했는데, 의외로 영국 왕실은 차분한 반응이어서 온갖 비난을 받았습니다. 결국 그녀의 장례식은 왕실의 공식 행사로 전 세계에 중계되었습니다.

 

[의문의 죽음과 추모 물결]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삶 - 다이애나 스펜서의 죽음까지 / ⓒ Tony Kyriacou

다이애나 스펜서 왕세자비의 죽음 후에도 논란은 계속되었습니다. 왜 가까운 병원을 놔두고 1시간 30분이나 걸리는 곳으로 가야 했는지, 경찰은 운전사가 술에 취했다고 발표하면서 왜 가족이 요구하는 검시는 거부했는지 의문이 이어졌습니다. 더구나 나중에는 운전사가 정보부 요원이었다는 증언부터, 당시 사고 현장의 의문의 인물인 파파라치가 불에 탄 시체로 발견되는 등 혼돈이 계속됐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그러나 다이애나 비의 죽음은 케케묵은 군주제에 새로운 변화를 주었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 더 애틋하게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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