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탈린 카리코
35년 연구의 백신의 여왕
[백신의 여왕 카탈린 카리코 - 코로나 백신 개발 (화이자, 모더나 mRNA의 시작)]
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처음 확인되었습니다. 그 후 2020년 전 세계는 190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1년 만에 코로나 백신이 개발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보통 백신 개발 기간은 10년~15년 정도가 걸리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빠른 개발이 가능했을까요? 여러 이유 중 하나는 35년간 백신을 연구한 카탈린 카리코 박사의 눈물겨운 노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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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백신 개발의 35년
여러 코로나19 백신 중에서 가장 효과가 좋다는 모더나 백신과 화이자 백신은 공통적인 mRNA(메신저 리보핵산) 기술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보통 10년~15년이나 걸리는 백신 개발을 1년 만에 해냈습니다.
그 기술의 기초는 헝가리 생명학자인 '카탈린 카리코' 박사의 공헌에 있습니다. 1955년생인 그녀는 mRNA의 항바이러스 반응이 암 백신으로서 종양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것을 밝혀낸 과학자입니다.
그녀는 1976년 헝가리에서 학부 공부를 하다가 mRNA의 활용에 매력을 느끼고 박사 학위 과정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헝가리는 공산국가였기에 연구에는 한계가 컸습니다.
그러다가 1980년대가 되고, 미국은 인공으로 mRNA를 생성하는 유전자 증폭 기술(PCR)의 개발로 기술이 급성장했습니다. 카탈린은 미국으로 가기로 결심하고, 암시장에 차를 팔아서 900유로를 마련했습니다.
카탈린 카리코 박사의 고생
두 살난 딸 아이의 인형 속에 돈을 숨기고 겨우 도착한 미국... 재산도 아는 사람도 없는 그곳에서 의지가 되어 준 사람은 오직 공학도 남편과 딸뿐이었습니다. 그 후 템플대학에서 그녀는 하루도 빠짐없이 연구했습니다.
하지만 연구 성과가 나로 나오지 않자 그녀의 윗사람은 강제 추방당하게 하겠다는 협박을 했고, 펜실베이니아 대학으로 옮겨서 연구했지만 정부나 대학에서 경제적 지원을 받지도 못했습니다.
쉽지 않은 연구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이를 참지 못하는 것은 펜실베이니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결국 여기서도 mRNA 연구를 포기하든지 연봉을 깎이든지 선택하라고 했었다고 합니다.
연구 지원비도 없이 한다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입니다. 카탈린 카리코 박사는 그때 지원금을 받는 꿈을 꾸다가 깨곤 했다고 합니다. 결국 더 이상 연구를 지탱할 수 없게 되고 같이 연구할 연구원들도 없게 되었습니다.
코로나 백신과 카탈린 카리코
1995년은 최악의 해였습니다. 남편이 헝가리에 갔다가 비자가 안 나와서 6개월이나 묶인 상황에, 그녀는 암 진단까지 받으며 충격에 빠졌습니다. 보조기술자보다도 적은 돈을 받고 일하던 시절이라 수술도 힘겹게 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녀에게 회생의 기회가 된 만남이 이루어졌습니다. 면역학자 '드류 와이만' 박사를 만난 것입니다. 지금은 온라인으로 서류를 주고받지만, 당시엔 문서를 주고받았기에 복사를 하러 갔다가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자금을 도움받기 시작하면서 연구도 안정적이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면역반응 때문에 실험동물이 죽기를 반복하는 원인을 해결할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딘"을 이용한 mRNA 수정이었습니다.
코로나 백신은 카탈린 카리코 박사의 이런 연구 덕분에 인간에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지 못했다면 사망의 우려 때문에 백신을 만들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세계는 이 기술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카탈린 카리코의 딸
그러다가 2020년이 되자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세계는 백신을 만들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일 때였고, 마침 35년이나 연구해 오던 카탈린 카리코의 성과는 코로나19 백신을 만들기에 적합했습니다.
이것을 화이자와 모더나가 발전시킨 것이 지금의 백신입니다. 그들은 기존 백신보다 접근 방식이 유리한 mRNA 방식을 선택했고, 그녀는 바이오앤 테크라는 회사의 수석부사장이 되어 유명인이 되었습니다.
코로나 백신의 카탈린 카리코 박사도 유명하지만, 그 딸도 유명인입니다. 미국으로 갈 때 겨우 두 살인 딸은, 이후 경제적 어려움을 함께 겪었습니다. 그녀는 범죄사회학을 전공하기도 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운동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남보다 늦은 나이에 갑자기 시작한 조정 경기... 카리코 박사의 딸은 온종일 연습에 매달리다가 결국 올림픽 대표팀에 발탁되었습니다. 그리고 30세가 넘은 나이에 금메달을 목에 거는데, '수잔 프란시어'가 바로 그 선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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