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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우 신부 - 빈민 운동의 대부 본 데일리(정일우) 신부님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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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우 신부 - 빈민 운동의 대부 본 데일리(정일우) 신부님

키스 키스세븐 2020. 5. 28.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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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우 신부 - 빈민 운동의 대부 본 데일리(정일우) 신부님]

어떤 종교인은 자본주의에 물들어서 힘있는 편에 서고 심지어 정치에도 개입합니다. 그러나 또 어떤 종교인은 오로지 종교 그 자체의 의미대로 약하고 상처받은 이들을 위해 삶을 헌신합니다.

정일우 신부님은 소탈한 마음으로 진정 가난한 자들을 위해 평생을 살았던 인물입니다. 머나먼 한국땅까지 와서 살았던 본 데일리 신부... 이 글에서는 그의 이야기를 통해서 종교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빈민 운동의 대부 정일우 신부

전쟁 후, 아직도 가난에 찌들어 살던 시절, 한국의 빈민운동을 위해 헌신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온 본 데일리 신부입니다. 그리고 그는 경제가 발전하던 시절에도 소외되어 그늘에 있던 이들, 그리고 정부의 탄압을 받던 이들과 끝까지 함께 했습니다. 

1960년대에 한국에 오고, 1970년대에 민주 인권 운동과 빈민 운동을 시작하고, 1980년대에 철거민들과 함께 했고, 1990년대에 농민 운동을 돌봤던 정일우 신부님의 이야기입니다.


정일우 신부 - 빈민 운동의 대부 본 데일리(정일우) 신부님[정일우 신부 - 빈민 운동의 대부 본 데일리(정일우) 신부님] / ⓒ 내 친구 정일우)


그가 처음으로 한국에 온 것은 1960년이었습니다. 신학생이던 그는 선교 활동을 위해 한국에 왔었습니다. 그는 미국으로 돌아갔다가, 사제품을 받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던 그는 1972년, 박정희 정부의 인권탄압에 충격을 받고 이에 반대하는 쪽에 섰습니다. 

그로 인해 여러 차례 추방 위기를 받은 정 신부는 이를 통해서 사회운동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입으로만 복음을 전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그는 몸으로 직접 사람들 속에 뛰어들어서 함께 체험하며 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다가간 곳이 청계천변의 무허가 건물촌이었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호기심에 시작하게 되었다고 말했던 정일우 신부...

1973년, 그는 거기에서 제정구 전 의원을 만났고, 평생 함께 가난한 자를 돌보며 빈민 운동의 대부 정일우 신부로 거듭나게 됩니다. 


정일우 신부 - 빈민 운동의 대부 본 데일리(정일우) 신부님[정일우 신부 - 빈민 운동의 대부 본 데일리(정일우) 신부님] / ⓒ 내 친구 정일우)


언어학으로서의 한국어가 아니라, 시민들 속에서 "실전 한국어"를 배웠기에 본 데일리 신부의 언행은 재치있고 유머있으며 장난끼가 가득했다고 합니다. 이는 그의 성격 자체가 소탈하고 진솔했던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반민주적인 정부에 대해서 "대한아 슬퍼한다. 언론자유 시들어간다"는 피켓을 들고 나섰던 그는, "주민들의 생각을 기다려주고, 그들과 함께 사는, 그냥 옆에 있는 삶"으로 더욱 영역을 넓혀 나갔습니다. 





서민을 위해 헌신한 본 데일리 신부

그 후 정일우 신분는 양평동 철거민이 세운 공동체 마을에서의 빈민 운동을 시작했고, 1980년대엔 목동 철거민들의 목화마을을 거쳐서, 상계동 철거민들의 명동성당 천막생활에까지, 가난한 이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발벗고 나서는 삶을 살았습니다. 

부자들의 땅투기 때문에 살던 곳을 불리한 조건으로 내주고 떠나야 했던 철거민들, 용역 깡패까지 동원해서 폭력을 가하는 기득권들에게 상처입은 철거민들을 위해 모든 삶을 맞겼던 것입니다. 


정일우 신부 - 빈민 운동의 대부 본 데일리(정일우) 신부님[정일우 신부 - 빈민 운동의 대부 본 데일리(정일우) 신부님] / ⓒ PBC)


정일우 신부는 가난한 자들이 스스로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지식 교육을 하고, 판자촌 철거 반대운동에 앞장 섰습니다. 특히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서울 곳곳에서 진행되는 마구잡이 철거작업에 대항해서 철거민들의 경제적 자립을 돕는 사업도 했습니다. 

그때 그가 만들었던 것이 "복음자리 딸기잼"입니다. 이렇게 농사에도 접근한 그는 농촌의 문제점도 인식하고 이번에는 농촌 청년을 돕기 위해 누룩공동체에도 뛰어들었습니다. 



이런 본 데일리 신부의 공헌이 인정되어서 1986년엔 막사이사이상을 제정구와 함께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막사이사이상이란 아시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며, 인권과 인간의 행복, 평화를 위해 노력한 사람에게 주는 상입니다.

1998년 한국인으로 귀화한 그는 정말이지 온 인생을 한국 시민을 위해 살아냈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정일우 신부 - 빈민 운동의 대부 본 데일리(정일우) 신부님[정일우 신부 - 빈민 운동의 대부 본 데일리(정일우) 신부님] / ⓒ 내 친구 정일우)



하지만 말년에는 그 스스로 가난한 병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한 평생 빈민 운동만 하느라고 경제적 여유가 없었던 그는 병이 들었을 때 자신을 위해 쓸 돈이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마지막으로 보낸 그는 결국 2014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2017년 영화 <내 친구 정일우>로 다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어떤 종교인은 가진 자들을 더 부유하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어떤 종교인은 가난한 자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습니다. 종교의 본질은 물질에서 상처를 받아도 마음으로 치유받게 하는 것임을 모르는 사람들은 정일우 신부님의 삶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정일우 신부 - 빈민 운동의 대부 본 데일리(정일우)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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