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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스턴 처칠 일화 - 처칠과 딸, 사위(사라 처칠과 농담 일화)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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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스턴 처칠 일화 - 처칠과 딸, 사위(사라 처칠과 농담 일화)

키스 키스세븐 2020. 6. 11.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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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스턴 처칠 일화 - 처칠과 딸, 사위(사라 처칠과 농담 일화)]


20세기 세계 위인 중 한 명인 영국의 수상 윈스턴 처칠의 일화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날카롭고 공격적인 그의 이미지 속에 있던 의외의 면을 이야기합니다.

윈스턴 처칠의 딸과 사위는 그가 반대하던 결혼을 올렸습니다. 어떻게 보면 딸바보의 일화이기도 하지만, 그들 사이에는 살벌한 농담이 오갔다고 합니다. 바로 무솔리니의 이야기였습니다.

여러 가지 처칠의 일화 중 한 부분을 통해서 역사의 일부분도 함께 알아 두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이 블로그는 "심심할 때 잡지처럼 읽는 지식"이라는 목적으로 운영됩니다. 즐겨찾기(북마크) 해 놓으면 심심할 때 좋습니다. 



윈스턴 처칠과 딸 일화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윈스턴 처칠'은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누구나 아는 사람입니다. 대체로, 고집스럽고 불같은 성격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매우 재치 있는 말을 하는 인물로도 유명합니다.

그에게는 다섯 명의 자식이 있었습니다. 다이애나, 랜돌프, 사라, 메리골드, 매리는 아버지의 엄격한 성격 아래에서 컸다고 합니다. 아버지처럼 재치가 있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나름의 재능들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처칠의 농담 일화가 있는 딸 사라 처칠(처칠의 농담 일화가 있는 딸 사라 처칠 [윈스턴 처칠 일화 농담 딸 사라 처칠 사위)] / ⓒ maturetimes.co.uk)


그중 둘째 딸인 '사라 처칠'은 1914년에 태어났습니다. 지금 사진으로는 잘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처칠의 자녀들이 예쁜 외모를 지녔던 것 같습니다. 사라 처칠은 은근히 연예계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녀의 언니 '다이애나 처칠'이 연예인이 되겠다고 왕립 배우 학교(Royal Academy of Dramatic Art)를 다녔기 때문에 그녀도 영향을 받아서 그런 꿈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사라 처칠은 그냥 평범하게 기숙사가 있는 일반 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스물두 살이 되던 해에 '빅 올리버'라는 사람과 결혼을 하기로 결정합니다.

책을 찾아보면, 빅 올리버가 음악가면서 코미디언이었다고만 적혀 있지만, 서커스에서 활동하는 등 당시의 시각으로는 번듯한 직장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엔 TV도 없던 시절이라 사라 처칠의 눈에는 인기 있는 연예인이었고, 꿈이었던 연예계 세상의 인물이었습니다.


처칠의 딸 사라는 둘째 딸이다(처칠의 딸 사라는 둘째 딸이다 [윈스턴 처칠 일화 농담 딸 사라 처칠 사위)] / ⓒ Loomis Dean)


어느 날, 보수적이며 거물급의 정치인으로 영향력이 커지고 있던 윈스턴 처칠의 집에 둘이 인사를 하러 갔습니다. 처칠은 물론이고 그의 아내도 빅 올리버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당시 기준으로는 그저 딴따라 사위 후보였으니 말입니다.

아내 클레멘타인 처칠은 그래도 품위를 지키느라고 예의를 갖춰서 대했으나, 노골적인 처칠의 성격은 그대로 드러나서, 대놓고 싫은 티를 냈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하지만 어쨌든 둘의 결혼은 막을 수가 없었고, 결국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처칠의 딸 사라 처칠의 결혼식(처칠의 딸 사라 처칠의 결혼식 [윈스턴 처칠 일화 농담 딸 사라 처칠 사위)] / ⓒ Planet News)




윈스턴 처칠 뒤끝작렬

그 후,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습니다. 나치 독일은 이탈리아 등과 연합해서 유럽을 점령해 나갔습니다. 이때 이탈리아의 전쟁광은 '베니토 무솔리니'였습니다. 파시스트인 무솔리니는 이탈리아를 전쟁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고 독재를 했습니다.

그러나 1943년, 이탈리아 반대파에 의해 축출당했고, 나치 독일의 도움을 받아서 '살로 공화국'을 세워 독립하기도 합니다. 이때, 무솔리니는 자신의 정치를 반대하던 사위를 처형시키는 등 무력정치를 했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왼쪽이 베니토 무솔리니, 오른쪽이 아돌프 히틀러(왼쪽이 베니토 무솔리니, 오른쪽이 아돌프 히틀러 [윈스턴 처칠 일화 농담 딸 사라 처칠 사위)] / ⓒ Unknown)



그러던 중, 윈스턴 처칠과 사위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생겼습니다. 둘째 사위 빅 올리버는 마음에 안 들어 하는 장인의 마음에 들려고 "파파"라고 부르는 등 나름의 애교를 부렸었습니다.

그날도 처칠과 소통을 좀 해보려고 올리버가 물었다고 합니다.

"파파는 어떤 정치인을 좋아하세요?"

그런데 처칠의 답변은 의외였습니다.

"무솔리니를 존경하지."

유럽을 전쟁으로 망가트린 자를 존경한다니...

그리고 처칠이 한 마디 더 답니다.

"무솔리니는 사위도 총살시켜버렸거든!"

딸을 데려간 딴따라 사위에게 뒤끝 작렬하는 성질을 부린 윈스턴 처칠의 일화입니다.


사라 처칠은 여러 남자와 결혼했다. 사진은 안토니 보샹과의 결혼생활(사라 처칠은 여러 남자와 결혼했다. 사진은 안토니 보샹과의 결혼생활 [윈스턴 처칠 일화 농담 딸 사라 처칠 사위)] / ⓒ Unknown)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라 처칠의 사랑이 오래 간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자유로운 생활을 하며 여러 남자와 사귀었고 이혼과 결혼도 여러 번 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국가를 위해 공군에 들어가서 사진판독 일을 했습니다. (서양은 고위층을 수록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기 위해 아들 뿐 아니라 딸들도 전쟁터에 보내곤 했다) 그리고 전쟁 후에는 정말로 배우가 돼서 연극 무대에 섰다고 합니다. 사라 처칠이 부모를 연극에 초대한 적이 있었는데, 맨 앞자리에 앉아서 끝까지 잠을 자버린 것도 윈스턴 처칠의 일화 중 하나입니다.



[윈스턴 처칠 일화 - 처칠과 딸, 사위의 사랑과 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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