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부상 패랭이 목화솜 유래, 이유 - 황국협회 보부상 상징]
조선시대는 농업을 권하고 상업을 억누르는 정책을 폈기 때문에 경제발전이 늦었습니다. 그러나 그러던 중에도 전국적인 단체로 활동했던 보부상은 황국협회를 만들어 조선말까지 이어졌습니다. 한편 이들은 그저 장사치인 것이 아니라 나라의 고난을 함께 동참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보부상 패랭이의 목화솜 유래와 이유도 여기서 출발합니다. 보부상의 상징이 된 물미장도 역시 그러합니다. 은밀하게, 그러나 충성되게 역사 속에 숨어 있던 그들에게는 나름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전설 같기도 하고 특이하기도 한 옛날이야기를 하며 조선 상인들을 현대에 다시 이해해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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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부상 상징과 황국협회까지
조선은 크게 두 가지의 상인이 있었습니다. 국가의 공인을 받은 '시전', '공인', '보부상'이 있었고, 자유상인인 '난전', '경강상인', '개성상인', '송상', '만상' 등입니다. 이 중에서 보부상이란 교환경제를 전문적으로 하는 상인입니다.
예를 들자면, 봇짐에 상품을 지고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생필품을 파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대부분 자급자족을 하는 시대지만, 유리제품, 소설, 액세서리, 그릇 등 집에서 만들지 못하는 매우 많은 종류의 물건을 등짐에 지고 장터와 마을을 찾아다니며 파는 사람들입니다.
(남자들은 머리에 갓이나 패랭이를 쓰고 다녔다. 조선 시장의 모습 [보부상 패랭이 목화솜 유래, 이유, 상징] / ⓒ Unknown)
보부상 '패랭이'의 목화솜 유래, 이유는 보부상 상징의 기원과 맞닿아 있습니다. 패랭이란 양반들이 쓰던 갓처럼 밀짚으로 만든 일반인들의 모자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보부상의 상징인 모자의 양쪽에는 목화솜이 달려 있습니다.
또한 그들만의 지팡이인 '물미장'도 있는데, 이 역시도 보통사람들은 하지 못하는 용의 장식이 조작되어 있습니다. 용은 왕을 상징하는 것인데 어찌 이들이 그런 장식을 한 것일까요? 이런 이유 때문에 실제로 그들에게는 왕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1388년 '위화도 회군'을 해서 고려 왕조를 무너트렸습니다. 말하자면 쿠데타를 일으킨 것입니다. 이때 등짐 장수인 백달원이 이성계를 도와서 군량의 운반을 맡았다고 합니다. 나중에 조선이 세워진 뒤, 이성계는 백달원에게 벼슬을 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일자무식이어서 도무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대신 생활용품과 잡화의 전매권을 달라고 했는데, 이것이 보부상의 유래가 됩니다. 이후, 이성계는 그 공을 높이고자 보부상 패랭이에 목화솜을 잘 보이도록 붙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TV 역사채널 패랭이 모자의 목화솜 자료화면 [보부상 패랭이 목화솜 유래, 이유, 상징] / ⓒ EBS)
또 다른 유래로는, 전투 중에 이성계가 부상을 당했는데 목화 상인이 도와서 목숨을 구했다는 것입니다. 이때 이성계가 패랭이 왼쪽에 목화솜을 달게 하였는데, 나중에 인조도 도움을 받고는 오른쪽에도 목화솜을 달게 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인조는 1623년 '인조반정'으로 왕이 된 후 1636년 겨울에 병자호란이라는 치욕의 역사를 경험합니다. 이때 솜장수가 충성으로 돕기에 감동하여 이성계가 왼쪽에 달게 하였으니 오른쪽에도 달게 하라고 했답니다.
보부상 패랭이 목화솜 유래, 이유
그 후 팔도 곳곳에 봇짐장수들이 더 생기고 이들이 지금의 조합처럼 뭉쳐서 상인 집단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나름의 규칙이 강해서 단합심이 대단했다고 합니다. 처음 보는 상인끼리도 반드시 인사를 나누는 그들은 점점 전국적으로 연결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평상시에는 장사치일 뿐이지만 나라에 위급한 상황이 생기면 파발마처럼 국가 연락망이 되기도 하고 운송을 맡기도 했습니다. 먼 거리를 뛰어가는 이들은 탈수증을 막기 위해 패랭이의 목화솜에 물을 묻혀서 입에 물고 달렸다고 합니다.
(사진은 물미장. 지팡이로 쓰였다 [보부상 패랭이 목화솜 유래, 이유, 상징] / ⓒ jbom411)
그들이 들고 다니는 물미장의 유래와 이유도 이성계와 관련이 있습니다. 지팡이의 위에 달린 용 문양은 왕을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즉, 이들은 어느 정도 국가와 관계된 일을 하는 집단이라는 인식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왜냐면 보부상을 하기 위해서는 '유척'이라는 국가의 증명서를 받아야 하므로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드라마에서는 하찮은 장사치로만 나오지만 우리 생각처럼 가벼운 직업은 아니었습니다.
또 한 가지 보부상 패랭이의 목화솜 유래, 이유가 있는데, 역시 나라일과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조총이 들어온 후 전쟁이 일어나면 화약에 불을 붙일 솜이 필요했기 때문에 연락병이 될 그들이 모자에 목화솜을 달고 다녔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물론, 이런저런 설화가 있는 이유는 그들이 일부러 국가와의 관계를 강조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나름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단합된 조직이기에, 전매 특권까지 가지는 것은 그들에게 일종의 자부심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영화의 한 장면. 보부상 패랭이에 솜이 보인다 [보부상 패랭이 목화솜 유래, 이유, 상징] / ⓒ 고산자, 대동여지도)
1989년, 어느 날 고종이 보부상의 우두머리를 불러서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만민공동회(독립협회)'가 황실의 일에 사사건건 간섭을 하니 그들의 모임을 견제하려고 보부상 단체인 '황국협회'의 조직력을 보여달라고 한 것입니다.
고종은 답답한 마음에 새벽 1시에 요청을 했는데, 몇 시간 후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새벽 5시가 되자 도성 밖에 무려 1만 5천 명이나 되는 보부상이 질서 정연하게 모였던 것입니다. 이 역시도 보부상의 패랭이 목화솜 유래, 이유를 이해할 수 있는 역사의 한 단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