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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58

차례 제사 상 차리기 - 홍동백서, 조율이시, 어동육서는 근거 없는 말 [차례 제사 상 차리기 - 홍동백서, 조율이시, 어동육서는 근거 없는 말] 한국인은 제삿날 외에도 설날, 추석에 제사상을 올립니다. 제사 상 차리기는 워낙 번거로워서 홍동백서, 조율이시, 어동육서 등을 외우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때 이런 말들이 근거가 없다는 것이 밝혀져 화제가 되기도 했었습니다. 실질적인 차례상의 의미보다 허례허식을 중요시한 풍토가 만들어낸 말들이라고 합니다. 홍동백서, 조율이시, 어동육서 근거 없는 말 유교국가를 자처해 온 조선은 예법에 따라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 전통은 지금도 중요하게 전해지지만, 상다리가 휘도록 제삿상을 차리다 보면 명절이 오히려 힘들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옛 유교 문헌에서 홍동백서나 조율이시, 좌포우혜, 어동육서 등은 찾아볼 수가 없다고 합니다. 다시 .. 2016. 2. 7.
장영실의 업적, 장영실과 세종의 드라마틱한 생애- 장영실의 발명품들 [장영실의 업적, 장영실과 세종의 드라마틱한 생애- 장영실의 발명품들] 1400년대의 조선을 세계 최고의 과학 선진국으로 만든 두 사람, 장영실과 세종은 말 그대로 드라마틱한 생애를 살았습니다. 조선의 성군을 대표하는 세종의 업적은 말할 것도 없고, 출생부터 사망에까지 베일에 싸여진 장영실의 삶 또한 드라마틱합니다. 천민에서 양반에 오른 발명 신화, 장영실의 생애 장영실의 업적에 비해 생애는 정확한 기록이 없습니다. 장영실의 출생이 천민 신분이었고, 사망도 쫓겨난 뒤 기록이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장영실이 천민 소생이라고 하지만 아산 장씨 후손들은 장영실이 조상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조선시대의 "일천즉천"원칙 때문입니다. 양친 중 한 사람이라도 천민이면 그 사이의 자식은 천민이 됩니다. 원.. 2016. 1. 31.
맹사성 - 세종의 청렴한 정승, 맹사성의 일화와 황희정승과의 비교 [맹사성 - 세종의 청렴한 정승, 맹사성의 일화와 황희정승과의 비교] 조선 초 세종의 놀라운 업적에는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해서 모범을 보이는 삼정승이 있었습니다. 황희, 맹사성, 윤회는 세종의 측근으로 재상을 맡아 조선의 발전을 이룩하였습니다. 그 중에서 맹사성은 예의가 바르고 소박하면서도 업무에는 강직하여 공직자의 모범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청렴한 세종의 정승, 맹사성의 생애와 업적 맹사성은 최영 장군의 손녀 사위였습니다. 그래서인지 맹사성은 황금보기를 돌같이 하는 최영 장군을 본받아 살고자 했다고 합니다. 재능이 있고 성품이 올바르기 때문에 최영의 숙적인 이성계도 맹사성을 조선 건국 후에도 중용하였습니다. 대사헌을 거쳐 이조판서와 좌의정에 오르기까지 맹사성은 세종의 여진정벌을 돕고 조선 초의 음악.. 2016. 1. 25.
위화도회군의 배경, 이성계의 위화도회군은 옳았나 [위화도회군의 배경, 이성계의 위화도회군은 옳았나] 역사에서 만약이란 없겠지만, 고려 말 이성계의 위화도회군의 배경과 반대의 경우도 생각해 볼 여지가 있겠습니다. 위화도회군은 고려의 멸망과 조선의 건국을 촉발한 일대 사건이며, 동시에 이성계가 개인의 야망을 위해 일으킨 군사쿠데타이고 하극상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박정희 시대에는 긍정적인 역사적 결단으로 평가 받았습니다. 반면 북한에서는 역적으로 평가한다고 합니다. 위화도 회군 이전의 국제 정세 위화도회군의 배경을 이해하려면 1388년이 될 때까지의 흐름을 잘 봐두는 것이 좋습니다. 918년 고려의 건국 이후 고려는 자주적이고 진취적인 기풍을 가진 나라였습니다. 스스로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자부한 고려는, 중국에 사대적인 신라를 흡수하였고 대륙을 주름잡던 발.. 2015. 12. 21.
임나일본부설에서 한반도남부를 통치했다는 신공(진구) 왕후 [임나일본부설에서 한반도남부를 통치했다는 신공(진구) 왕후] 역사 왜곡이 심하기로 유명한 일본의 "서기"에 근거해서, 일본은 4~6세기에 한반도의 남부를 일본이 지배했다며 임나일본부설과 삼한정벌설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때 나오는 일본의 지배자가 신공황후입니다. 혹은 진구황후라고도 하는데 19세기에 일본 지폐에 등장하기도 했던 인물입니다. 이 진구황후 또는 신공황후는 일제가 한반도 침략의 당위성으로 활용한 인물이이기도 합니다. 신공왕후는 어떤 인물인가? 국내 사전을 찾아보면 진구황후, 신공황후라고 나오는데, 일본측 사료를 존중한다는 의미는 있겠으나 고쳐져야 할 일입니다. 일본인들은 천황이라고 부르지만 황제의 요건은 되지 못하니 그냥 진구왕후, 신공왕후라고 해야겠습니다. 일본이라는 국호도 겨우 7세기 중반.. 2015. 8. 27.
김덕령, 곽재우, 이산겸 - 임진왜란의 의병장, 역적으로 몰리다 [김덕령, 곽재우, 이산겸 - 임진왜란의 의병장, 역적으로 몰리다] 익호장군 김덕령장군은 이몽학의 난 때 억울하게 역적으로 몰려서 죽었습니다. 홍의장군 곽재우장군도 역모를 했다는 의심을 받은 후 은둔하여 살았습니다. 이산겸장군은 송유진의 난 때 역시 역모의 누명을 쓰고 죽었습니다. 김덕령장군, 곽재우장군, 이산겸장군 등의 역모 사건을 통해 역사를 보는 이들은 이순신장군이 전사하지 않고 살아남았다면 이순신도 선조와 정치세력에 의해 역적으로 몰렸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임진왜란 이후 정유재란, 정묘호란, 병자호란 등에서 의병활동이 침체기를 맞게 된 것도 김덕령, 이산겸 등 역적으로 누명을 쓰고 죽은 의병장들이 영향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역적의 누명을 쓴 김덕령장군은 죽어서 신격화되다 김덕령 의병장군은 담양에.. 2015. 7. 12.
미국 영토 성장기 - 돈과 전쟁으로 얼룩진 자본제국주의 역사 [미국 영토 성장기 - 돈과 전쟁으로 얼룩진 자본제국주의 역사] 미국은 약 250년 전인 18세기 후반에 독립을 하였습니다. 지금도 자본제일주의 국가라고 하면 미국을 떠 올리듯이 미국의 역사를 살펴보면 역시나 자본의 투자와 전쟁으로 성장한 나라입니다. 국내 경제강자의 이익을 위해 끊임없이 전쟁을 해온 미국에게는 돈이라는 또 하나의 거대한 무기가 있었습니다. 미국은 원래 영토의 수배를 돈으로 사고, 전쟁을 통하여 영향력을 지속시켜왔습니다. 아래는 관련 글 링크입니다. [엮인 글] 영화 라스트모히칸 역사배경 - 프렌치 인디언 전쟁과 원작 소설 13개 주의 해안국가에서 거대한 영토로 확장한 미국 잘 알다시피 미국은 연방국가입니다. 미국, 러시아, 독일, 브라질, 캐나다 등 유럽과 남미, 중동, 아프리카 등에도.. 2015. 7. 9.
임진왜란 명나라의 평양성전투 필승전법 - 원앙진으로 일본 검술 격파 [임진왜란 명나라의 평양성전투 필승전법 - 원앙진으로 일본 검술 격파] 원앙진이 임진왜란 평양성 전투에서 공을 세우다 임진왜란이라고 하면 일본군의 조총을 먼저 떠 올리지만 사실 일본의 최대 강점은 조총이 아니라 검법이었습니다. 멀리서는 조총으로 기선을 제압하고 가까이에서는 날렵한 칼을 휘두르니 조선군은 대적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명나라도 임진왜란 이전부터 왜구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는데,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원앙진입니다. 우리가 임진왜란의 3대 대첩을 한산도 대첩, 진주 대첩, 행주 대첩을 꼽듯이 일본도 3대 대첩을 꼽는데, 그 중 하나가 평양성 전투입니다. 16세기, 평양성에서는 4번의 큰 전투가 있었습니다. 일본이 임진왜란을 일으킨 후 60일 만에 평양성을 점령하는데, 1/6정도의 병력밖에 되지.. 2015. 4. 10.
세종대왕의 형인 양녕대군과 어리의 비극적 야사이야기 [세종대왕의 형인 양녕대군과 어리의 비극적 야사이야기] 이 블로그는 "심심할 때 잡지처럼 읽는 지식"이라는 목적으로 운영됩니다. 즐겨찾기(북마크) 해 놓으면 심심할 때 좋습니다. 추 천 글 양녕대군 폐위 사건의 원인 - 태종 이방원과 양녕대군의 어리 사건 양녕대군 폐위 사건의 원인 - 태종 이방원과 양녕대군의 어리 사건 양녕대군 폐위 사건 태종 이방원과 양녕대군의 어리 사건 앞날이 탄탄했던 양녕대군... 폐세자된 원인과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여기에는 태종과 양녕대군, 어리의 사건이 있었습 kiss7.tistory.com 양녕대군 폐위와 세종대왕 즉위 상황 15세기 조선 3대 왕인 태종은 양녕대군을 세자로 삼았었으나 세종대왕인 충녕대군을 보위에 올리는 전격적인 교체작업에 들어갑니다. 양녕은.. 2015. 3. 27.
러시아는 왜 일본에 패했나. 그 결과는? [러시아는 왜 일본에 패했나. 그 결과는?] 러일전쟁 쓰시마해전의 시작 1905년에 러일전쟁이 있었습니다. 세계 4대 해전인 쓰시마해전에서 일본은 승리하게 됩니다. 당시 최고의 함대로 인정되던 러시아함대는 왜 무참히 당하게 되었을까요? 러시아의 발틱함대는 영국도 싸움을 꺼리는 무적함대였는데 말입니다. 쓰시마해전 이전의 상황은 러시아나 일본 모두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내륙 깊숙이 만주를 공략하던 일본은 보급로 확보가 절실했고 러시아는 반대로 보급로인 해상을 장악해야 했습니다. 일본이 먼저 유리한 고지에 오릅니다. 러시아의 태평양함대가 정박한 여순항을 봉쇄하고 육군을 동원해서 항구를 기습공격한 것입니다. 태평양 함대가 발이 묶이자 러시아는 발틱함대를 보내서 태평양 함대와 함께 해상을 장악하려 합니.. 2014. 12.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