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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적5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뜻과 진실 - 흥선대원군시대의 지도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뜻과 진실 - 흥선대원군시대의 지도 지도는 기술이며 문명입니다. 인공위성도 없던 시대에 정확한 지도를 만든다는 것은, 지금으로 치면 첨단기술을 가진 것과 같다고 합니다. 이런 일을 해낸 사람이 고산자 김정호지만, 흥선대원군 일화 등 알게 모르게 잘 못 알려진 것들이 꽤 많습니다. 다행히 대동여지도의 진실이 서서히 알려지고 있긴 합니다. 김정호의 호인 고산자의 뜻에서도 알 수 있듯이, 김정호는 인생의 많은 시간을 정확한 지리정보를 위해 헌신한 인물입니다. 그의 헌신 덕분에 우리는 대동여지도라는 세계적인 지도를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동여지도란 뜻은 큰 조선 땅의 지도라는 뜻입니다. 고산자 김정호와 흥선대원군에 얽힌 오해와 진실 이제는 제법 알려져서 다행이지만, 한동안 잘 못.. 2016. 9. 7.
정도전의 성격과 정도전 업적, 요동정벌, 민본주의 과전법 평가 정도전의 성격과 정도전 업적, 요동정벌, 민본주의 과전법 평가 정도전은 드라마에 나오는 것과 다른 외모를 가졌다고 합니다. 성격도 천재적인 이미지와는 사뭇 다릅니다. 그래서 궁금증을 주는 역사의 인물이기도 합니다. 정도전의 많은 활약 중 가장 관심을 많이 받는 것은 과전법과 요동정벌입니다. [엮인 글 링크]정도전의 최후 - 이방원의 왕자의 난과 정도전의 죽음 정도전의 개혁과 건국, 정도전의 성격 정도전은 고려 말, 1300년대 중반에 경북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중앙 벼슬에 진출하면서 정도전도 자연스럽게 성균관에서 이색에게서 성리학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정몽주, 설정주, 하륜, 권근, 이숭인 등과 함께 공부했습니다. 하지만 과거급제 후 친원정책을 하던 이인임에 반하여 친명을 주장하다가 미움을 사서 유.. 2016. 5. 27.
작가 안데르센 - 동화 작가의 맞춤법 때문에 고생한 이야기 [작가 안데르센 - 동화 작가의 맞춤법 때문에 고생한 이야기] 동화하면 생각나는 사람, 바로 안데르센이 입니다. 워낙 큰 업적을 남겼기 때문에 안데르센은 동화의 아버지로도 불립니다. 하지만 안데르센은 의외의 인물이기도 합니다. 맞춤법이 서툴러서 고생한 작가이기도 하고, 동화작가이기를 회피했던 동화작가이기도 합니다. 너무나 가난한 소년, 안데르센 이야기 1800년대 초, 안데르센은 덴마크의 가난한 구두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너무도 가난했기 때문에 어머니도 빨래 대행 일을 했고, 할머니까지 병원 청소일을 해야 했습니다. 아버지는 초등학교만 겨우 졸업했고 어머니는 글자를 읽을 줄 몰랐기에 안데르센의 교육환경도 열악했습니다. 다행히 아버지가 연극을 좋아했기 때문에 연극대본 등을 읽어주었다고 합니다. 그러.. 2016. 2. 1.
장영실의 업적, 장영실과 세종의 드라마틱한 생애- 장영실의 발명품들 [장영실의 업적, 장영실과 세종의 드라마틱한 생애- 장영실의 발명품들] 1400년대의 조선을 세계 최고의 과학 선진국으로 만든 두 사람, 장영실과 세종은 말 그대로 드라마틱한 생애를 살았습니다. 조선의 성군을 대표하는 세종의 업적은 말할 것도 없고, 출생부터 사망에까지 베일에 싸여진 장영실의 삶 또한 드라마틱합니다. 천민에서 양반에 오른 발명 신화, 장영실의 생애 장영실의 업적에 비해 생애는 정확한 기록이 없습니다. 장영실의 출생이 천민 신분이었고, 사망도 쫓겨난 뒤 기록이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장영실이 천민 소생이라고 하지만 아산 장씨 후손들은 장영실이 조상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조선시대의 "일천즉천"원칙 때문입니다. 양친 중 한 사람이라도 천민이면 그 사이의 자식은 천민이 됩니다. 원.. 2016. 1. 31.
맹사성 - 세종의 청렴한 정승, 맹사성의 일화와 황희정승과의 비교 [맹사성 - 세종의 청렴한 정승, 맹사성의 일화와 황희정승과의 비교] 조선 초 세종의 놀라운 업적에는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해서 모범을 보이는 삼정승이 있었습니다. 황희, 맹사성, 윤회는 세종의 측근으로 재상을 맡아 조선의 발전을 이룩하였습니다. 그 중에서 맹사성은 예의가 바르고 소박하면서도 업무에는 강직하여 공직자의 모범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청렴한 세종의 정승, 맹사성의 생애와 업적 맹사성은 최영 장군의 손녀 사위였습니다. 그래서인지 맹사성은 황금보기를 돌같이 하는 최영 장군을 본받아 살고자 했다고 합니다. 재능이 있고 성품이 올바르기 때문에 최영의 숙적인 이성계도 맹사성을 조선 건국 후에도 중용하였습니다. 대사헌을 거쳐 이조판서와 좌의정에 오르기까지 맹사성은 세종의 여진정벌을 돕고 조선 초의 음악.. 2016. 1.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