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이씨 - 화산 이씨의 시조 이용상과 고려]
베트남은 옛날부터 우리나라와 인연이 오랜 나라입니다. 흔히 베트남 이씨라고 불리는 정선 이씨와 화산 이씨는 베트남과 고려 때부터 인연을 맺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베트남에서는 멸족한 왕족, 리왕조의 화산 이씨와 이용상에 대한 역사를 짚어 봅니다.
[글의 순서]
황해도 화산 이씨 시조
베트남 이씨 이용상
정선 이씨와 화산 이씨
황해도 화산 이씨 시조
과거와 정치제도가 많이 달라진 현대이지만, 역사적 전통성을 찾기 위한 왕조 연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 나라에서는 멸족된 왕족이 다른 나라에 살아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실제로 1995년 `화산 이씨`인 `이용상`의 후손이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 당 서기장을 비롯한 정부인사까지 열렬히 환영한 일이 있었습니다. 베트남은 아직 공산국가인데도 말입니다.
(사진: 크메르 사원의 중앙에 있는 크메르탑 / ⓒ Ngoc Tran)
베트남에서 보는 화산 이씨는 최초의 자주적 베트남 국가인 `리왕조`의 부활과 다름없었습니다.
베트남의 전설상으로는 기원전 2900년대에 최초의 나라가 세워졌다고는 하나, 수백 년 동안 중국의 지배를 받다가 비로소 자주독립적인 국가가 세워졌는데, 이것이 `다이비엣(Đại Việt)`국의 리왕조입니다. 그러니 베트남인들의 입장에서는 중요한 역사인 셈입니다.
(사진: 하노이에 위치한 리뱃사원. 리왕조의 황제들에 대한 숭배가 이루어지고 있다. / ⓒ vietnamtravelblog.info)
리왕조는 1009년부터 약 200년간 베트남에 세워진 최초의 독립국입니다. 1225년 `쩐왕조`에게 정권을 빼앗길 때까지 9명의 황제가 있었습니다.
그 사이 `리 즈엉 꼰(이양혼)`이 `북송`을 통해 고려에 망명하며 베트남 이씨인 `정선 이씨`의 시조가 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렇듯 정선 이씨와 화산 이씨는 둘 다 베트남의 왕족으로 고려에 정착한 외래인의 후손입니다.
(사진: 정선 이씨의 시조인 이양혼을 모시는 조각상 / ⓒ kienthuc.net.vn)
1226년 쩐왕조는 멸망한 리왕조의 후손들을 살육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베트남에서는 최초의 독립국인 리왕조를 세운 가문이 멸족되었는데, 6대 황제의 왕자인 `리 롱 뜨엉(이용상)`은 살육을 피해서 바다로 탈출을 하였습니다.
이용상의 배는 외롭게 바다를 떠돌다가 고려의 황해도에 도착하게 되었는데, 그가 바로 황해도 화산 이씨의 시조인 것입니다.
베트남 이씨 이용상
고려는 몽골의 침입 전만해도 스스로 황제국이라 칭하였으며, 팔관회 등을 통해 여진, 동아시아, 아랍인들과 어울려 축제를 할 정도로 국제적인 나라였습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외래인의 귀화에도 개방적인 모습을 가졌는데, 베트남 이씨인 화산 이씨와 정선 이씨의 망명도 큰 환영으로 받아 들였습니다.
(사진: 고려시대 팔관회의 상상도. 국제적인 축제를 했었다. / ⓒ namu.moe)
베트남 왕자인 이용상의 가족과 일행이 탄 배는 황해도 `창린도`에 도착했습니다. 창린도는 황해도 끝에 위치한 옹진군의 지역이며, 현재는 NLL에서 가까운 위치입니다.
그런데 이때 도적들이 마을 주민을 잡아가는 것을 보고 도와주게 되었습니다. "안남국"에서 온 사람의 선행은 고려 `고종`에게 보고되었고, 고종은 고향을 떠난 사연을 안타깝게 여기며 정착할 수 있게 도와주었습니다.
(사진: 이용상의 사직이 있는 옹진군 화산의 수항문 / ⓒ KBS)
그 후 베트남 이씨 이용상은 황해도 옹진군 조면 화산리에 정착하였습니다.
실제로 창린도로 향하는 해변을 `낙래외`라고 부른다는데, 이것은 "외국인이 물건을 떨어트린 곳"이란 뜻입니다. 이용상이 도착한 후 짐을 내리다가 베트남 조상의 유물을 떨어트렸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입니다. 북한에서는 지금도 옹진군 봉성면 창령리에 그의 후손들이 살고 있습니다.
(사진: 베트남 절경의 모습. 베트남은 세계적인 관광지이기도 하다. / ⓒ 12019)
고려 고종 때는 무려 30연간이나 세계 최강 몽골과 전쟁을 하던 시기였습니다. 1253년 몽골군이 침략하자 베트남 왕자 이용상은 화산성을 쌓고 무려 다섯 달이나 공격을 막아냈습니다.
화산 이씨가 되어 고려에 귀화한 이용상은 고종에게서 `화산군`을 내려 받고, 인근 지역도 하사받았습니다. 이로써 정선 이씨에 이어 두 번째 베트남 이씨가 우리나라에 자리 잡게 됩니다.
정선 이씨와 화산 이씨
화산 이씨가 된 이용상의 자손들도 역시 고려와 조선의 역사에 남았습니다.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자 고려에 대한 의리를 지키려던 `두문동 72현` 중 한 사람이 이용상의 후손인 `이맹운`입니다.
또한 임진왜란 때 열아홉 살의 나이로 문경 전투에서 전사한 `이장발`도 베트남 이씨의 후손입니다.
(사진: 리왕조의 태조 리 꽁 우언. 베트남에 있다. 화산 이씨의 실제 조상의 동상이다. / ⓒ Kelisi)
북한의 옹진군에는 베트남 왕자 이용상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데, 화산성과 `망국단`, `월성암` 등이 그것입니다.
망국단은 산 정상에서 고향인 베트남 쪽을 바라보며 그리워하던 곳이고, 월성암은 베트남을 그리워하다가 울부짖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사진: 아름다운 베트남 해안가의 모습. 고기잡이 배들이 바다를 꽉 채웠다. / ⓒ northfox)
현재 남한에는 약 1700여 명의 화산 이씨 후손이 있다고 합니다. 화산 이씨 종친들은 매년 리왕조 건국기념식에 초청받아 베트남에 가곤 했었습니다.
베트남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역사에서 사라진 최초 독립국의 왕족을 한국에서 찾은 것이니 반갑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진: 근대 베트남 왕조의 황제와 대신들의 사진. 이후 베트남은 패망의 길에 들어섰고 지금은 공산당이 집권해 있다. / ⓒ hanoicitybreaks.com)
비행기로 5시간이나 걸리는 약 3000km의 머나 먼 거리, 이미 지나간 약 800년의 기나 긴 세월, 그리고 1960년대의 베트남 전쟁에서 원수처럼 싸웠던 두 나라...
어찌 보면 전혀 관계가 없을 것 같은 한국과 베트남에게는 정선 이씨와 화산 이씨라는 베트남 이씨들의 사연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한국인이 된 그들이지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