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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왕후와 이사관의 야화 - 영조, 사도세자, 정조의 시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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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왕후와 이사관의 야화 - 영조, 사도세자, 정조의 시대

키스세븐지식 2017. 12. 8.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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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왕후와 이사관의 야화 - 영조, 사도세자, 정조의 시대]

정순왕후는 조선 후기 영조의 부인이었습니다. 어린 시절을 힘겹게 지낸 후 대왕대비까지 오르면서 막대한 권력을 휘둘렀습니다. 그가 어린 시절, 하마터면 죽을 뻔한 일이 있었는데, 아기 정순왕후를 이사관이 도와줘서 왕비에 오르게 됐다고 합니다. 야사에 나오는 이사관과 정순왕후의 이야기입니다. 




[글의 순서]

정순왕후와 이사관의 인연

이사관과 정순왕후의 재회

이사관 이후의 정순왕후



정순왕후와 이사관의 인연


'야사'란 정식으로 역사에 기록된 것이 아니라 비공식적인 글이나 말로 전해 내려오는 역사입니다. 그 중에 '정순왕후'와 '이사관'에 얽힌 야사는 "선심으로 남을 도와주면 나중에 크게 도움을 받게 된다"는 민담으로 전해옵니다. 

후에 우의정에까지 오를 인물이 이사관이며, 정순왕후는 영조의 부인이 될 사람입니다. 


사진: 야사는 고증이 되지 않거나 역사서에 오르지 못한 이야기들이며 민담 등으로 전해오기도 한다.(사진: 야사는 고증이 되지 않거나 역사서에 오르지 못한 이야기들이며 민담 등으로 전해오기도 한다. [정순왕후와 이사관의 인연] / ⓒ Paul KIm)


드라마 등에서는 매우 엄하고 강력한 대왕대비로 나오지만, 정순왕후가 어린 시절부터 떵떵거리는 집안의 규수는 아니었습니다. 

정순왕후의 조상은 인조의 미움을 받고 죽은 '소현세자'의 부인인 '민회빈 강씨'의 억울함을 호소하다가 장살되었습니다. 그 후 몰락한 집안이 되어서 아버지인 '김한구' 때까지 그저 그런 양반집일 뿐이었다고 합니다. 


사진: 15세의 나이로 66세의 영조에게 시집을 간 정순왕후는 경주 김씨이다.(사진: 15세의 나이로 66세의 영조에게 시집을 간 정순왕후는 경주 김씨이다. [정순왕후와 이사관의 인연] / ⓒ Songk1122)


김한구의 집안은 충청남도 서산에 정착해 살았는데, 부인이 출산을 앞두고 친정으로 함께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날씨가 사나와지면서 강한 바람에 눈까지 내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눈 내리는 충남 당진군 벌판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일까지 벌어졌는데, 첫딸을 출산하게 된 것입니다. 이 아이가 바로 영조의 왕비가 되어 권력을 휘두를 정순왕후입니다. 


사진: 충청남도 서산과 당진군에는 이사관과 정순왕후의 출생에 대한 야사가 전해져 온다.(사진: 충청남도 서산과 당진군에는 이사관과 정순왕후의 출생에 대한 야사가 전해져 온다. [정순왕후와 이사관의 인연] / ⓒ CC0)


이때 이사관이 인근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이사관은 고향으로 가던 중에 먼 곳에서 허둥지둥하는 한 남자를 발견했습니다. 

다가가서 사연을 듣고는 일단 자신이 입고 있던 담비 털옷을 벗어 덮어주며 산모와 아이를 태운 가마를 함께 끌고 마을로 갔다고 합니다. 이사관은 손수 미역을 사와서 산모에게 먹이고 의원을 불러 목숨을 구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것이 정순왕후와 이사관의 인연입니다. 





이사관과 정순왕후의 재회


그리고 제법 세월이 흘렀습니다. 김한구는 마을에 전염병이 퍼지자 더 이상 머무를 수가 없어서 한양으로 올라왔습니다. 그러나 시험 운도 없어서 낙방을 하고, 명문가의 눈에 띄어 살길이나 있을까 하고 기웃거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사도세자의 장인과 친분이 생겼고, 영조가 왕비를 간택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사진: 영조는 새로운 왕비를 고르기 위해 직접 간택을 하기도 했다. 그때 나이가 66세였다.(사진: 영조는 새로운 왕비를 고르기 위해 직접 간택을 하기도 했다. 그때 나이가 66세였다. [이사관과 정순왕후의 재회] / ⓒ 어진박물관)


영조는 부인 '정성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2년 후 새 왕비를 간택하기로 하였습니다. 아버지 '숙종'이 '장희빈' 때문에 고생을 하였으므로 후궁 중에 왕비를 선택할 수는 없었습니다. 

당시 영조의 나이는 66세이고 정순왕후는 겨우 15세일 때의 일입니다. 영조는 직접 신붓감을 골라서 간택을 하였습니다. 


사진: 간택이란 어린 나이의 자재들을 심사하여 왕비가 될만한 규슈를 선발하는 조선 왕조의 행사다.(사진: 간택이란 어린 나이의 자재들을 심사하여 왕비가 될만한 규슈를 선발하는 조선 왕조의 행사다. [이사관과 정순왕후의 재회] / ⓒ EBS)


정순왕후는 이사관 덕에 생명을 건진 뒤, 기울어진 가문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어린 나이에 50년이나 차이나는 지아비를 섬기는 운명이 되었습니다. 

영조와 혼인할 때 정순왕후에게는 영조와 비슷한 나이의 할아버지가 생존해 있었으니 가문의 경사이자 안타까운 혼인이기도 했습니다. 


사진: SBS드라마에 나오는 정순왕후의 모습. 영조의 계비란 두번째 부인을 말하며, 사도세자의 계모가 된다.(사진: SBS드라마에 나오는 정순왕후의 모습. 영조의 계비란 두번째 부인을 말하며, 사도세자의 계모가 된다. [이사관과 정순왕후의 재회] / ⓒ SBS)


그 사이, 이사관에게 정순왕후의 아버지 김한구가 잊지 않고 찾아가서 과거의 도움에 감사해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당시 이사관이 벗어준 담비 털옷을 돌려주며 잊지 않겠다고 했는데, 정말로 정순왕후와 이사관은 도움을 잊지 않고 도와주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정순왕후는 영조에게 틈날 때마다 자신이 태어날 때 죽지 않을 수 있었던 사연을 들려주었다고 합니다. 

야사에 의하면 영조는 정순왕후와 이사관의 사연을 귀담아 듣고는 정승자리에 앉혔다고 합니다. 이후 이사관은 예조판서를 비롯해서 호조판서, 형조판서를 거쳐서 좌의정에까지 오르게 됩니다. 





이사관 이후의 정순왕후


이사관은 정순왕후가 왕비에 오른 지 17년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사이에 사도세자가 죽고 영조의 손자인 정조가 세자가 되었습니다. 

고령의 영조는 은퇴를 하며 정조에게 대리청정을 맡겼습니다. 그리고 이사관이 죽는 해 1776년 정조는 왕위에 올랐고 정순왕후는 왕대비에 올랐습니다. 


사진: 영화 사도에서의 영조와 사도세자. 정순왕후가 왕비가 된지 3년만에 영조는 아들 사도세자를 죽인다.(사진: 영화 사도에서의 영조와 사도세자. 정순왕후가 왕비가 된지 3년만에 영조는 아들 사도세자를 죽인다. [이사관 이후의 정순왕후] / ⓒ 사도)


정순왕후와 이사관의 야사는 작은 일에도 기꺼이 나서서 남을 도와주면 나중에 큰 도움을 받게 된다는 미담이 되었지만, 역사에서 정순왕후를 보는 시각은 곱지 않습니다. 

사도세자의 죽음과 세도정치의 시작이 정순왕후 때문이라는 시각이 있어서 입니다. 왕비에 오른 지 3년 만에 영조는 사도세자를 죽였고, 순조 때 수렴청정을 하며 외척 정치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사진: MBC드라마에서 표독스런 표정을 짓는 정순왕후. 어떤 드라마에서는 정조를 독살하려는 왕대비로 묘사된 적도 있다.(사진: MBC드라마에서 표독스런 표정을 짓는 정순왕후. 어떤 드라마에서는 정조를 독살하려는 왕대비로 묘사된 적도 있다. [이사관 이후의 정순왕후] / ⓒ MBC)


또 한편으로는 정순왕후가 억울한 측면이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아들인 사도세자보다 열 살이나 어리고 손자인 정조보다 겨우 일곱 살 많은 정순왕후였습니다. 사도세자가 죽을 때 정순왕후의 나이가 너무 어려서 그럴만한 위치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세도정치 또한 정순왕후는 안동 김씨가 아니라 경주 김씨로서, 외척의 정치활동을 반대했다고도 합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사진: 정순왕후, 이사관은 은혜에 대한 민담이지만, 그 배경에는 영정조의 시대적 회오리가 함께 했다.(사진: 정순왕후, 이사관은 은혜에 대한 민담이지만, 그 배경에는 영정조의 시대적 회오리가 함께 했다. [이사관 이후의 정순왕후] / ⓒ Stephane Tampigny)


그러나, 정순왕후의 오빠인 '김귀주'가 외척으로서 정치에 깊이 관여하고, 순조 때는 수렴청정을 하며 영정조 시대의 탕평책을 거두고 남인과 소론을 숙청했습니다. 그리고 정조가 눈감아 주었던 천주교를 탄압하며 신유박해를 일으킨 것도 사실입니다. 

정순왕후와 이사관의 야사는 대중에게 교훈을 주는 일화가 되었으나 화려했던 영정조 시대를 마감하는 시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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