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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 사도세자, 정조로 이어지는 뒤주의 비극

키스세븐지식 2015. 2. 2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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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 사도세자, 정조로 이어지는 뒤주의 비극]

조선 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삼부자는 영조 - 사도세자 - 정조입니다. 사도세자는 장조라고도 하는데, 실제로 왕에 오르지 못습니다. 왕권이 할아버지 영조에서 손자 정조로 바로 넘어간 사건이 바로 뒤주 사건입니다. 이 글에서는 영조에게 죽은 사도세자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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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의 늦둥이 사도세자  

가장 태평했던 조선 후기의 시대인 영조-정조 시대에 많이 알려진 비극이 바로 사도세자의 죽음입니다.​

익히 알려진 바대로 사도세자는 영조의 미움을 받아 쌀통인 뒤주 안에 갇혀 굶어죽게 됩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영조와 사도세자의 사이가 나빴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사도세자가 전혀 잘못을 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며 영조와 사도세자만의 이야기도 아닙니다.


영조가 사도세자를 수렴청정하면서 못 마땅해 한다(영조가 사도세자를 수렴청정하면서 못 마땅해 한다 [영조, 사도세자, 정조로 이어지는 뒤주의 비극] / ⓒ EBS)


영조는 83세까지 살았고 조선 왕 중에서 가장 오랜 기간인 약 50여년을 통치하였습니다.

그러나 자식 복이 없어서 정실인 정성왕후와 소생을 두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후궁을 두게 되는데, 사도세자는 영빈 이씨와의 사이에서 낳은 자식입니다. 하지만 사도세자는 정성왕후의 양자가 되어 나인들 손에 컸습니다.



사도세자 이전에 영조는 정빈 이씨와의 사이에서 효장세자를 두었었습니다.

그러나 효장세자는 10살의 나이에 일찍 죽어버렸고 영조는 40대가 되서야 사도세자를 얻었으니, 영조에게 사도세자는 끔찍이 귀여움을 받을 법도 했지만 지나치게 엄격한 부자관계의 문제점만 역사에 남기게 됩니다.

사도세자의 죽음은 여러 논란이 있다

사도세자는 어렸을 때부터 총명했었습니다. 3살에 벌써 한자를 깨우치니 영조의 기대감은 높아졌고 항상 학문만을 하도록 엄격하게 대했다고 합니다.

웬만한 것은 영조의 눈에 차지 않으니 사도세자의 마음도 멀어집니다.  ​

그렇게 사도세자는 커가면서 점점 엇나가기 시작합니다. 오랜 정치를 하던 영조는 소통이 되지 않는 엄격한 아버지였으니 사도세자는 울화증에 걸리기도 합니다.

혜경궁 홍씨와 결혼을 하였으나 점점 더 거친 행적을 보이는 사도세자는 내시의 목을 잘라서 들고 궁궐을 돌아다니는 등 100여명을 살상하는 기이한 행동을 합니다.


기를 죽여 놓고 못한다고 더 뭐라하는 영조(기를 죽여 놓고 못한다고 더 뭐라하는 영조 [영조, 사도세자, 정조로 이어지는 뒤주의 비극] /ⓒ 영화 사도)


일설에서는 영조의 말을 잘 듣지 않는 사도세자에 대해 당시 집권세력인 노론은 계속적인 비난을 퍼부었고 사도세자의 편을 드는 소론을 제거하기 위해 노론은 사도세자를 폐위시켜 버리고 싶어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러나 직설적인 기록은 없고 정황상의 근거일 뿐, 오히려 반대로 노론과 잘 지낸 기록도 있어서 의견이 분분한 당쟁설입니다.

영조의 아들에 대한 가혹함은 당쟁설, 반역설 등이 있는데, 당쟁설이 가장 많은 풀이로 사용되고 있고 반역설은 사도세자가 광기로 실언을 한 것들에 대한 의견이라고 보여집니다.



결국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는 영조의 화를 돋워 뒤주에 갇히게 됩니다. 뜨거운 한 여름에 뒤주에 갇혀 굶어 죽어갑니다.

이때 정조 이산의 나이는 11살... 지금과 달리 당시의 11살이면 그냥 어린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그런 나이에 아버지 사도세자가 할아버지의 미움을 받고 뒤주 속에서 죽어가는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지켜보아야만 했던 사람이 후에 정조로 즉위할 이산이었던 것입니다.

거친 삶을 이겨낸 정조 이산

마침내 사도세자는 뜨거운 더위와 굶주림 속에 9일 만에 죽게 되었습니다.​

사도세자는 이전에 혜경궁 홍씨와의 사이에서 정조를 낳았었는데, 정조의 본명은 이산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정조가 될 이산입니다. 영조는 이산의 부친인 사도세자가 폐위되고 서인으로 강등되었으니 그 아들 이산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서인으로 강등시킵니다.​

하지만 영조의 나이는 늙어가고 자기 며느리 혜경궁 홍씨보다 10살이나 더 어린 15세의 왕비를 다시 간택했으나 후대를 이를 세자가 없었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결국 사도세자는 뒤주 속에 갖혀서 죽는다(결국 사도세자는 뒤주 속에 갖혀서 죽는다 [영조, 사도세자, 정조로 이어지는 뒤주의 비극] / ⓒ 드라마 이산)



새 왕비를 왕후에 앉혔지만 후대를 잇는데 실패하고 할 수 없이 이산을 다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사도세자의 형이었던 죽은 효장세자의 양아들로 입적하는 것이 조건이었습니다.​

아버지를 비명에 보내고 양아들로 다시 궁궐에 입궐하게 된 정조 이산은 이때부터 왕이 될 수업을 다시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영조가 죽자 25세의 나이로 정조로 즉위합니다.​

많은 고통의 세월을 보냈지만 드라마틱한 반전 속에 즉위하게 된 정조 이산은 이후에도 왕권이 안정화될 때까지 많은 위협 속에 살아야 했습니다. 심지어 정조 암살 위기까지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조는 현명한 판단과 대처 속에서 정조시대의 기반을 마련하고 영조의 뒤를 잇는 정조 태성성대 시대를 이끌어 갑니다.

영조와 정조로 이어지는 조선의 마지막 중흥기는 이렇게 정조의 모진 고생으로 일궈진 역사였습니다.​



[영조, 사도세자, 정조로 이어지는 뒤주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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