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경왕후와 소헌왕후 가족 몰살 사건
태종 이방원의 가계도 비극
조선 제3대 왕인 태종 이방원은 업적만큼이나 끔찍한 살육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중에서도 처절하게 처가 가족들을 죽인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바로 원경왕후와 소헌왕후의 가족 몰살 사건에 대한 역사입니다.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태종과 원경왕후의 사이가 나빠진 이유, 그로 인해 원경왕후의 가족을 몰살하는 과정, 그 후 세종의 부인인 소헌왕후의 처가 가족마저 몰락시킨 이유까지 이어서 설명합니다. 이를 통해서 인간 이방원의 모습을 이해하려는 것입니다.
원경왕후 민씨와 소헌왕후 심씨 가족 몰살 사건 - 태종 이방원 가계도 비극
태종 이방원과 원경왕후 가계도
먼저, 원경왕후의 가계도를 정리합시다. '원경왕후'의 아버지 '민제'고, 어머지는 '송씨'이며, 그의 아들로는 '민무구', '민무질', '민무회', '민무휼'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들은 '태종 이방원'의 처남들이며, 동시에 '세종대왕'의 삼촌들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 집안은 나중에 태종 때문에 죽습니다. 세종의 장인이 될 '심온'도 태종 때문에 죽습니다.
민제의 집안은 고려 말 권문세족 출신입니다. 민제가 이성계와 사돈을 맺어서 부부가 된 것이 '이방원'과 '민씨'였습니다. 이 민씨가 나중에 원경왕후가 됩니다. 민씨는 여장부였습니다. "왕자의 난" 때 이방원이 반란을 주저하자, 무기를 내주며 용기를 준 사람입니다. 어찌 보면 이방원이 왕위에 오를 수 있게 밀어준 인물이기도 합니다.
이방원은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로, 왕위에 오를 세자가 아니었습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정몽주, 정도전을 죽였고, 배다른 동생인 이방석과 이방번도 죽였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왕에 오른 인물입니다. 그런데 왕이 된 후에도 수많은 사람을 죽여버립니다. 자신의 처가뿐 아니라 아들의 처가까지도 몰살시켰습니다.
이방원이 죽인 인물들
태종 이방원이 죽인 사람이야 한둘이 아니지만, 주요 인물들을 다시 보자면 이렇습니다.
- 정몽주: 이방원이 조선을 세우려 할 때 반대했던 인물로, 결국 이방원에 의해 암살되었습니다.
- 정도전: 이성계와 함께 조선의 기틀을 다졌으며 이방원이 삼촌처럼 따랐으나, 결국 이방원에 의해 살해당합니다.
- 방석: 이방원의 배다른 동생인데, 이성계가 세자에 앉히자 이를 빼앗을 목적으로 이방원이 죽여버립니다.
- 방번: 역시 배다른 동생인데, 이방원이 방석을 처단할 때 그 형제인 방번도 죽여버립니다.
- 민무구, 민무질: 원경왕후의 남자 형제이며 태종의 처남으로, 태종 이방원의 시험에 넘어가게 자살을 명받습니다.
- 민무휼, 민무회: 역시 원경왕후의 형제이며 태종의 처남인데, 처형된 형들의 죽음을 억울해 하다가 자살을 명받습니다.
- 강상인: 끝까지 병권을 독점하기 위해 혹독한 고문을 한 뒤, 대역죄 거열형으로 찢어 죽입니다.
- 심온: 아들 세종대왕의 장인이지만, 강상인 사건으로 엮어서 죽이고 집안을 노비로 만들어 풍비박산시켰습니다.
원경왕후 민씨 처가 몰살사건
정몽주, 정도전을 죽인 것은 조선 건국 이후 이성계 일파가 권력을 독점하기 위해서라는 목적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방석과 방번의 죽음은 이방원 일파가 권력을 독점하기 위해서라는 목적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태종은 부인인 원경왕후의 처가 사람들을 왜 죽였고, 아들 세종의 처가 사람들은 또 왜 죽였는지는 의문이 따릅니다.
그래서 나오는 첫 번째 가설이 태종과 원경왕후의 부부싸움설입니다. 원경왕후는 고려시대에 태어났고, 고려시대는 조선처럼 남존여비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원경왕후가 왕자의 난에도 앞장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태종은 왕이 된 후 후궁 제도를 법제화하여 후궁들과 놀아났습니다. 그러면서 사이가 나빠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나오는 두 번째 가설은 외척 세력 견제설입니다. 태종은 아버지 이성계를 왕에서 쫓아냈습니다. 세종이 왕에 오른 후에도, 태종은 죽을 때까지 병권을 잡고 상왕으로 있었습니다. 이렇듯 권력에 미친 듯이 살았기 때문에 외척이 왕권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싹을 자른다며 누명을 씌운 것입니다.
태종의 못된 심보
물론 조선을 안정화시킨 왕으로 평가를 받고 있고, 그 공이 큰 것도 사실이긴 합니다. 그러나 태종 이방원은 애초에 못된 성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사람을 떠보다가 허점을 보이면 그것을 틀어쥐고 죽음으로 몰아넣는다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원경왕후의 처남들을 죽인 사건입니다.
태종의 선위 파동이 유명한데, '선위파동'이란 뜻은 갑자기 왕에서 물러나겠다고 하면서 신하들의 반응을 떠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신하들은 안 된다고 엎드려 매달렸고, 태종은 이것을 즐겼습니다. 그런데 태종이 물러나면 조카가 왕위를 이어받을 것이라며 좋아한 자들이 있었으니, 그들이 민무구, 민무질이었던 것입니다.
문헌에서는 민씨 형제가 기뻐하고 왕권에 불충한 말을 했다는 상소를 받고 태종이 제거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태종의 성격을 알고 있던 아첨배들이 태종의 의도대로 제거할 수 있도록 상소를 써 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왕자들과 친한 민씨 형제가 왕권을 장악하려고 한다는 누명으로 사용하기에 딱 알맞았던 것입니다.
세종 처가 소헌왕후의 처가 몰살
원경왕후는 태종의 외척 숙청에 대해 극심한 고통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세종의 부인인 소헌왕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시작은 강상인 사건이었습니다. 태종은 세종에게 왕위를 넘긴 이후에도 30살이 될 때까지 상왕으로 있으면서 간섭하고 병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즉 실질적인 왕은 여전히 태종이었습니다.
그래서 군사 관련 보고는 자신에게만 하도록 했는데, 병조참판이었던 강상인이 세종에게도 보고하면서 일이 터진 것이었습니다. 처음엔 국문만 한 뒤, 고향으로 유배시켰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뜬금없이 강상인, 심증(심온의 아들), 박습이 병권 분리에 불만이 있다는 상소가 올라왔습니다. 그러면서 세종의 장인인 심온에게 불똥이 튀었습니다.
심온은 영의정으로서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던 중이었습니다. 그를 환영나온 백성들의 인기를 보고는 태종의 심기가 불편해졌습니다. 태종은 사돈인 심온에게 참혹한 고문을 했고, 마침내 대역죄로 사약을 내렸습니다. 강상인은 거열형, 박습은 참살당합니다. 소헌왕후의 처가는 몰락하고, 왕비의 가족들은 노비로 살아야 했습니다.
태종에 대한 평가
태종은 조선의 기틀을 완성한 왕으로 평가받습니다. 사병을 없애고 호패법을 실시하며 6조 직계제 정부를 만든 것은 업적입니다. 그러나 조선 건국을 도운 원경왕후를 멀리하고 19명의 후궁을 두더니, 부인과 싸운 후 처가를 몰살시키는 것으로 복수를 한 왕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방원이 그렇게 했기에 조선의 바탕이 안정화되었다고 평가하지만, 과연 그것만 옳았을까도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왕이 되지 못한 왕족이 정치에 참여하지 못하듯이, 외척이 정치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정하는 것이 더 옳았을 것입니다. 이때 법제화했다면, 조선 말기의 어지러운 외척 권력이 득세하기에 어려웠을 수도 있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하지만 태종 이방원의 방식은 오로지 "제거"였습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왕이라고 하지만, 원래 그의 생존 방식 자체가 상대를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원경왕후와 소헌왕후의 외척에게도 문제가 없을 수 없지만, 남편 때문에 처가 가족이 몰살당하고 쑥대밭이 된 사연은 비극입니다.
함께 볼 심심풀이 지식거리
태종 이방원과 민무구의 옥과 죽음 - 원경왕후의 동생들을 몰살한 사건 1
태종 이방원에게 왕자의 난을 일으키게 한 여장부 원경왕후
[ 원경왕후 민씨와 소헌왕후 심씨 가족 몰살 사건 - 태종 이방원 가계도 비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