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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병 사기 사건 - 가짜 이강석 사건 (이승만 양자, 이기붕의 아들 이강석 사칭 사건)

2024. 2. 22.

강성병 사기 사건 - 가짜 이강석 사건 (이승만 양자, 이기붕의 아들 이강석 사칭 사건)


 

가짜 이강석 사건

강성병 사기 사건

 

전 대통령 이승만의 양아들이자 전 국회의장 이기붕의 아들을 사칭했다가 희대의 사기 사건이 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를 "가짜 이강석 사건"이라고 부릅니다. 사기를 친 범인은 강성병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강성병 사기 사칭 사건"이라는 이름으로 설명합니다.

 

정치와 권력자 사칭 사건이므로, 일단 이승만의 양아들 이강석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그가 나중에 아버지 이기붕을 죽인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배경 위에서 강성병이 어떤 사기를 쳤는지도 이어서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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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병 사기 사건 - 가짜 이강석 사건 (이승만 양자, 이기붕의 아들 이강석 사칭 사건)

 

이승만 양아들, 이기붕 아들

 

초대 대통령 이승만과 국회의장 이기붕의 사진

 

강성병 사기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승만의 양자였던 '이강석'에 대해 먼저 알아야 합니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부인 프란체스카와의 사이에서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기붕'의 장남 이강석을 양자로 들였기 때문입니다.

 

이기붕은 이승만의 비서실장이었습니다. 이승만은 양녕대군의 15대손이고, 이기붕은 효령대군의 16대손이므로, 촌수 상으로는 이기붕이 아들뻘 됩니다. 권력에 대한 야망이 강했던 이기붕은 이승만에게 아부하기 위해서, 이승만이 83살 되던 1957년에 장남을 아들로 보냈던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승만의 손자뻘을 양자로 보냈기 때문에 이기붕은 아들과 촌수 항렬이 같아지는 희한한 일이 생기게 됩니다. 그런 아부 때문인지, 이기붕은 서울시장을 거쳐 국회의장까지 오르며 이승만 정권의 이인자가 되었고, 이강석은 마치 왕정국가의 왕자처럼 안하무인으로 살게 됩니다.

 

 


 

이강석은 누구?

 

이승만의 양아들, 이기붕의 아들 이강석

 

양아버지가 대통령이고 친아버지가 국회의장인 이강석은 권력이 막강했습니다. 아버지 이기붕이 정치깡패까지 동원하며 권력을 휘두르던 시절이니, 아들 역시 그러했습니다. 대낮에 파출소에서 헌병의 뺨을 때리는 등의 난동을 부려도 아무도 막을 수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이강석은 부정편입을 통해서 서울대 법대에 들어갔었지만, 불법이 드러나자 슬며시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상명하복이라는 군대의 특성을 이용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런 사실을 국민들이 모를 리 없었습니다. 하지만 민주주의 개념을 모르던 시절이니 다들 왕자처럼 생각했습니다.

 

이런 행패를 신문에서 보며 이강석 사기 사건을 계획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강성병'입니다. 평소에 이강석과 닮았다는 말을 들었던 그는, 대통령 아들을 왕의 아들처럼 받드는 세상을 비웃으며 그 권력을 이용해 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가짜 이강석 사건

 

이승만 양자, 이기붕의 아들 이강석 사칭 사건

 

가짜 이강석 사건의 시작은 1957년에 있었습니다. 당시 22살이었던 그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대구 사람이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대학 시험에 떨어져서 할 것이 없자 가출해서 살던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을 이승만의 양아들 이강석이라고 하며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경주에 가서 다짜고짜 경찰서장을 만나러 왔다고 했습니다. 당시 경찰서장의 권력도 지방에서는 막강했던 시절이만, 이기붕의 아들 이강석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니 경찰서장이 넙죽 고개를 숙였습니다. 이승만의 지시를 받고 비밀 시찰을 하러 왔다는 말도 그대로 먹혔습니다.

 

서장은 강성병에게 깍듯이 대해주고 경호차까지 붙여서 관광도 시켜주었습니다. 거들먹거리며 대우를 받은 그는 영천, 안동, 봉화까지 경찰용 차량을 타고 돌아다니며 사기를 쳤습니다. 이렇게 강성병 사기 사건은 지방 공무원들의 자발적인 극진한 대접 속에서 계속됩니다.

 

 


 

강성병 사기 사건

 

이강석의 얼굴 사진 - 강성병 사기 사건, 가짜 이강석 사건

 

지방에서는 군수까지 찾아와서 인사를 했습니다. 모두들 권력 앞에서 쩔쩔매며 아무 의심도 하지 않았습니다. 더불어 돈까지 챙겨 주었습니다. 관리와 유지들이 상납금을 만들어서 바쳤고, 심지어 공금으로 뇌물 성격의 돈을 주기도 했습니다. 강성병도 뻔뻔하게 돈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황당한 가짜 이강석 사기 사건은 3일 만에 끝나게 됩니다. 실제 이승만 양아들의 얼굴을 알고 있던 사람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경북도지사의 관사에 초청된 후, 도지사의 아들에 의해 가짜라는 것이 들통났습니다. 도지사의 아들이 진짜 이강석과 고등학교 동기였기 때문입니다.

 

3일 만에 경북도지사 관사 뜰에서 체포된 그는 경찰서로 보내졌습니다. 처음엔 경찰이 이 사실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권력자가 엮인 사건인 데다가 누가 봐도 창피한 일이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한 기자가 알게 되면서 신문에 기사가 났고, 전 국민이 알게 되는 사기 사건이 되었습니다.

 

 


 

이승만 독재의 몰락

 

이강석 사칭 사건은 독재 권력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재판이 열렸습니다. 강성병은 본인 변론에서 관리들의 부패성을 테스트했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에게 아첨한 자들이 오히려 간신배라고 주장했는데, 몰려든 방청객들은 오히려 강성병의 주장에 동의하고 있었습니다. 국민 모두가 말만 안 할 뿐, 이승만 독재정권의 문제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기 사건이지만 잡범으로 분류되어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1960년에는 진짜 부패자들에 대한 국민 판결이 벌어집니다. 3.15 부정선거로 이기붕이 부통령에 당선되자 4.19 혁명이 일어났고, 국민들의 손으로 이승만이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이기붕과 이강석의 운명도 거기서 끝나게 됩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육군 소위였던 이강석은 아버지 이기붕과 어머니, 동생을 총으로 쏴 죽이고 자살했습니다. 그리고 가짜 이강석 사기 사건은 강병성의 자살로 끝나게 됩니다. 1963년, 대구의 한 술집에서 극약을 먹고 자살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유서도 남기지 않아서, 왜 죽음을 선택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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