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남 사건
성폭행 사건과 송백권 살인사건
김부남 사건은 두 가지 사건으로 나뉩니다. 1970년 성폭행 사건과 1991년 송백권 살인사건입니다. 이 두 사건 모두 한 번은 피해자로, 한 번은 가해자로 사건의 원인과 결과가 됩니다.
이 사건은 어린이 보호에 관심이 없던 시대의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사회는 아동 성폭행 후유증의 심각함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고, 나중에 성폭력 특별법이 제정되는 데에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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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남 사건 - 김부남 성폭행 사건과 송백권 살인사건
9살짜리가 당했던 성폭행
1970년, 도시가 아닌 시골마을에는 상수도 시설이 없어서 물을 길어다 먹어야 할 때였습니다. 가난한 시골 마을의 9살 김부남은 그래서 우물에서 물을 가져 오는 심부름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이의 집에는 우물이 없었기에 이웃의 집에 있는 우물을 이용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웃집의 35살 송백권은 우물물을 길러 온 9살 어린 아이를 불렀습니다. 잠깐 방에 들어와서 뭐를 좀 해달라는 범인의 말에, 아이는 아무 의심 없이 따라 들어갔습니다. 여기서 끔찍한 성폭행 사건이 일어나는데, 이것이 김부남 사건의 원인이 됩니다.
9살 아이는 폭행으로 인해 피를 철철 흘리며 집으로 돌아가야 했지만, 송백권이 이를 말하면 가족을 다 죽이겠다고 협박했기에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아이는 아파 죽을 지경의 상태를 숨기고 며칠이나 홀로 고통스러워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사진의 진실을 캐물어 주지 않았습니다.
김부남 성폭행 사건
9살짜리가 당한 성폭행의 후유증은 엄청났습니다. 자꾸 멍하게 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밤에 오줌을 싸는 실수를 자주 하기 시작했으며, 공부도 집중할 수 없었으며 친구와도 관계도 나빠졌습니다. 점점 정신적으로 이상 행동이 늘어났지만 부모도 누구도 왜 그런지 원인을 밝혀 주지 않았습니다.
그것도 모르는 부모는 계속 송백권의 집에 가서 우물물을 길어 오라고 하고, 울며 싫다고 하는 어린 김부남을 오히려 혼내곤 했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자 부잣집 허드렛일 가정부로 가게 되면서, 그나마 송 씨의 얼굴을 보지 않고 살 수 있다는 안도감을 얹을 수 있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하인처럼 가정부 일을 하며 번 돈은 집안 생활비와 오빠 학비로 쓰였습니다. 그렇게 10대를 보내버리고, 스무 살이 되면서 고향에 돌아오게 되었는데, 부모가 중매를 통해서 김부남을 결혼시키려고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김부남 성폭행 사건 때문에 고난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성폭행의 엄청난 후유증
너무 어린 나이에 끔찍한 일을 당했기 때문에 영화나 TV에서 남녀 연애도 거부감이 들었던 그녀였기에, 부부 관계 역시 험난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몸만 닿아도 몸서리치는 김부남의 증상 때문에 당황해했습니다. 김부남은 9살 때 당한 성폭행 사실을 고백했지만 아무 공감도 없었습니다.
남편은 화가 나서 처갓집에 전화를 했고, 그때서야 부모와 가족은 김부남 성폭행 사건이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이런 공황 상황 때문에 그녀의 멍한 증세는 점점 심해졌습니다. 병원에서는 정신분열증 진단을 내렸고, 그녀의 신혼은 이혼으로 결말짓게 되었습니다.
얼마간 시간이 흘러 두 번째 결혼을 했는데, 새 남편은 다행히 그녀를 이해하려는 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역시 이제 와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말리기만 할 뿐이었고, 부부 관계는 역시나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두 번째 결혼생활도 파탄이 나고 맙니다.
김부남 살인 사건의 시작
세월이 갈수록 김부남의 정신분열 증세는 점점 더 심해졌습니다. 소리를 지르고 발작하는 그녀는 정신병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던 중, 김부남은 자신의 문제와 삶을 망가트린 원인이 9살 때 당한 성폭행 때문임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서야 김부남은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늦었습니다. 당시 강간죄는 피해자가 직접 고소해야 하는 친고죄였는데, 고소 기한이 6개월 전에 끝나버렸던 것입니다. 그러니 공소시효까지 지나버려서 법적 처벌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화가 난 김부남은 사건의 범인인 송백권을 찾아가서 화를 냈습니다. 송백권은 직접적인 시인을 하지 않고 합의금 조로 40만 원에 마무리하자고 제안해 왔습니다. 55살이 된 송백권은 뇌졸중으로 몸이 불편한 상태였습니다. 그럼에도 뻔뻔했으니 김부남은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김부남, 송백권에게 징벌을 내리다
거의 20년이나 지난 김부남 사건은 법도 치안도 사회도, 더구나 가족도 비난하지 않은 사건이었습니다. 결국 김부남은 스스로 징벌을 내리기로 결정했습니다. 1991년, 그녀는 부엌칼과 과도를 코트 안에 숨기고 송백권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송백권과 그의 아내는 돈까지 받아놓고 왜 또 왔냐며 오히려 욕설을 내뱉었습니다. 그러자 김부남은 칼을 뽑아 들어 성폭행범에게 난도질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중풍으로 저항이 불가능했고, 그의 아내도 말릴 수 없는 틈이었습니다. 마침내 그는 그 자리에서 죽게 됩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곧 경찰이 왔고, 그녀는 현행범으로 체포되었습니다. 그리고 재판정에 섰는데, "사람이 아닌 짐승을 죽였다"고 주장했습니다. 김부남 살인 사건은 사회에 큰 충격도 주었습니다. 법원은 그의 심신 미약을 인정하고, 징역 2년 6개월에 3년 집행유예를 선고하고 1년간의 치료 감호 판결을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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