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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한 지식 칼럼/역사&사건

205부대(보안부대) - 보안사, 기무사, 방첩사를 거친 방첩기관의 흑역사

2024. 1. 13.

205부대(보안부대) - 보안사, 기무사, 방첩사를 거친 방첩기관의 흑역사 / ⓒ kbs


 

205부대

보안사, 기무사, 방첩사

 

국가 안보를 위해 보안, 방첩 부대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205보안부대입니다. 보안사, 기무사, 방첩사로 이름을 바꾸며 존재했던 205부대의 이면을 정리합니다.

 

역사의 모든 면은 긍정과 부정이 있는데, 긍정의 면은 다른 문서에서 설명하고 여기서는 부정적인 흑역사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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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부대(보안부대) - 보안사, 기무사, 방첩사를 거친 방첩기관의 흑역사

 

방첩 부대의 흑역사

 

이승만을 위한 국가 방첩 부대 특무대의 김창룡과 마패 / ⓒ Unknown

 

자유민주주의의 이해도가 낮은 사람들은 간혹 "국가"와 "정부"를 구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국가를 위한다는 변명 아래에 특정 정부만을 위한 불법을 저지르곤 합니다. 지금 언급하고자 하는 흑역사 부분은 그런 역사의 사례로 봐야 할 것입니다.

 

205보안부대의 역사는 1950년 '특무부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들은 이승만 정권을 위해 엄청난 권력을 휘둘렀습니다. 심지어 조선시대 암행어사처럼 마패까지 가지고 다녔다고 합니다. 특히 김창룡 특무대의 악행은 최악으로 꼽습니다.

 

그들은 제주 4.3 사건에 대해 고문과 처형을 일삼았습니다. 부산 정치파동에서는 야당 의원이 탄 버스를 크레인으로 끌어가서 납치하는 짓도 합니다. 또한 형무소 중형수들을 산에 풀어놓고는 무장 공비라며 죽인 후, 반공 정치에 이용해 먹어서 결국 이승만 재선에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205부대가 보안사령부가 되기까지

 

205부대 - 소격동에 있던 구 보안사령부 청사  / ⓒ 문화재청

 

국가 안보를 위한 부서는 여러 곳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군대에 해당하는 방첩을 하는 곳이 군방첩부대이며 205보안부대 같은 곳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군의 쿠데타와 테러를 막는 것이 목적이며 민간인을 대상으로 방첩활동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정작 1960년의 5.16 박정희 쿠데타는 막지 못했습니다. 정권을 위해 민간인을 향해 사찰을 하고 있었으니 군 내부에는 소홀하게 된 것입니다. 집권한 박정희는 다른 군인들이 자신처럼 쿠데타를 할까 봐 오히려 힘을 실어줬고, 그래서 바뀐 것이 1960년의 방첩부대입니다.

 

그때 국가적으로 큰 위기도 있었습니다. 북한이 1.21사태를 일으킨 것입니다. 이에 1968년, 205부대는 "육군보안사령부"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하지만 정권에 붙어서 하는 짓은 변하지 않았고, 1977년 "국군보안사령부"로 바뀌어서도 민간인 납치, 고문 등 온갖 인권 유린을 저질렀습니다.

 

 


 

기무사 205보안부대가 되기까지

 

205보안부대 - 구 기무사령부 / ⓒ KBS

 

1979년, 쿠데타를 막아야 할 보안사가 오히려 쿠데타를 일으키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전두환, 노태우의 12.12 사태였습니다. 전두환은 자신을 반대하는 모든 사람을 빨갱이로 몰아서 "녹화사업"이란 것을 했는데, 국군보안사령부는 여러 건의 의문사에 개입하게 됩니다.

 

이윤성, 김두황, 김용권, 이진래, 정성희, 최온순, 최우혁, 한영현, 한희철 등 운동권 학생을 강제로 군대로 보내고, 각종 고문 등을 통해 괴롭히다가 죽음에 이르게 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걸핏하면 빨갱이로 모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것을 국가 기관이 나서서 했다는 것이 더 문제였습니다.

 

마침내 1990년 보안사가 민간인을 사찰했다는 사실이 폭로되었습니다. 이것은 큰 문제였습니다. 군 방첩부대가 국가가 아니라 특정 정부만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노태우 정부는 민간인 사찰을 금지하겠다고 약속했고, 205보안부대는 1991년에 기무사로 변경되었습니다.

 

 


 

민간인 사찰과 군인의 정치 개입

 

205보안부대 방첩대 - 기무사 민간인 사찰 사건 / ⓒ KBS

 

군 내부의 방첩과 군사기밀, 군사 테러를 담당해야 하는 국군기무사령부의 시작은 원래의 업무로 돌아가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보수 우파 정부가 탄생할 때마다 다시 나섰습니다. 우파 정부는 국민 감시에 그들을 써먹었고, 이들은 그것을 이용해서 세력을 키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2007년 대통령 선거는 진보주의 정당이 정부를 맡았습니다. 이때 기무사는 우파 보수 정당에 붙었고, 당시엔 야당이었던 이명박 후보를 지원했습니다. 한편, 이들은 대통령인 노무현을 감청했고, 그가 서거했을 때는 박수 치고 환호했다는 논란까지 빚었습니다.

 

보안사, 기무사로 이어지는 흑역사는 계속되었습니다. 2009년엔 또다시 민간인 사찰을 하다가 폭로 당했고, 2011년엔 개인 이메일을 해킹하다가 걸려서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2015년엔 전직 간부가 레바논 테러 조직에 탄창을 넘겼고, 사령부 소령이 중국에 돈을 받고 3급 기밀은 넘겼다가 발각되기도 했습니다.

 

 


 

나쁜 짓을 해도 사면해 주는 역사

 

205부대 흑역사 - 세월호 사찰과 계엄령 시도 문건 / ⓒ KBS

 

2017년, 북한을 대상으로 활동하라고 했더니 엉뚱하게 민간인 여론조작을 하고 있었던 일도 발각되었습니다. 당시에 군 사이버사가 댓글 조작을 했다가 나온 자료에서, 이들이 국방부 TF를 감청해서 수사기밀을 빼내고, 보수 우파 정권을 위해 각종 여론 조작에 개입했던 행적이 드러나 버렸습니다.

 

더구나 이들은 2014년 세월호 참사 때 유가족을 분류하고 사찰했으며, 유가족을 공격해 대는 보수 우파 단체에게 여러 정보를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더욱 결정적인 것은, 박근혜 정부가 탄핵을 맞을 때 보수 정부를 위해 군대를 동원할 계엄령을 가상한 문건까지 만들었었다는 것입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결국 2018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며 "군사안보지원사령부"로 바뀌게 됩니다. 고유 업무인 군사 보안, 간첩과 테러 대응 등만 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에 전국 기무부대는 정치적 중립을 선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민간인 사찰을 하던 자들은 기소되었는데, 2023년 윤석열 정부에서 이들을 모두 사면하고 석방해 줘 버렸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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