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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KAL기 폭파 사건 - 보잉 707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과 블랙박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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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KAL기 폭파 사건 - 보잉 707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과 블랙박스

키스세븐지식 2023. 10. 30.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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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KAL기 폭파 사건 - 보잉 707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과 블랙박스


 

1987년 KAL기 폭파 사건

보잉 707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


서울 올림픽을 1년도 안 남겼던 1987년, 중동에서 한국으로 오던 대한항공 비행기가 갑자기 추락했습니다. 사고 원인은 폭발 때문이며 북한의 테러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이 대한항공 858편 보잉 707기 폭파 사건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제대로 조사하지 못하는 사건이 됩니다. 그로 인해, 사건 자체보다는 김현희와 KAL기 블랙박스에 관심이 모아졌었습니다. 왜 그렇게 됐는지, 음모론은 왜 나오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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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KAL기 폭파 사건 - 보잉 707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과 블랙박스


1987년 대한항공 폭파 사건

1987년 폭파 사고 대한항공 838편의 폭발 위치 지점 / ⓒ www.kiss7.kr


1987년, 대한항공 858편이 승무원과 승객 115명을 태우고 이라크의 바그다드를 출발했습니다. 이 비행기는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아 태국의 방콕을 거쳐서 서울로 올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11월 29일 인도양을 지나던 중 마지막 교신을 한 후 갑자기 사라져 버렸습니다.


미얀마 현지 조사반은 인도양과 벵골만 사이의 상공에서 공중 폭파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사건은 1987년 보잉 707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입니다. "KAL기 폭파 사건"이라고도 알려졌는데, 수색을 했지만 동체는 물론 생존자도 찾지 못했습니다.


115명이 모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12월 1일, 아부다비에서 내린 두 사람이 현지에서 조사를 받고 있었습니다. 위조 여권을 사용한 것 때문이었습니다. 수상한 두 사람은 대한항공 폭파 사건으로 의심되어 바레인에서 조사받게 되었습니다.

 

 



테러범 마유미 - 김현희

테러범 김승희와 김현희 - 보잉 707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 ⓒ KBS


조사를 받던 사람은 '김승희'라는 중년 남성과 '김현희'라는 20대 여성이었습니다. 앉았던 좌석 위 선반에 폭발물을 놔두고 미리 내린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김승희는 청산가리가 든 독약을 먹고 자살해 버렸습니다. 하지만 김현희는 자살에 실패했습니다. 그녀는 하치야 마유미라는 일본인으로 위장하고 있었습니다.


국내 수사팀도 수사를 했지만, 이상하게도 12월 7일 수사를 종결하고 이틀 후엔 조사단이 철수해 버렸습니다. 북한이 테러를 저질러서 115명의 민간인이 죽었다면 매우 큰 사건이고, 동체나 사망자 증거도 찾지 못했는데 너무 빠르게 철수해버리자 국민들은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더구나 수사단장이 사고 현장의 수심이 수천 미터이고 초속의 빠른 물살에 상어까지 있어서 더 조사할 수 없다고 말한 사실이 알려지자 음모론이 시작되었습니다. 현장의 수심은 70m 정도이고 물살과 상어는 없다는 것이 다시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

 

 



국가적 비극과 정치인의 속셈

KAL기 폭파범 마유미 - 1987년 KAL기 폭파 사건 (보잉 707기) / ⓒ KBS


북한의 테러에 국민들의 분노가 들끓는데 정부는 괜히 의심받을 행동을 해서 의혹을 키웠습니다. 그런데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해 12월 16일에 제13대 대통령 선거가 있을 예정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6월 항쟁을 통해 독재 정권 이후 최초의 직접 선거였기 때문에 보수당이 불리했던 이유였습니다.


선거 전에 국내로 데려오기 위해서 범인 송환이 급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렇게 해서 하루 전인 12월 15일에 오게 되는데, 보수당이 원하던 대로 급격하게 국민의 여론이 기울어졌습니다. 당시 여당의 노태우, 야당의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이 경쟁 중이었으나, 국가 위기 때는 무조건 여당이 유리하게 됩니다.


대통령 선거에서 전두환의 당에서 나온 노태우가 승리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인 1988년, KAL기 폭파 사건의 폭파범 마유미가 TV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자신을 김현희라고 밝힌 범인은 김정일이 1988년 서울 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해 테러를 시켰다고 자백했습니다.

 

 



보잉 707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의 의문

1987년 대한항공  칼기 폭파 사건의 잔해 발견 / ⓒ KBS


국민 대부분은 북한의 소행이라는 점에 반론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정부가 자꾸 이상한 행동을 하니 의구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보잉 707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의 블랙박스를 회수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체도 찾지 못하니 블랙박스 또한 기대할 수 없는 일입니다.


혹시 유품이라도 찾을 수 있을까 하여 유족들은 애통한 마음으로 기다렸지만 제대로 된 증거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2년이 지난 후 기체의 일부 파편이 발견되었습니다. 아쉽게도 그것만으로는 폭파 증거를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서둘러 폐기해 버리며 또 의심을 샀습니다.


마침내 재판이 열리고 테러범 김현희는 1990년 사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대형 테러범이니 당연합니다. 그런데 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한 달 후, 갑자기 사면 조치가 내려진 것입니다. 그러자 국민들은 백여 명을 죽여도 테러범이 예쁜 여자면 살려주냐는 핀잔을 하기도 했습니다. ​

 

 



1987년 KAL기 폭파 사건과 김현희 근황

1987년 KAL기 폭파 사건 / ⓒ KBS, 마유미, 편집 www.kiss7.kr


머나먼 중동의 건설현장에서 성실히 일하던 서민과 노동자들이 1987년 KAL기 폭파 사건으로 죽었습니다. 당연히 반공 노선이 뜨거워졌습니다. 그 해에 바로 "마유미"라는 영화도 만들어졌습니다. 김현희가 주인공이었습니다. 그런데 폭파 장면에서 희생자를 너무 끔찍하게 다루었기에 논란이 되었습니다.


폭파범 김현희는 7년 후 안기부 직원과 결혼하고 조용히 살았습니다. 그러나 대한항공 858편의 블랙박스 등은 발견되지 않고 유족들도 답답해 하자, 당시 정부의 행동에 대한 의구심이 계속 제기되었습니다. 마침내 2006 ~ 2007년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의 조사가 있었습니다.


재조사 결과, 보잉 707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은 조작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다만 대선 전에 압송하려고 서두르다가 각종 의혹을 만든 사건이라는 결론입니다. 국민적 대형 참사를 보수당이 정치에 이용하려고 하다가 의혹을 증폭시킨 것이고, 국민들은 그 보수당의 대통령을 뽑아 준 것이었습니다.

 

 



미 정보부의 칼기 858편 보고서

대한항공 보잉 707  858편 폭파 사건과 블랙박스 / ⓒ KBS


그래도 1983년 아웅 산 테러 사건 때는 북한에 보복하려던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1987년 칼기 폭파사건은 그런 것이 없었습니다. 이에 대해 미국이 조사했던 기밀 문건이 2012년에 비밀해제되어 공개됐습니다. 미국 정보부는 직접 김현희를 만나 조사하고 비밀문서 57건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 문건에서, 김현희는 북한의 간첩이 맞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런데, 오히려 남한의 반공 정책이 강화될 텐데 북한이 왜 그랬는지는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 달렸습니다. 김현희의 사면에 대해서는 이미 예상됐던 일이라 놀랍지는 않다고도 했습니다.


또한, 남한의 정권은 처음 회의 때부터 보복을 배제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88 올림픽도 앞두고 있고, 보수당 승리에 도움을 줄 것이기 때문에, 아웅 산 테러와 달리 그냥 참으려는 분위기였다고 합니다. 대신 정부는 비난 외교전을 폈습니다. 물론 북한은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뗐습니다. ​

 

 



KAL 858의 블랙박스의 존재

대구MBC 탐사팀이 보도한 칼기 사건 추정 동체와 블랙박스 / ⓒ MBC


유가족의 원통함만을 남긴 채, 1987년 보잉 707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은 잊혀지는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2020년 MBC 취재팀이 동체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보도를 합니다. 미얀마 안다 만의 해저 50m 쯤에서 KE858의 동체로 추정되는 물체를 발견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유가족에게는 블랙박스를 회수할 수도 있다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잠수 탐사 결과, 비교적 동체가 온전하게 남아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통제불가능의 추락인데도 동체가 온전하다는 것에 사람들은 놀랐습니다. 혹시 다른 비행기의 동체를 잘못 본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도 생겼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KAL기 858사건을 재조사가 30년 만에 다시 시작되는가 싶었습니다. 정부가 미얀마 정부와 협의했고, 수색조사단을 파견하는 것에도 합의했습니다. 하지만 2021년, 미얀마에서 쿠데타가 발생했습니다. 그 후 코로나19까지 덮치면서, KAL기 폭파 사건의 블랙박스 수거도 무한히 연기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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