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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한 지식 칼럼/역사&사건

박태순 의문사 사건 - 기무사와 박태순 열사 사망사건 원인 2

2022. 8. 28.

박태순 열사 사망 사건 정리 2


 

박태순 의문사 사건 2

기무사와 박태순 열사 사망사건 원인

 

박태순 열사의 의문사 사망 사건은 열차 사고와 그 후의 은폐 정황이 핵심입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는 아무도 모르는 미제사건...! 이 글은 당시 의문스러운 정황들과 그 후의 안타까운 사연 결과까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용이 길어서 2편으로 연재했습니다. 아래 "추천글 링크"에서 1편도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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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순 의문사 사건 - 기무사와 박태순 열사 사망사건 원인 2

 

박태순 의문사 - 사망의 의문

 

당시 기관사가 쓴 보고서에는 200m 앞에서 갑자기 술에 취한 사람을 발견했으나 치고 말았다고 되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박태순과 술을 마신 동료 3명은 간단하게 한잔했다고 하고 있습니다. 기관사는 어떻게 그 밤에 200m 앞에 있는 사람이 취한 상태라고 단언한 것일까요?

 

박태순 의문사 사망 사건은 말 그대로 의문투성이입니다. 당시 사고는 앞쪽 승강대였기에 부기관사가 가장 정확히 볼 수 있는 위치였습니다. 그런데 그 어떤 보고서에도 부기관사가 누구였는지 적혀 있지 않습니다. 심지어 운전한 기관사마저 당시 부기관사가 누구였는지 기억이 안 난다고 하는 실정입니다.

 

결국 박태순 열사는 신원불명 변사자로 처리되어 무연고자 납골당으로 보내집니다. 그런데 또 다른 의문이 있습니다. 당시 사고 역의 관계자가 "나라에서 하는 일이니 보고서나 잘 쓰라"고 했다는 말들이 퍼져나갔던 것입니다. 이 말은 그저 소문일까요, 아니면 진실을 알면서도 쉬쉬했던 정황일까요?

 

 


 

박태순 열사 사건의 사망 원인?

 

이후 2000년이 되어 김대중 정부가 들어섰습니다. 진보 정부는 억울한 피해를 당한 사람들의 호소를 받아들여서 '진상규명위원회'를 출범시켰습니다. 그리고 9년이나 지난 2001년, 박태순 사망 사건의 존재가 드러납니다. 그의 가족들은 그것도 모르고 지금까지 신문에 실종자 광고까지 내며 찾아다녔던 것입니다.

 

의문사위는 변사 자료를 검색했고, 당시 시흥역에서 가매장 처리됐다는 기록을 찾아냈습니다. 경찰청 지문 조회에서도 그가 박태순이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또 다른 조사에서는 국군기무사령부가 그를 미행, 감시했으며, 사망 사실도 알고 있었음을 밝혀냈습니다.

 

그것은 반 보수정부 활동을 하던 군인들을 대상으로 조사하는, 일명 "마파람 사업"이란 것이었습니다. 사람을 A, B, C 등급으로 분류하고 접촉한 사람까지도 사찰 대상에 넣었기에 민간인을 사찰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마치 지명수배자를 쫓듯 직장에까지 나타나서 추궁하고 다닌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기무사와 검찰의 저항

 

진술과 기록까지 나왔지만, 기무사와 법무부 검찰3과 등은 끝까지 이를 방해했습니다. 자료 제출도 거부하고 실질 조사도 비협조적으로 피해갔습니다. 문제는 의문위의 조사권한이 약했다는 것에 있습니다. 법적 테두리에서 통화내역, 금융거래 등은 조사할 수도 없는 위치였던 것입니다.

 

당시 박태순 의문사 이전에 내사했던 기무사 방첩과 소속 군무원의 진술도 있었고, 또 다른 모 중사가 내사대상자였던 것을 알고 있다는 증거를 내밀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거짓말 탐지기 조사마저 불응하며 버텼습니다.

이에 화가 난 유가족과 인권 단체들은 의문위의 권한을 강화하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시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누나도 직접 노숙 농성에 참여하며 수사권 강화를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의문위는 검찰이 아닙니다. 한계는 분명했고, 검찰도 나서지 않은 것을 파헤칠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박태순 열사 사망사건의 결과

 

마침내 2001년의 의문사위 활동은 진상규명 불능으로 판정하고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10년 가까이 지난 일, 오래돼서 관련 자료를 다 파기했다는 관련 기관, 담당자의 모르쇠가 일궈낸 2차 인권 탄압이 되고 만 것입니다.

 

보수 정권에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너무 많았기에, 그 후 2005년 노무현 정부에서도 '과거사정리위원회'를 운영했습니다. 가족들의 눈물 맺힌 재조사 요청이 이어지니, 이를 모른 척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명박, 박근혜 정부 등에서는 더 이상 관심도 주지 않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결국, 국민 기본권 침해에 대한 2011년 민사재판에서도 피해자 가족은 패하고 말았습니다. 유가족들은 넋이라도 위로해 주기 위해, 2013년 박태순의 유고 시집을 펴냈습니다. 고등학생 때부터 쓴 그의 시 70여 편을 모아서 낸 것입니다. 그 시집의 이름은 《가야할 길은 먼데》입니다.​​

 

내용이 길어서 2편으로 연재했습니다. 아래 "함께 볼 지식거리" 링크에서 1편도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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