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푸로스트와 켈로그의 유래
시리얼 콘플레이크를 발명한 존 하비 켈로그와 윌 키스 켈로그
세계의 아침 식사를 바꿔 놓은 켈로그 콘푸로스트의 발명과 유래에 관해서 설명하려고 합니다.
존 하비 켈로그와 윌 키스 켈로그는 시리얼의 아버지처럼 불립니다. 그들의 영향으로 찰스 윌리엄 포스트가 포스트 시리얼을 만들기도 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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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푸로스트와 켈로그의 유래 - 시리얼 콘플레이크를 발명한 존 하비 켈로그와 윌 키스 켈로그
콘플레이크의 원조 그래뉼라
사실 시리얼 콘플레이크의 원조는 "켈로그 콘푸로스트도", "포스트 그래놀라"도 아닙니다. 최초의 시리얼 콘플레이크의 유래는 '제임스 케일럽 잭슨'이 만든 "Granula(그래뉼라)"였습니다. 알고 보면, 그래놀라는 법정 싸움을 피하려고 그래뉼라의 이름을 살짝 바꾼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1869년에 개발된 그래뉼라는 요양원에서 만든 채식 음식이지만, 첨가물이 없어서 아무 맛도 없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곡물을 반죽해 놓은 것이다 보니 너무 딱딱했다는 것도 문제였는데, 그래서 하루 전부터 미리 물에 불리는 불편까지 있었습니다.
이때, 한 요양원에 있던 의사 '존 하비 켈로그'와 경영자이며 동생인 '윌 키스 켈로그'가 이것에 주목했습니다. 그러던 중 형 존은 요양원의 채식단에 맞는 식사를 찾다가, 실수로 밀반죽을 너무 숙성시켜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바람에 얇게 부서진 플레이크들이 생기면서 콘플레이크를 발명하게 됩니다.
켈로그 콘플레이크의 발명
1894년에 처음 개발된 것이, 우리가 아는 켈로그 콘푸로스트의 유래입니다. 당시 요양원은 음식이 정신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있었고, 종교적 금욕주의까지 덧붙어서 채소와 곡물만 먹게 했었습니다. 마침 존은 요양원의 의사였기에 크래뉼라 같은 아침 식사를 만들고 싶어졌습니다.
그는 귀리나 밀반죽을 밀어서 반죽으로 만드는 '오트밀' 기계로 시도하다가 너무 오래 숙성시키는 실수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오히려 바삭하게 먹기 좋은 플레이크가 되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더구나 밀보다 옥수수로 만드는 것이 더 편하다는 것까지 알아내면서 개발이 완성됩니다.
존 켈로그는 스스로 매우 뿌듯해했습니다. 곡물과 견과류만을 넣어서 음식의 순결성을 지키면서도 환자들에게 영양식을 공급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생 윌 켈로그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환자들이 맛없다고 불평하는 것을 들었던 것입니다.
켈로그 콘푸르스트의 유래
맛이 없어도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고 하는 형 존과, 대중적인 음식이 되려면 맛이 있어야 한다는 동생 윌의 의견은 크게 충돌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존 하비가 제칠일안식일을 믿는 독실한 신자였기에, 인간의 육체는 도덕성과 연결되어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존 하비 켈로그는 도덕적 타락을 막기 위해 아내와도 각방을 썼고 양념이 많거나 자극적인 음식을 멀리했었습니다. 그러나 경영자인 윌 키스 켈로그는 사업가이다 보니, 이것을 상업화까지 연결하려면 사람들이 먹기 좋다고 느끼게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형은 요양원의 환자들에게 정신과 육체적 영양을 지키려면 달게 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초기에는 이 음식이 성욕 억제제라는 소문까지 돌았습니다. 마침내 두 사람의 충돌이 극에 달했습니다. 월은 형의 반대를 무릅쓰고 콘푸레이크에 설탕을 넣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놀라, 콘푸라이트 유래
동생 윌은 형과의 충돌 과정에서 독립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1906년에 결국 따로 나와서 자신의 이름을 넣은 회사를 차리는데, 이것이 지금의 "켈로그 컴퍼니"입니다. 그의 생각대로 콘플레이크는 빅히트를 기록했습니다. 현대화가 되면서 사람들의 아침이 너무 바빠졌던 것입니다.
서양 음식은 고기 등을 준비해서 아침으로 먹기엔 힘든 식단입니다. 반대로, 빈민층은 그러지 못해서 영양 면에서 부족함이 많았습니다. 여기에 채식의 장점과 고른 영양의 장점을 강조한 콘플레이크는 새로운 아침 대체 식사로 큰 인기를 끌 만했습니다.
한편, 이때에 '찰스 윌리엄 포스트'라는 사람도 이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사실 그는 켈로그 형제의 요양원에 입원했다가 플레이크의 가능성을 느낀 환자였습니다. 신경쇠약으로 입원했던 그가 퇴원 후 만든 회사가 바로 켈로그의 경쟁 업체인 "포스트"입니다.
호랑이 콘푸로스트의 대박
이후, 두 형제는 치열한 법정 소송도 벌였습니다. 서로 콘플레이크의 레시피의 소유권자라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켈로그 플레이크는 전 세계의 아침 식탁을 점령해 나갔고, 형 존은 요양원을 운영하며 삶을 마쳤습니다.
동생 윌은 1929년 경영에서 물러난 후, 자선 사업을 하며 여생을 보냈습니다. 그런 후 1951년, 결정적으로 "호랑이 힘이 솟는다"는 호랑이 캐릭터를 앞세운 콘푸로스트가 세계적인 대히트를 쳤습니다. 이렇게 해서 콘푸로스트 하면 시리얼의 대명사처럼 사용되게 되었습니다. [저작권법 표시] 이 글의 원본: 키스세븐(www.kiss7.kr)
우리나라의 콘플레이크의 유래는 1980년대에 시작됩니다. 농심이 켈로그와 합작하고, 동서식품이 포스트와 합작하며, 드디어 한국 시장에도 콘플레이크 시리얼의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잘살게 된 지금은 오히려 영양 불균형 및 비만의 원흉으로 비난받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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